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순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잠이 많았는데, 잠들지 못해 애를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다가 너무 이른 새벽에 깨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아예 잠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자려고 누우면 하지불안증후군으로 다리가 뒤틀렸다. 엎드려 다리를 눌러야 안정감이 느껴졌다. 쿠션과 베개를 여러 개 배치해서 그나마 원하는 자세를 만들었다. 여행이나 지방에 강의 일정이 생기면 잠자리 때문에 한걱정이었다. 엎드려 자는 습관 때문에 허리와 목에도 무리가 갔다.
“수면의 대표적인 기능은 체온조절과 에너지 보존이다. 또한 면역기능에도 관여한다.”<꿀잠의 과학>
우선 체온조절이 안 되었다. 원래 몸이 찬 사람들은 갱년기 열감 덕분에 추위를 덜 타게 된다던데, 나는 여전히 추웠다. 이불을 덮어도 체온이 올라가지 않아 전기장판을 끼고 살았다. 앞쪽 어깨를 데우고 뒤돌아 등을 데우는 식으로 몸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면서 앞뒤로 구워주어야(?) 겨우 체온이 올라갔다. 여름에도 몸은 차고 발등과 손바닥은 불이 나듯 뜨거웠다. 희한하게도 뜨거운 발등도 덮어주면 좀 덜 뜨겁게 느껴졌다. 발목은 시리고 발가락은 답답해서 수면양말을 잘라 발가락만 내놓았다. (수면패션이 가관이다. 굳이 상상하지는 마시라).
체온이 올라가서 겨우 잠들 만하면 빈뇨와 잔뇨로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라 다시 잠이 홀랑 깨버렸다. 수면부족으로 매일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픈 게 소화의 문제인지 잠의 문제인지 확실치 않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처럼 고민했다. 한번은 소화제를 먹어도 낫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일종의 중풍 증상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봄이었다. 아직 바람이 찬데 잠시 겉옷을 벗었다가 그런 일을 겪었다. 몸이 유리로 변하는 것 같았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약간의 증상만으로 병이 투명해지는 유리. 관절 여기저기가 삐거덕거리면서 살짝 금이 가버린 유리.
농장을 할 때 매일 30분 정도 걷는 습관을 3년 이상 유지했다. 종일 몸을 쓰는 일을 하지만 걸으면서 몸을 풀어주는 시간을 따로 가지라는 의사의 조언 덕이었다. 일은 그만둔 후에도 저녁마다 걷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허리가 덜그럭, 하더니 엉치 부분이 아팠다. 며칠 쉬면서 허리 강화훈련을 하며 지냈다. 허리가 조금 나은가 싶으면 허벅지가 아팠고 또 다른 날은 엉덩이가 아팠다. 어제도 그제도 괜찮던 몸이 말썽을 부렸다. 그러다 발목이 휙 돌아갔다. 왠지 기력이 없었는데 그래도 걸어야지 하면서 나갔다가 일을 당했다. 터덜터덜 걸었던 것 같다. 치료를 하면서 점차 나아졌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컨디션을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수면장애가 완경 이전에 난소를 제거한 여성으로부터 가장 많이 보고(<완경선언>)”되는 걸 보면 그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난소 한쪽을 떼어내고 나머지 한쪽도 반나마 남아있다.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맹장도 떼어내면 그 작은 빈자리 때문에 몸의 균형이 깨지는데, 다른 것은 오죽할까. 가임 시기가 끝나면 자궁을 떼어내도 괜찮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무엇보다 근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근육이 턱없이 부족한 데도 아무런 대비 없이 나이를 먹었다. 기껏 산책하듯 걷는 것으로 대단히 뭔가를 하는 것처럼 위안 삼으며 외면했다.
“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풀어줄 근육이 있어야 잠이 온다. 또한 “운동시 신체에 가해지는 압력이 궁극적으로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 그렇다고 육체노동이 좋으냐면 그렇지는 않다. 생각보다 육체노동은 “운동만큼 신체의 다양한 부위를 골고루,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잠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최근에 수영을 시작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데다 차가워서 싫어하는데 우연한 기회로 덜컥 수영강습을 받게 되었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운 탓이었다. 30대였던가, 수영강습을 받아본 적이 있다. 음파를 하다가 말았는데, 생리기간이 지나고 가니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 이번 생에는 수영과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너무 재밌다. 안 되면 말고, 하는 정신으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발동작도 안 되고 숨도 안 쉬어지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하나씩 되기 시작했다. 강습생 중 한 명이 내게 “쑥쑥 느는 게 눈에 보여요.”라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 재밌게 했다. 너무 신나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아무나 붙잡고 내가 수영을 해요, 물이 좋아지다니 신기해요, 떠들어대고 싶었다. 말 그대로 신기함이었다. 물의 압박을 두려워하던 내가 지금은 물의 감촉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찬물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찬물로 샤워를 할 만큼 몸에서 열이 난다.
수영을 다녀오면 너무 피곤해서 절로 눈이 감겼다. 뒤에서 ‘크앙’하는 소리가 울려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내가 코고는 소리였다. 하루 종일 피곤했고 밤이면 기절하듯 잠들었다. 덕분에 점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노년기가 되면 서파수면(가장 깊은 수면)이 더욱 감소하고 수면분절이 많아져 수면 중 자주 깨게" 되고, 일주기 리듬이 바뀌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패턴을 갖는다”는데, 벌써 노년기로 접어든 것 같았다.
흐물흐물하던 팔과 허벅지도 조금씩 달라졌다. 남편에게 만져보라고 하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안쪽에서 속살이 뽀드득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이제 곧 근육이 되겠지.
무엇보다 아침이 행복하다. 평생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억지로 눈을 떠야 했는데, 수영하러 갈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진다. 수영을 하고 나면 아침이 상쾌하다. 기분 탓만이 아니라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이 이전과 다르다. 아침이, 하루가 기대된다. 물론 충분히 자서 그럴 수도 있다. 충분히 자다니, 드디어 완경을 앞둔 것 같다.
“완경 후 여성이 수십 년 이상 잘 살 수 있는 이유는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 체지방이 돕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방을 욕하지 말라. (…) 뼈힘과 근력을 준비해서 돌파하자.” <안녕, 나의자궁>
잠은 인지기능저하도 막아주고 노화를 막는 치료효과도 있는데 왜 하필 노화가 시작되는 갱년기에 불면이 시작될까. 뼈와 근육이 약해지는 노년을 준비하라는 신호가 아닐까. 고통을 호소하는 육장육부(자궁 포함)를 잘 다스리고 쓰다듬어주며 현재의 몸을 보존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하라는 거다.
또한 “일주기 유형은 성격특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저녁형이 아침형보다 자극추구는 높고 위험회피와 인내력, 자율성, 연대감은 더 낮다고” 한다. 즉, 청소년기가 대표적인 저녁형이고 우리는 아침형이다. 이제 우리는 자극을 피하고 스스로 시간과 몸을 조율하며 인내하고 주변과 연대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면으로 고통스럽다면 “‘안자도 상관없어. 쉬면 돼’라고 생각을 바꾸”는 게 좋다. “우리는 하루 동안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잠을 잔다.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로 쉴 수 있다면 수면 없이도 70%가량 충전할 수 있다.“(<갱년기 겪어봤어?>)고 한다.
*출처 없는 인용은 <꿀잠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