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해부

순간의 사진 순간의 기록 #11

by 이룸

어느 날 우연히 사랑은 다가온다. 몸부림친다고 해서, 치밀한 생각과 계획을

펼친다고 해서 사랑이 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이성(理性)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그 두 마음이

맞아떨어질 때 사랑은 시작된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끌림으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끌리는 부분만 본다. 자신의

빈 공간을 메워줄 요소만이 확대되어 보인다.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유전자의 작용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좀 더 좋은

유전자를 자신의 사멸 이후에도 남기고 싶어하는.

인류 시초부터, 아니 모든 생물의 시초부터 비롯되었던…….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오기도 한다. 다투기 시작한다. 자신의 뜻대로

상대방을 이끌려고 한다. 점점 자아의 영역이 확대된다. 사랑이 식을수록 자기보존

본능이 우세해진다.

헤어진다.

그러나 미련이 남는다.

자신과 합치하는 더 좋은 유전자를 만날 가망성이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 채로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고,

그런 채로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늙고 결국엔 죽는다.

유전자만이 승리한다. 유전자만이 죽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한 사람에게 너무 집착하게 되면,

물고 물어뜯기는 싸움이 끝없이 이어진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한다. 때로는 사랑에 몰입하고

때로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꾸는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사랑의 해부.jpg 2010년 8월 정동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