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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희 Mar 03. 2023

우산도

1. 비 내리는 산

나는 숨겨진 것들을 사랑했다. 찻잔 바닥에 새겨진 손톱만 한 꽃잎 무늬를 보는 일이라던가. 산책길에 보이는 장성한 나무들 사이 기껏 손을 뻗은 연약한 가지의 새순 앞에 멈춰서는 일이라던가. 도서관의 책장 구석에 거꾸로 뒤집어진 채 꽂힌 책을 읽는다던가. 당당히 몸을 부풀린 구름 사이 픽 웃는 입술 모양 마냥 그어진 비행운을 눈으로 좇는다던가.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우리 가족의 창고에 숨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빠가 모아 놓은 공구와 자동차 장비, 이제는 마땅히 쓸데없는 전선과 기계 부품들. 엄마의 손길이 닿았던 다양한 색의 천과 실, 만들다 만 옷과 신발들. 건전지, 물병, 벌레 퇴치용 스프레이, 쿠션, 침대 커버, 봉지에 담긴 누룽지. 한 편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마구 굴러다니는 창고 나라의 버려진 정병들. 그 사이 숨겨진 물건이 또 있었다. 비밀 지도. 모두가 잠든 밤에 만들어진 지도. 쿠션 뒤에 놓여 먼지 쌓인 채 입을 다물고 있던 지도를 처음 발견한 건 5년 전이었다. 막 성인이 되었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쾌쾌한 냄새가 나는 창고로 들어가 음악을 틀고 담요를 깔고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알던 세계와 세상이 보여준 세계는 때로 충돌하곤 해서 나는 하염없이 생각을 하다 꿈을 꾸다 잠이 들었다. 선잠을 자다 퍼뜩 깼을 때 눈에 들어왔던 지도의 끄트머리. 그 지도엔 H라는 서명이 멋지게 구부러진 필체로 쓰여 있었다. 그 지도에는 숨겨진 땅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땅.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마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과거 이러한 곳이 있었다는 몇 줄이 나오고 현재는 소문만 남은 장소. 나는 꿈을 꾸었다. 그 지도를 따라 걷는 나를. 숨겨진 세상의 이야기를 펼쳐보는 순간을. 그리하여 오늘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돈, 지도와 책과 인터넷을 동원해 끌어모은 정보들, 세계 일주를 한다고 말해둔 가족의 따뜻한 배웅과 응원, 배낭과 손에 가득 쥔 용기까지. 비밀 지도를 따라 떠나는 날이다.


집을 나선 지 30일째. 도착한 곳은 비 내리는 땅이었다. 땅의 물기가 꺼지지 않는 땅. 목마른 대지가 입을 벌려 빗물을 한 움큼 머금는 땅. 일 년에 한두 번 비가 그치는 날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는 항상 장마처럼 비가 내렸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동그랗게 산 모양을 이루고 있는 지형 덕에 '우산도'라고도 불렸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교류가 없고 섬 같이 동떨어져 있어 섬 도 자가 쓰였다. 우산도에는 가장 높은 가운데땅과 둥근 가장자리를 이루는 낮은 땅이 존재했다. 가운데땅에는 가장 높은 지배자가 군림 중이었고, 낮은 땅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낮은 땅의 사람들은 대부분 우산과 장화를 만드는 장인들이었다. 그들은 이 땅의 사람들이 비를 잘 피하게끔 튼튼하고도 보기에 아름다운 우산을 만들었고, 빗물이 고이지 않으면서 발이 편안하여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장화를 만들어냈다.


나는 낮은 땅의 버섯 모양으로 생긴 가게에 들어섰다. 다홍색의 지붕이 둥글게 건물을 덮어주고 있었고, 그 아래 주황색의 건물이 원통형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곳은 간단하게 조리하여 나오는 콩, 버섯, 시금치 류의 음식들과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음료들을 팔고 있었다. 나는 콩 스튜를 주문하고서 통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은 길게 가게 가운데를 가로질러 놓여있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듯했다. 낮은 땅 주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음식을 먹는 가운데, 몇 사람이 내 주위로 와서 말을 걸었다.


