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막염으로 한쪽 나팔관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 적이 있다. 6개월 정도 여성호르몬 억제제를 먹었는데 원래도 풍만하지 못한 몸이 점점 납작해졌다. 허리가 없어졌으며 가슴은 더 밋밋해지고 엉덩이도 말라붙었고, 코밑까지 거뭇거뭇해졌다. 어느 날 눈떠보니 <올란도>의 주인공처럼 남자가 되어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남편에게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외모만 변한 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복잡하게 이것저것 신경 쓰며 생각이 많은 편이었는데 한순간에 생각이 싹 사라지고 단순해졌다. 후회와 번민을 되풀이하며 잠 못 자던 밤들이 줄어든 건 좋았지만,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까지 줄어든 것은 당황스러웠다. 남자들은 평생 이러고 사는 걸까, 뭔가 손해 본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가뿐한 단순함을 즐겼던 기억이 있다.
갱년기가 되면서 그때처럼 단순해진 것을 느꼈다. 우회해서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화가 날 땐 참지 않고 화를 냈다. 상대가 서운할 말도 필요하면 그냥 해버렸고 남편과의 말다툼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금세 후회하던 예전과 달리 어쩌랴 싶으면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게 뭐든.
상냥함이 귀찮았다. 조심성이나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대충 편하게 살고 싶었다. 인내심에 쓸 에너지가 없었다. 어르신들이 복잡한 거 싫어, 단순한 게 좋아, 이런 말을 자주 하셨을 때 그동안 힘들게 살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에너지가 없어져서 그랬나 보다. 다시 말해 참을성이 없어져서 거칠게 반응했던 것이다. 감정도 메말라갔다. 달콤한 발라드를 들으면 짜증이 났다. 로맨틱한 장면을 봐도 전혀 설레지 않았다.
또 다른 면에서는 쉽게 수긍할 줄 알게 되었다. 각을 세우고 반론을 펴던 치열함이 사라지고 상대의 말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게 귀찮아서인지 기력이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각자 자기 경험을 통해 주장하는 것이니 다툴 필요가 없었다.
단순해진 상태가 좋다가도 무기력한 내 모습에 죄의식을 느꼈다. 예능을 보다가 내 웃음소리에 내가 놀라 몸이 굳었다. 빈둥거리는 것 같아 뭔가 하는 척해보지만, 금세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금요일 저녁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종일 혼자 있었으니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저 스스로가 무위도식하는 것 같아 한심할 뿐이었다.
이전에는 활동가의 정체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살았다. 거기에 육아와 살림까지 도맡고 있었기에 나의 쓸모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 주 내내 멍하니 있다가 가족들이 닥치면 겨우 끼니를 내놓거나 그마저 가족들이 대신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아무도 내게 눈치주지 않고 재촉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애면글면하면서 괴로워했다.
빈둥지증후군이었다. 보통 가족을 위해 전력을 다하던 여자들이 자식들이 독립하면서 겪게 되는 허전함이나 상실감을 말하는데, 요즘은 은퇴한 남자들도 많이 느낀다고 한다. 남자들은 쓸쓸함과 배신감, 분노를 주로 느낀다는데 여자들은 주로 쓸모없어졌다는 죄책감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삶이란 무엇인가, 의미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고,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불쑥불쑥 화가 나고, 그러면서도 모든 게 다 귀찮아져서 더 무기력해졌다.
“친구가 공연에 가면 무엇이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대뜸 ‘내 꺼라고 답했다.” 내 책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에 쓴 내용이다. 정말 나 외에 아무것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온통 촉수가 나로 향해 있었다. 내 감정, 내 인생, 내 몸이 중요했다. 뭐든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지금껏 뭘 하느라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먹고 싶은 거, 내가 쓰고 싶은 걸 못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완경 일기>에서 저자 다시 스타인키는 ‘자아가 죽어간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생생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진짜 나’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미국에 사는 큰언니가 얼마 전 잠시 귀국했다.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완전히 시월드를 졸업한 언니는 이번 방문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공언했다. 언니는 오자마자 쌍꺼풀 수술부터 했다. 눈 처짐 때문에 많이들 하는 수술이지만, 자신도 dl런 걸 하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며 계속 선언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거야”, “나만 생각할 거야”, “나한테 쓰는 거 처음이야” “내가 만족하면 되지.”등등.
