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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5. 2024

성욕감퇴? No, 자유의지!

완경일기

성욕이 감퇴되었다는 사실보다 나는 완경의 자유가 더 반가웠다. 우선 임신할 가능성으로부터의 자유다. 아무리 피임을 한다 해도 불안했다. 원치 않는 임신은 온전히 여자의 부담이니까(우선 신체적으로). 더 이상의 임신을 바라지 않는 상황에서 성을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웠다. 사실 언제 우리가 성을 즐겼는가마는.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개인적인 소회가 아닌가 싶지만, 글쎄... 유유상종인지 내가 만난 여자들은 대체로 내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우리 세대는 연애도 하고 성에 대해 꽤 개방적인 척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오픈 마인드가 되기는 어려웠다. 갱년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듯이, 성에 대해서도 참으로 무지했으니까.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심각하게 무지하다. 몸의 변화에 대해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이것이 여성들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 쉬쉬하며 이웃들과 나누는 정보 등 대체로 음담패설에 가까웠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좀 나아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더 고약한 성적 페티시만 남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쨌든 자유로워졌지만 너무 늦은 자유였다. 질 건조가 심해져서 성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웠다. 나는 쇼그렌 증후군이라는 지병이 있다. 구강 건조, 안구 건조, 피부 건조, 질 건조 등 체액이 마르는 병이다. 심한 편은 아니지만 때때로 심해졌다가 나아졌다가 한다. 질 건조도 쇼그렌 탓인 줄 알았는데, 갱년기 증상인 ‘완경 비뇨생식기증후군(GUSM)’이 겹친 거란다. ‘질 위축’이라는 좁고 부정적인 표현을 대신하는 이름이다.       

부부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는 정도라면 병원에서 알려줄 법도 한데, 처음 질 건조로 인한 방광염이 왔을 때 의사는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오로지 독한 방광염 약만 처방해주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라면, 이 나이에는 그럴 수 있다는 말도 해주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이에 대해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어야 하지 않나. 나의 무지도 문제지만 여성의 몸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병원마저 갱년기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하다니, 너무하다. 역시 각자도생인가.


내 몸은 점점 바스락거렸다. 낙엽이 바스락, 부서지는 아름다운 소리가 내 인생이 지고 있는 소리를 대신할 줄이야. 다행히 전혀 성욕이 생기지 않았다. 성욕 저하가 누군가에게는 걱정거리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다행이라고 말할 만큼. 더 이상 성욕이 없으니 해결해야 할 욕망이 하나 줄어든 게 아닌가. 삶에 있어 하나의 근심이 덜어진 셈이다. 성욕이 근심이라고 하면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근심이었다. 부부관계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는 것 같지 않아 근심이었고, 성욕을 적절히 조절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근심이었다. 과연 여성들에게 성욕이란 무엇일까? 정말 성욕이 그토록 중요할까?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성에 집착하고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 든다는 것이 섹스에 있어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생각에 도전하고, 적극적으로 성욕을 갈고닦으며, 어떤 문제가 생기기 전에 관계와 섹스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 완경에 접어드는 여성의 성욕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완경 선언>


많은 외국의 갱년기 관련 책에는 여자들에게 갱년기 이후에도 성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한 덕목처럼 말한다. 그런데 정말 저들은 여전히 성욕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왜 성욕이 줄면 여성성이나 인간성이 훼손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고 나이가 들면 성욕만이 아니라 모든 욕구가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왜 그다지도 완경 후에도 성욕은 완전하다고 말하는 걸까. 결국 성욕도 정상성 중심의 사고로 보는 것은 아닐까.       

“50세 이상 시니어 인구 가운데 4명 중 거의 1명꼴로 사랑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팅 사이트를 찾는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또한 “한 영국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니어층의 34퍼센트가 그들의 성생활이 60세 이후부터 향상되었다고 평가한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통계나 설문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완경 이후에도 성생활을 중요시여기는 것 같다. 나도 한때는 성관계가 부부생활의 거의 전부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성관계 말고 신뢰감이나 편안함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통계와 상관없이 욕구가 적거나 많거나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사회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활력을 되살리자는 말도 그만하면 좋겠다. 없는 활력은 없는 대로 두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나. 나이가 들면 내려놔야 한다면서 왜 자꾸 되살리려 하는가. 그런 억지가 없다.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줄어들면 줄어든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내려놓는’ 길이다.       

점차 성관계를 하지 않을 자유로 나아갔다. 하다못해 의무감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의무감조차도 벗어 내던질 수 있는 자유, 그 자유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


부부관계의 자유는 또 다른 해방감을 주었다. 부부관계는 말 그대로 ‘관계의 문제’인데, 우리는 그동안 각자 성역할에 대한 자기 검열을 끊임없이 해왔다. 여자처럼 굴어야 한다거나, 여자로서의 매력을 가져야 한다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거나, 우리는 정상(!)인가를 의심한다거나 등등.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만족시켜야 한다거나 쎄야(!) 한다거나 등등. 이제 부부관계가 어려워지면서 그런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말 그대로 부부관계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런데 만일 남편이 아직 원한다면? 벌써 부부관계를 그만두는 게 맞는 일일까? 그렇다면 다시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남편에게 물어볼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왜 내 욕망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남편의 욕망부터 체크하는가. 필요하면 남편이 물어보라지.  

혹시 모르지. 완경이 되고 나면 욕망이 생기지도. 그럼 그때 가서 고민하지 뭐. 닥쳐서 고민한다, 이것도 갱년기 변화 중 하나다. 부부가 원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성호르몬제나 젤, 오일 등을 활용할 수 있단다. 게다가 <완경일기>에 보면, 삽입 성교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성교로 충분히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 조금 놀랐다. 진짜 나의 무지함에 너무 당황스럽다. 그래서 반가웠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늦게라도 새로운 성에 눈을 떠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성생활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만큼이나 굳어있는 남편을 일깨우고 시도할 만큼 성에 대한 애정이 내게는 없다. 이번 생은 이렇게 무지한 상태로 성생활이 끝나버릴 것 같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우리 부부 사이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욕망이 사그라들면 갈등도 사라질 수 있다. 꽤 긴 기간, 거의 결혼생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 하나가 갱년기를 맞아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나는 몸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물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교를 위해 약간의 윤활액을 사용해 보는 일이 전혀 비극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성으로서 평생 겪어온 생식 및 월경 활동과, 이를 성적으로 물화하는 남성적 시선 때문에 부정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자아가 마침내 온전히 수선되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가끔 그렇듯이, 내가 월경을 시작하기 전의 위치로 되돌아 왔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세상과 당당히 맞설 준비가 된 어느 맹렬한 소녀 말이다. 단지 나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나이 든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성적 혐오다.” <완경일기>


얼마전 티브이에서 한 여자 연예인이 수많은 남자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남자들이 힐끔거리며 좋아하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불쾌하다. 내가 그런 눈길을 받아본 적은 별로 없지만 상상으로도 불쾌하다. 이제 그런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회는 나를 ‘나이든 여자’로 혐오의 시선을 보내겠지만 나는 받지 않겠다.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으므로. 하지만 그런 혐오의 시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치지 않겠다!


“가임시기를 넘어선 여성을 두고 재생산 시기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생식 능력 자체는 중단되었을지 몰라도 그들 유전자의 보존과 재생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업을 계속 추진해나가고 있다는 증거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완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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