당신은 여행자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어디로 가나요?


나는 내가 여행자가 맞으며, 쿄오의 도사이란 도시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비밀 지도를 따라 숨겨진 곳들을 차례로 갈 예정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중에는 나와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있었는데, 외부인을 처음 보아서 신기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낮은 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낮은 땅은 일 년 즉 365일 중 300일 정도는 항상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비가 오지 않는 날들은 주로 해가 짧아지는 날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축제가 열린다고 하였다. 정확한 날짜를 매년 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틀 이상 비가 오지 않을 때 보통 축제를 시작한다고 했다. 축제 날에는 간혹 눈이 내리기도 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태양이 어떠한 방해 없이 빛을 비추는 축제 기간 동안, 태양을 담은 듯 동그라미 무늬가 있는 밝은 원색의 옷들을 입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춤을 추고 노래한다고 했다. 물론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것도 축제의 일환이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려 기차를 만들어 낮은 땅을 돌며 '어제의 빗물 오늘의 햇빛'이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다. 그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였으나 아이는 부끄러운 탓에 나중에 조용한 곳에 있게 된다면 불러주겠다고 하였다.


낮은 땅에서는 내리는 빗물을 둥근 도자기에 받는다고 했다. 고운 결로 빚어진 흰 도자기, 파란색 구름이 새겨진 검은색 낮고 넓은 원 모양의 도자기, 녹색 손잡이에 노란색 개나리를 새긴 갈색 도자기 등 각양각색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낮은 땅 사람들의 전통이라고 했다. 빗방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화단, 담장 때로는 길바닥에 도자기를 놓고 어떤 것은 조금 채우며 어떤 것은 가득 채운다. 통통 두드려 높낮이 다른 음들을 만들어 내어 연주를 하기도 했으며, 이파리 한 두 개나 작은 꽃잎을 띄워 두기도 했고, 물에 뜨는 손톱만 한 오리 모양이라던지 장난감을 둥둥 띄워 놓기도 했다. 낮은 땅 남쪽의 가운데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집에 사는 카아는 자신의 도자기에 노을 지는 하늘을 그려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의 해가 비 속의 나를 비췄음에 감사할 것'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오늘의 해가 비 속의 나를 비췄음에 감사할 것. 나는 최근 무엇을 감사한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여행을 떠나올 수 있음에 감사했던가? 비밀 지도를 찾았음과 그 지도를 따라서 정확히 우산도에 온 것을 감사했던가? 그러나 나는 새로운 일들에만 잠시 반짝이며 반응했을 뿐, 나에게 매일 주어진 태양의 온기와 호흡의 냄새에 감사한 적은 없었다는 걸 기억한다. 집을 떠나 멀리 있는 만년설에 도착해 눈 위로 부서지는 햇빛을 보며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느낀 적은 있어도 내리는 비로 시야가 가득 찬 날에 어김없이 떠올라 그 자리를 지키는 태양에 감사한 적은 없었다. 세 글자에 담긴 마음이란 어쩌면 그림자를 내쫓는 뜨거움 만큼이나 태양을 닮아있는 건지도.


낮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잔잔하고 작았다. 오늘 점심에 먹은 토스트가 어땠는지, 오늘 저녁 아이들 방과 후 모임에서 야구 경기를 한다던지, 어제 새로 산 장화에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한 구석에 그려놨다던지 하는 것들. 빗방울이 떨어져 길가에서 하나의 모양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몇 초만에 우리 집 문 앞에 닿는지. 평상에 앉아 들꽃을 우려낸 차를 마실 때 귀로 들리는 빗소리는 때로는 경쾌했고 어제는 왜인지 자신의 마음과 같이 측은했는지. 비가 은은하게 내릴 때 잠이 들면 고래가 가득한 바다의 꿈을 꾸는지. 그 꿈에서 하얀 머리 소녀가 나와서 빗방울 하나는 자신이 소중히 흘려보낸 문장 하나와 같다고 말했다던지.


