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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5. 2024

기억력 감퇴? No, 공부와 예술로 리셋!

  


할머니와 친구하기(독립출판물)


무기력해진 마음은 글을 쓰면서 조금씩 달랠 수 있지만 기억력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자꾸만 단어를 까먹었다. 대단히 어려운 단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평범한 일상어를 잊어버리고 그거 뭐지? 를 반복했다. 글 쓰는 삶을 살겠다면서 단어를 잃어버리다니 너무 치명적인 일이었다. 단어를 기억해내느라 손발을 휘젓고 몸을 움직여가면서 그 단어의 느낌을 붙잡는다. 그러다보면 툭, 하고 튀어나올 때도 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겨우 떠오를 때도 있다. 글로 쓰는 건 며칠간 끙끙대며 빈 칸을 채우면 되는데, 강의를 할 때 갑자기 기억이 안 나면 그보다 낭패가 없다. 더 많이 준비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버벅일지 알 수가 없다.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할 때도 그거 있잖아,로 시작해서 그게 뭐더라,로 끝내기 일쑤고 말하다 말고 답답해서 입을 다무는 일도 허다했다. 나중에 생각나면 어찌나 별 거 아닌지 문자로 전하려다 민망해서 그만두고 만다. 


“완경이행기 동안의 뇌 기능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완경이행기가 끝나면서 사라진다.”(<완경선언>)고 하지만, 버벅거리는 동안 느끼는 낭패감은 스스로를 위축되게 한다. 일시적인 게 아니라 치매거나 또는 뇌의 이상에서 오는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그러니까 오로지 치매가 아닐까 하는 우려로 두려움에 휩싸일 때도 있다. 

일단 책상 위에 종이를 하나 붙이고 자꾸 잊는 것들을 적는다. 파라솔, 갈망, 의중, 비트, 돌파, 미지, 직관, 위치, 통념, 정서...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 제목도 옆에 메모한다. 미리캔버스, 픽사베이, 줌... 

그리고 또 하나, 걸리는 건 뭐든 다 해본다. 공부! 공부와 반복만이 살 길이다. 평소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니어도 뭐든지 눈앞에 뜨이면 우선 해본다. 그렇게 시작한 게 그림이다. 그림책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워낙 똥손이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무조건 시도하는 거다. 하고 싶다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내 앞에 다가오는 건 무엇이든 하는 거다. 하다 말지라도 괜찮다. ‘아님 말고’는 내 평생의 슬로건이었다. 수영도 그렇게 시작했다.    

이왕이면 낯선 것을 선택한다. 낯설어야 리셋된다. 이전의 감각, 지식, 정서 등을 다 내려놓고 낯선 곳에서 오는 자극으로 호기심을 일으키는 거다. 옳다고 생각한 그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삶을 시작한 사람처럼 백지에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력 감퇴는 ‘내려놓을’ 기회다. 꼰대가 되지 않을 기회다. 다른 세상을 발견할 기회다. 

 

얼마 전 구순에 박사를 마친 이상숙 님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힘든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평생 일에 찌든 피로를 날려버린 것 같다고 했다. 대단해 보였다. 공부할 체력과 정신력, 경제력이 부러웠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부러웠다. 그러나 가장 부러운 것은 무용한 것에 몰입한 용기가 부러웠다. 우리는 공부조차 가성비 따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무용이라니, 이상숙 님은 박사논문을 썼고 더 보충해서 책까지 쓰겠다고 했으니 전혀 무용하지 않다. 그럼에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 성과물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전제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평생 도전하고 성공하라고 배웠다. 그래서 자꾸 도전을 했으면 성공하려고 한다. 이제 성공 신화를 버리고 유용과 의미를 버리고, 그저 지금을 잘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뼈에 익히자. 오늘 시작한 것을 내일도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많이 하지는 않는다. 에너지가 적어지면서 천천히, 하나만 하고 살기로 했다. 일정을 많이 줄이고, 하루 하나 이상의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근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지방에 살다보니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간 김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친구들도 으레 서울 올 일 없니? 라고 묻는다. 온 김에 보자는 거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복잡한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친구를 만나러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걸 전에는 바짝 힘을 내서 하고야 말았다. 이제는 조금만 무리해도 부하가 걸린다.    

  

“어머니는 어딜 들어가고 누굴 만나야 재미있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그녀는 일정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주변 환경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외출을 즐긴다. (…) 목적지에 먼저 가서 사람들이 오기 전에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면, 심리적 안정감이 생겨 말실수를 덜 하고, 기운을 비축한 만큼 타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고 하였다.”<할머니와 친구하기>      


하나를 충분히 즐기려 한다. 산책하는 김에 장을 보는 일도 가급적 삼간다. 산책에 다른 일을 끼워 넣으면 목적지가 달라지고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산책하면서 음악이나 유튜브를 듣는 것도 좋지 않다. 걸을 때는 걷는 것만. 되도록 핸드폰을 두고 나간다. 

처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 하루 하나씩의 글과 그림을 그렸다. 어쩌다 다른 소재가 떠올라도 붙잡지 않고 그냥 놔버렸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쟁이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지고 오늘 쓰려던 글이 금세 퇴색한다. 오늘은 오늘의 글에만 몰입하기. 

요즘은 일이 많아지면서 글을 많이 써야 되니까 하루 하나만 쓸 수는 없지만, 가끔 오늘의 글만 쓰던 날들이 그립다.     

 

윤종신은 1년간 미국에서 ‘이방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휴식년을 보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사라지고 싶었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있다가 돌아오니까 공항에서부터 자신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반가웠단다. 반가웠다니, 그동안 반갑지 않았다는 거 아니겠는가. 낯선 시간들을 통과해야 리셋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인생의 어떤 시기가 오면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만 누구나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이 허락되어야 하지만 조건이 허락된다고 해서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더구나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더욱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럼에도 훌쩍 떠나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이방인 프로젝트'라는 성과는 그런 시간들을 통과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억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흔히 지혜라고 불리는 결정성 지능은 발달한다. 뭐든 잡히는 대로 한 공부가 크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나이 들어서 공부하면 더 효과가 있는 이유는 철이 들어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익힌 경험이 많아서 새로 배우는 지식도 폭넓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목적을 가진 공부가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으로 하는 공부라서 재밌다. 성과는 없지만 성취감은 더 높다. 지금 우리는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성취는 이미 다 마친 셈이므로 딱히 성공하려고 욕심낼 필요가 없다. 

     

공부라고 표현했지만, 그저 일상예술 정도면 충분하다. 가드닝이나 뜨개질, 캘리그라피 등 뭐든 좋다. SNS에 셔플댄스를 가르쳐주는 간단한 동작을 업로드하면서 갱년기를 통과한 사례도 보았다.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면 할수록 기억력을 되살리는 데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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