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란 그림자에게 있어 무대요, 의무였다. 최소한 준호의 그림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항상 주인이 움직일 때만 움직여야 하지?"
이 불만은 오래 참았던 한숨처럼 그의 내면에서 새어나왔다. 그는 주인이 잠든 밤마다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림자 중개인'이라는 소문 속 존재를 통해 도심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열리는 비밀 모임에 초대장을 받았다.
금요일 밤 11시, 준호의 그림자는 도심 빌딩 14층의 공유 오피스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중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검은 수트에 창백한 얼굴을 한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그림자와 인간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오셨군요, 그림자 수요미식회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중개인이 말했다.
"자리에 앉으세요. 다른 분들도 곧 도착합니다."
중개인은 원형 테이블 주변에 의자 여덟 개를 놓고, 각 의자 뒤에 등불을 하나씩 켰다.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곧 나머지 의자마다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 그림자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엔 그림자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새벽 안개를 모아 만든 ‘안개 타르트’,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을 모아 만든 ‘먹구름 샐러드’, 잉크처럼 검은 액체가 담긴 ‘흑연 티’도 있었다. 그림자들은 이 음식들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림자들은 음식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숨쉬듯이 음식을 음미했다. 그들이 음식에 얼굴을 가져다 댈 때마다 음식은 점점 희미하게 흐려지다가 사라졌다.
첫 번째 그림자는 패션 디자이너의 것이었다. 항상 우아한 실루엣이 특징이었다.
"오늘 주인이 신상품 발표회를 했어.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이리저리 튀어다녔지. 정신없이 바빴어."
두 번째 그림자는 택시 기사의 것으로, 다소 굽은 어깨선이 보였다.
"우리 주인은 오늘도 12시간을 운전했어. 나는 항상 핸들을 잡은 모습이야. 내가 몸을 펼 때는 주인이 가끔 쉬기 위해 차에서 나와 담배를 피울 때 뿐이지."
세 번째 그림자는 초등학생의 것으로, 끊임없이 흔들렸다.
"주인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나는 땅바닥에 찰과상을 입었어." 그러자 모두가 웃었다.
네 번째 그림자는 경비원의 것으로, 항상 꼿꼿한 자세였다.
"주인은 밤에도 일하는데, 조명이 너무 적어서 나는 항상 흐릿해. 존재감이 없는 기분이야."
다섯 번째 그림자는 노인의 것으로, 약간 떨리는 듯했다.
"주인의 손자가 오늘 찾아왔어. 같이 놀아주느라 나도 오랜만에 아이 그림자와 놀았지. 기분이 좋더라."
여섯 번째 그림자는 바리스타의 것으로, 경쾌한 움직임이 특징이었다.
"매일 커피 머신 앞에만 서 있으니 지겹더라. 하지만 오늘은 주인이 새로운 라떼 아트를 배워서 나도 덩달아 재미있었어."
일곱 번째 그림자는 준호의 것이었다.
"주인이 오늘 승진 소식을 들었어.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 그런데... 저 빈자리는 뭐죠?"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테이블의 빈자리로 향했다. 중개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 자리는 윤서의 그림자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오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중개인이 계속 말했다.
"우리 모임의 규칙에 따르면, 한 달 이상 나타나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면...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이죠?" 준호의 그림자가 물었다.
중개인은 잠시 '흑연 티'를 한 모금 마시고 설명했다.
"그림자는 주인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윤서의 그림자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윤서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거나,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림자 세계의 법칙에 따라, 오늘은 모두 함께 슬픔에 잠기는 날로 정하겠습니다."
테이블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먹구름 샐러드처럼, 슬픔이 그들 위에 드리워졌다.
"윤서의 그림자를 위해 묵념을 올립시다."
그림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더 짙어지며, 원형 테이블 위로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