가게 옆의 탁 트인 공간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 새벽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잠깐 그쳤을 때는 연꽃과 둥그렇고 영롱한 연둣빛의 이파리들이 두둥실 무리 지어 수면을 떠다녔다. 물 안에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또는 하나씩 유유자적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하릴없이 물속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만의 출발점과 도착점, 사랑하는 은신처와 도전하는 물길 속이 있을 터였다. 흘러가서 다시는 보지 못하는 물이 있겠고 새로 마주하는 낯선 얼굴의 물이 있겠지. 물속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일인 걸까. 수면 가까이 올라와 빗방울이 떨어져 만들어내는 충격과 파장을 보기도 하고, 저 깊은 곳으로 헤엄쳐 몸을 누이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에서 태어난 물이 온통 흘러들어 이곳만의 바다가 되는 듯하겠지.


나는 카아의 옆집에 딸린 손님방에서 잠시 묵게 되었다. 다행히도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우산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적당한 값을 드렸다. 이 집에는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부부와 그 사이 딸이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나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수줍음을 타는 듯이 부모님 뒤에 몸을 숨기고는 고개를 빼꼼 내놓은 아이의 이름은 라우였다. 라우는 이제 열 살이 돼 간다고 했다. 안내받은 방은 한 사람이 지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남쪽으로 문이 나 있고, 옆에는 창이 벽의 반 만하게 나 있었다. 북쪽으로는 본집과 연결된 통로가 미닫이문을 열면 나왔다. 서쪽 벽면에는 남색의 푹신하고 부드러운 침대가 놓여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책상과 의자, 간단한 필기구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의 하루는 단란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나와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막히거나 넘친 곳은 없는지 확인을 한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면 4명이 꽉 들어차게 앉을 수 있는 식탁에 다 같이 모여 앉아 아침을 먹는다. 따뜻한 수프와 채소로 만든 찜 그리고 과일을 주로 먹었다. 그리고는 각자 할 일을 찾아 나선다. 아저씨는 장화를 만드는 가게로 출근하신다. 아주머니는 우산을 만드는 사리 공방의 설립자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하나하나 세심하고 정교하게 특별한 그림을 넣어 제작을 해서 수출도 하고 있으며 예약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라우는 학교를 갔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터라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 이것저것 추억을 쌓는 일에 즐거워하고 있다고 했다. 우산을 만드는 일이 궁금했던 나는 아주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런 나를 미소를 띤 채 보며 하나하나 대답해 주던 아주머니는 함께 가자고 선뜻 말을 해주셨다.