언니는 꽤 많은 돈을 현금으로 챙겨왔는데, 어찌 보면 돈을 물 쓰듯 펑펑 썼다. 또 어떤 면에서는 짠순이처럼 굴어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며칠간 같이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자신을 위해 써본 적도 없고, 열심히 벌어봐야 돈은 항상 써야할 곳이 따로 있었다. 이번만큼은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어떨 땐 과하게 쓰고 어떨 땐 쓰지 못하고 벌벌 떨었던 거다. 그래봤자 밥 사먹고 병원 가고 안마 받고 머리 파마한 게 전부다. 그리고 최근 이사한 동생에게 집들이 선물을 하고 한의사인 동생에게 한약을 짓고 함께 여행해준 나에게 약값을 대주었는데, 그때마다 자신을 위해 쓴다며 뿌듯해했다.
“분홍색 옷을 사 입으면 좀 나을까 해서 쇼핑도 했잖니.” 언니의 말을 들으며 “50대 여성이 몸매를 관리하고 건강이라는 자본을 업그레이드하며, 기분을 전환하려면 어떤 운동 프로그램이 좋을까요?<완경, 그게 뭐가 어때서>”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언니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갱년기 이미지에 자신을 그대로 투영했던 것이다.
언니가 쌍꺼풀 수술을 하기 전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결과적으로 쌍꺼풀 수술을 하더라도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을 맛보면서 ‘빛나는 자기결정권’(마거릿 풀러)을 누렸다면 좋았을 텐데. 내내 안타까웠다. 왜 말리지 못했냐고? 그런 건 누구가 말려서 바뀔 수 있는게 아니다. 스스로 깨닫는 거지.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특히 몸이 말을 걸어올 때 두드러진다.”
옥희살롱의 김영옥 여성학자는 “몸이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를 쓰자고 말한다. 늙고 주름진 지금의 내 모습이 되기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길을 살아온 나의 역사를 쓰다보면 몸이 가진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여길 수 있다.
마침 글을 쓰기 시작한 덕에 실컷 내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얼마나 좋은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주변사람들에게도 글쓰기를 꼭 하라고, 일종의 ‘자서전 쓰기’ 캠페인을 벌이곤 하는데 대부분 기겁을 한다. 글이라니, 내가 무슨 글을! 하는 반응이다. 대단한 글쓰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징징대자는 말이다. 실컷 징징대다 보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절로 떠오른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던 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기도 하고, 진짜 중요한 줄 알았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잊히기도 한다.
“제2의 삶은 느린 삶이어야 한다. 새로운 몸의 리듬, 삶의 리듬, 일 생산의 리듬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천히, 촉수가 꿈틀대는 대로 기다리며 따라가야 한다. “인생 뭐있어. 노는 게 최고”라는 왜곡된 자기중심주의, 행복중심주의를 벗어나 “이야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 어쩌면 언니도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쌍꺼풀보다 이야기가 담긴 몸이라는 주제로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때로 굽어진 길로 들어서기도 하니까. 섣불리 판단하려는 나를 조용히 꾸짖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늙음을 성장의 변화로 감각하고 존중하는 다른 해석 체계이다. 경험과 성장이 가져온 변화, 그것이 늙음이라는 이 단순명료한 노년의 진실을 지각하는 당사자들은 살아온 시간을 성찰적으로 되새김질함으로써 앞으로 살아낼 시간을 전망한다. 이 되새김질과 전망 속에서 삶의 목적을 재조정하고 그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주의 원리를 꿰뚫는 지혜는 아니어도 의미 있는 삶을 상상케 하는 이야기 하나쯤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