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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5. 2024

걱정과 불안? No, 모험과 히든 게이트!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불면증 때문에 일찍 자는 습관을 들였다. 밤 문화를 사랑하고 즐기던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도 불면증만 해결된다면 뭐든지 할 정도로 잠을 못 자던 때라 모든 약속과 일정을 뒤로 하고 무조건 8시에는 집에 돌아오고 9시면 취침모드가 될 수 있도록 일상을 바꾸었다. 12시 넘어 새벽 두시는 되어야 자던 사람이 9시에 눕는다고 잠이 올 턱이 있나. 그래도 꿋꿋하게 9시면 두껍고 재미없는 수면용 책을 챙겨들고 누웠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새 잠들어 있는 날이 종종 이어졌다.  

턱밑까지 내려간 다크서클이 조금 가시는가 했는데,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웠다가 남편이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우리는 주말부부로 살고 있었다. 남편은 대전에서 근무했는데, 대전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는 집이 어디인지 회사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가본 적도 주소를 물은 적도 없었다. 남편과 연결되는 것은 유일하게 휴대폰뿐인데, 남편은 매일 전국 여기저기로 출장 다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만일 남편(의 휴대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순간 온갖 공포물이 머릿속을 뒤덮었다(남들은 그럴 때 치정물이 떠오른다는데 나는 그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남편을 믿는다기보다는... 음, 아무튼). 

남편에게 매일 밤 카카오톡으로 위치공유를 하라고 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어리둥절해하기에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편히 잠을 자지, 하고 마치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말했다. 구시렁거리는 남편을 단속하고 나자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뭐든 자유롭게 허용하는 편이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것도 미리 연락만 하면 믿고 허락했다. 각자의 생활을 존중했고 걱정하기보다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쳤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행여 팔이 부러지고 깁스를 해도 놀다보면 그럴 수 있지, 대범하게 넘어갔고, 아이들은 뛰지 않는 것보다 뛰다 다치는 게 낫다고 웃어넘길 정도로 마음 졸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달라졌다. 20년 넘게 하던 운전을 그만 둘 정도였다.    

한 번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 없는 것들이 모두 걸림돌이 되어 생활반경을 좁혀왔다. 밤길이 무서워 늦은 시간 약속을 피했고, 혼자 자는 밤이 무서워 걸쇠를 걸어 잠궜다. 드라마나 소설 취향도 바뀌었다. 재미를 위해서 더해지는 약간의 반전스토리도 피했다. 마음 부대끼고 싶지 않았다. 소소하게 웃게 하는 예능이 차라리 편했다.      


일상의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번져갔다. 나이듦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 노인인구 대팽창의 시대이긴 하지만 이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갑자기 크게 눈에 띄었다. 온통 노인에 대한 기사만 보였다. 마침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작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화제가 되었다. 잠재되어 있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읽다가 결국 중간에 덮어버렸다. 이 글을 쓰신 이순자 님은 배울 만큼 배웠고 경력도 있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많았다. 그런데도 한순간에 일상이 무너져 버렸다. 누구라도 이순자 님처럼 한순간에 원치 않는 삶에 가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오그라들었다. 

과연 무엇으로 이 불안을 덜 수 있을까. 가진 돈이 많으면 괜찮을까? 어느 정도 많으면 될까? 이순자 님도 경제적으로 전혀 어려움 없이 살았다고 하는데? 가족이 있으면 괜찮을까? 가족이 오히려 준비해놓은 노후자금을 탕진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 세대는 크고 작게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불리는 게 가능했고, 너나없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동안 뭘 하느라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해봤는지 모르겠다. 노후준비라고는 없다는 말이다. 경제적인 두려움은 고독사의 두려움으로 뻗어갔다. 차라리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혼자 병들고 아프다가 죽어갈 것이 두려웠다. 치매, 와병, 천천히 죽어가는 시간...     


“여러 빈곤의 모습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노숙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어쩌면 저 상태가 내게서 그다지 멀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빈곤은 죽음보다 더 강력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스무 살이 되면 바로 독립시킬 거라고 노래 부르듯 했다. 막상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보니 졸업까지는 도와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다시 졸업을 앞두고 보니 바로 취직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아무런 경제적 지원 없이 맨손으로 과연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당장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아이들 걱정까지 하는 내가 한심했다.     

막연히 두려워하다가 노후준비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써보았다. 빈 종이를 하나 두고 가운데 아래로 줄을 그은 다음 왼쪽에는 직장, 오른쪽에는 글쓰기라고 써넣는다. 다시 반으로 나눠 위에는 장점 아래는 단점을 써본다. 별 경력이 없으니 아무래도 왼쪽에는 쓸 거리가 없다. 장단점을 지우고 가능한 것들을 모두 써보기로 한다.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음...한심할 정도로 없다.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지. 

다시 종이를 하나 놓고 혼자 살면서 쓰게 될 비용을 계산해본다. 현재의 지출과 혼자 살 때의 지출. 예상컨대 큰 비용은 병원비 말고는 없다. 그렇다면 지출내역은 오로지 먹는 것뿐. 

두려움은 가끔 뻔한 사실도 외면하게 한다. 선택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택지가 있는 듯 고민하게 한다. 선택지가 정말로 없다면 그저 오늘을 사는 수밖에.     


“삶은 영원한 도입부요, 점진적 전개 따위는 끝까지 없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의 문 앞에 떠밀려 있는 상태로만 시간 속에 정주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되 고정 거주지는 없는 노숙자들이다.”<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어차피 우리는 유목민과 같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내일을 알며 사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50세,60세,70세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 30세, 40세 때와 똑같다. 삶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달고 저주를 퍼붓는 자에게 매섭게 군다.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고, 어느 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다. 어느 나이에나 삶은 열의와 피로의 싸움이다. 그저 부조리하고도 멋진 선물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인생에는 이유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의 생이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눈앞에 총구를 들이밀어도 왜?를 먼저 묻는 게 인간이다.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뿐이다. 그러니 자신의 오늘을 사는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일의 걱정은 시간 앞에 얼마나 오만한 짓인가. 단순해져야 했다.       


“인간은 일화 형식의 일상을 소재 삼아, 그 소재가 아무리 하찮을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살아간다. 평범함의 과제는 폭풍 같지 않은 폭풍의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시해 보이는 폭풍이 이어지면 가장 강인한 마음도 무너뜨릴 수 있다.”      


현재를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모험을 하게 된다. 혼자 하던 글쓰기가 책으로 묶이면서 ‘작가’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불안으로 마음의 문이 닫히자 경계를 넘어 히든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혼자가 두렵고 아이들이 걱정되고 노후가 막막하고 아프고 병들 게 무섭다. 

이번에는 두려움 리스트를 써 붙였다. 나름의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생각의 전환)이 떠오르면 답처럼 써넣기도 했다. ‘머리가 아프다’ 옆에 ‘체한 걸 의심하라!’를 쓰고, ‘잘할 수 있을까?’ 옆에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밌으려고 하는 거다’를 쓰고, ‘나는 왜 이럴까?’옆에 ‘무겁지 않게 살자’를 썼다. 오늘은 ‘잡문이야’ 옆에 ‘인식의 생산’이라고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해결하고 살겠는가. 그동안 어지간한 것은 해결하면서 살아온 것이 더 신기하지 않은가. 살면서 수많은 행운 끝에 어려움에 직면한 거다. 각자가 겪는 어려움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이 또한 어떻게든 넘어선 끝에 당도한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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