사리 공방은 열다섯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2층으로 지어진 목재 건물로, 아주머니의 집에서는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비가 오는 땅에 나무로 된 건물은 괜찮은 걸까나 생각했는데 건물 꼭대기에 옥상을 덮는 크기의 큰 우산이 달려있었다. 직원들은 각자 맡은 바 소명을 다하여 일하기에 성실하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주문을 받고 계획을 수립하고 토대를 그리는 사람, 탄탄하고 정교한 살을 만들어 우산을 만들어 내는 사람, 그 위에 입힐 아름다운 색의 천과 장식을 짜내는 사람, 조합하는 사람, 포장하여 전달하는 사람. 다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일해온 탓인지 사람들 사이에는 웃음 띤 안부와 따뜻한 농담거리가 오고 갔다. 이 날에는 좋아하는 단풍잎을 우산에 새겨달라는 주문대로 우산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채도가 진한 적갈색의 배경에 부스스하기도 단아하기도 한 주황색과 빨간색 사이 단풍잎이 수놓아져 갔다. 이 단풍잎에는 떨어진 잎을 주워 담는 다정한 마음이 담겨 하늘을 마주 본 채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리 공방의 사람들에게서 가운데땅의 군림자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군림자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 잘 비추지 않았으며 대대로 내려온 권력의 세습자라고 했다. 화려함을 좋아하고 잔치와 자랑을 기뻐하는 자라고 했다.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손안에 들어오는 금을 세는 일에 목말라했다. 며칠 전 군림자는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옆의 땅들에게 보일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거대 우산을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낮은 땅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할 때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굉장히 고되고 힘겨운 노동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고 모두들 자신의 위치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이들은 힘든 내색을 하면서도 묵묵히 우산을 만들어내었다. 낮은 땅의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으로 조를 짜서 아침 조와 저녁 조가 나뉘었고, 교대로 일을 했다. 아침 조가 된 사람들은 거대 우산을 만드는 일을 한 후에 출근을 했고, 저녁 조가 된 사람들은 퇴근을 한 이후 거대 우산을 만드는 일에 합류했다.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던 크기라서 설계부터 난항이었고, 몇 날 며칠을 고생하여 머리를 싸맨 후에야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그 후에는 재료를 모으고 단계 별로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비 오는 날 우산도 쓰지 못한 채 모두가 우비를 두르고 사다리에 올라가 허허벌판인 공터에서 일을 하였다. 노동의 강도가 엄청났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손잡이와 우산 기둥, 그리고 살을 만드는 작고 작은 낮은 땅의 사람들이 꼭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표정이 언짢아지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가서 그런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이었다. 카아가 마을 전체를 돌며 종이를 붙이고 다녔다. 하나의 시가 적힌 종이였다.


우리는 하늘의 구멍을 막지 않아

때로 창조의 비밀을 누설하듯 처참하게 쏟아붓는 외침들을 막지 않아

낮은 땅에서

가장 작은 사람들이

내리는 비를 맞는다는 건

세상 모든 구석에 녹아든

목구멍 아래로 삼켜진 빗물들을 껴안는 일이라

웅덩이마다 하나의 환희와 하나의 분노와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순종이 색을 입어서

그 누구의 외침도 꺼지지 않도록


시간이 흘러 거대한 우산을 세상에 내보이는 날이 되었다. 주변 땅에서 온 고위 인사들과 앞다투어 촬영을 하는 카메라가 하늘, 땅 할 거 없이 몰려왔다. 가운데땅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 그 정 가운데에 우산의 손잡이 부분이 꽂혔다. 그리고 종이 울림과 동시에 묶어두었던 밧줄이 풀리며 우산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빗방울에 색이 생겼다고 외쳤다.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형형색색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펼쳐진 우산 아래 우산도가 놓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우산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우산. 그 구멍마다 빨강, 노랑, 주황, 초록, 파랑, 보라 가지각색의 굳은 물감이 채워져 있었고, 내리는 비에 녹아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군림자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산도는 하나의 큰 유화로 덮인 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름답고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기뻐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에 태양이 입 맞추네요. 오늘이 왔음에 감사하는 건 눈부심을 닮은 친절함이죠. 우리는 함께 걸어가요. 비 온 뒤 무지개가 걸리는 약속을 갖고서. 따뜻한 색과 밝은 색, 차분한 색과 광대한 색, 소리 지르는 색과 멈춰 선 색, 울음기를 띤 색과 깊은 눈으로 마주 보는 색, 제각기인 색들이 뭉텅이째 무리를 지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하강하는 색들은 마치 구름에서 피어오르듯 날개를 달고 자신을 흩뿌렸다. 생경한 광경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했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어제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도 내일을 기대하지 않게 하진 못했다. 색들은 마구 뒤섞였다. 빨강과 검정이 섞였고 초록과 동물들이 섞였고 파랑과 아이들이 섞였다. 나무와 꽃이 섞였고 빗방울과 햇빛이 섞였고 눈물과 환호성이 섞였다. 응어리진 마음들은 곧게 내리는 빗방울을 맞아 물감과 함께 땅으로 녹아들었다. 구멍이 나 망가진 우산 아래서도 온 힘을 다한 춤을 추는 축제는 열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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