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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5. 2024

무월경? No, 경계를 넘어!*


요즘 언니들의 갱년기
“30대 후반부터 폐경은 저에게 일종의 ‘자유’같은 느낌이었거든요. (…) 생리가 제 정체성이나 여성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끝내고 편해지고 싶은 것 같아요. 심리적이든 신체적이든 제 생활 반경에 자유도가 조금 더 높아질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죠.(…)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친구인 셈인데, 너무 냉정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아마 저 역시 출산과 여성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생리를 바라보고 있고 그 프레임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없다 보니 더 냉정해질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요즘 언니들의 갱년기>


마흔 일곱에 완경이 되었다. 복막염 수술로 여성호르몬 억제제를 먹은 후 거의 1년 동안 생리가 없었다. 딱 한 번, 명절 때 갑자기 생리를 했는데 아주 많은 양을 쏟아냈다. 선산에 갔다가 혼자 먼저 내려와야 할 정도였다. 그러고는 끝. 보통 몇 년에 걸쳐 생리양이 줄어들거나 띄엄띄엄 하다가 완경을 맞이한다는데 나는 단번에 끝난 셈이다.

원래 생리통이 심하고 생리 양도 많아서 평생 빈혈에 시달렸다. 생리주기가 아주 정확했는데 신기하게 명절 때는 거짓말처럼 당겨지거나 늦춰져서 딱 맞춰졌다.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게 생리인지 명절인지 모르겠다.      

완경이 되고 나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너무 자유로워서 내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만끽해야할지 주체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동네 사람들~ 나 완경했어요, 이제 자유에요. 프리덤(프리덤이라는 이름의 생리대가 있었다), 하고 뛰어다니며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조금만 중요한 일이 생기면 달력을 들여다보며 생리주기를 피할 수 있을까 없을까 마음 졸이던 날들, 궁핍할 때는 질 좋은 생리용품 앞에서 망설이거나 제때 갈지 못하고 버티던 날들,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면 부피 큰 생리용품을 가방에 미처 넣지 못하고 이리저리 감추어야 하던 날들, 흰색 옷을 입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했던 날들로부터의 해방이다.

평생 묶여있던 족쇄 하나가 떨어져 나간 듯했다. 이제 마음껏 여행도 하고 아무 때나 사람들을 만나고 실컷 흰색 옷을 입어야지. 남자들은 평생 이런 자유 속에서 살았다는 거 아냐? 생리양이 적거나 생리통이 없는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복을 타고난 거냐? 혼자 질투인지 원망인지를 하다가 뒤늦게라도 이런 자유의 몸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하얀 옷을 입는 직종인 간호사나 착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은 운동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쓰였다. 저 사람들은 아직 완경의 자유가 없을 텐데 저토록 하얀 옷을 입고 일을 하려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할까. 왜 굳이 흰색 유니폼을 입혀서 저들을 고문하는 걸까. 아무 생각 없는 남자들이 정한 게 아닐까. 빨리 여자들이 각 직종의 협회장이 되어 유니폼부터 편하게 바꾸었으면 좋겠다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자유도 있다. 선배 P는 양육의 의무가 끝나다니 생의 과제를 마친 것 같은 해방감이 든다고 했다. 누군가는 상실감을 맛보지만 반대로 임무 완수의 해방감도 느끼는 것이다.

“이제 남편이랑 살만해. 그동안은 우선순위가 애들이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먼저야.”

임무 완수를 다한 자에게 주어지는 포상휴가 같은 거랄까. 더 이상 남자나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존재를 함께 키워낸 동지로서 서로에게 만족한다. 성 역할도, 섹슈얼함에 대한 부담감도 벗어나 진정한 인간이 된 것 같단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구도도 달라졌다. 부부간에 돈독해진 정으로 더욱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남편이 동료나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해방감이다.      

사실, 젊은 날 우리가 목마르게 원한 건 사랑이라기보다 로맨틱한 감성이 아니었을까. 사랑은 결코 달콤한 게 아니라 그 어떤 고난에서도 참는 것, 오로지 주는 것, 상대를 깊이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나를 설레게 하고, 받기를 바라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살이 맞닿는 위로와 속삭임이 더 필요했다. 로맨스라는 허상 속에서 사랑찾은 셈이다. 그런데 갱년기가 되면서 로맨스에 대한 갈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로맨스는커녕 두 주먹 불끈 쥔 포효를 하고 싶다.

로맨스로부터의 해방감은 생각지도 못한 아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는데,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다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스웨덴 식 사랑이론에 대한 부분이었다. 스웨덴에서는 가족의 권력관계, 즉 강자인 부모의 권력을 국가가 제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의존적이지 않고 전적으로 자율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는 부모에게 체벌을 금지하고 아동수당을 지급해서 아이가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적 지위를 갖게 한다.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진정한 인간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개인’이 된 것 같았다. 돌봄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없는 동등한 개인, 순전하게 독립적인 단독자로서의 개인 말이다. 가족이지만, 양육의 의무도 없고 로맨스에 대한 기대도 없는 인간관계. 참으로 완벽한 해방이 아닌가. 완경을 통해 비로소 ‘개인’으로 서게 된 셈이다.


"완경기를 겪으며 전에 없이 난폭한 언행을 보이는 여자는, 그동안 엄격히 쌓아왔던 자기 수양의 균열을 발견한 셈이다. 그 틈새를 통해 여자는 마침내 자유를 찾아 탈출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완경일기>)."


속 끓였던 이야기도 이제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별로 걸릴 게 없다. 뜻하지 않은 지점에서 용기가 생긴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온 시대적 한계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미술 작가 홍이현숙은 '폐경의례'라는 사진·영상 시리즈 작품을 통해 '완경은 월경이 닫히는 폐경(閉經)이 아닌 경계를 허무는 것, 폐경(廢境)'이라고 했다. “사회가 짊어준 삶의 짐을 내려놓”고 “더 용감하게 박차고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괴감에서 놓여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능력중심의 사회에서 말하는 쓸모없음에 대한 시각을 폐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번 해보는 거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들을 자유롭게 시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나는 좀 용감해지기로 했다.


“최근의 완경 문화가 엄마 세대가 아닌 딸 세대에 의해 더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딸이 주도적으로 엄마의 완경 문화를 지지해주고, 새로운 의미도 부여하고 있더군요. (…) 딸들이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들여다보니, 새로운 mz세대들은 부모에게서 첫 생리를 축하받고, 생리파티를 경험했었더군요. ‘생리에 대한 경험과 출발점이 달라지니까 생리를 마치는 것에 대한 의식도 달라질 수 있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죠. 엄마 세대와 딸 세대가 서로 연결됨이 느껴졌어요.” <요즘 언니들의 갱년기>     


갱년기에 대한 더 많은 발화를 기다린다. 의료자본의 광고물로서가 아니라 갱년기를 사는 중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더 많이 해방되고 더 많이 자유로워지고 더 많이 지지받아야 한다.      



* 검색창에 따르면 성욕감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 월경이 끝나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성욕감퇴를 말하기 어려워 무월경을 앞으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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