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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Sep 05. 2024

소설....파리에 가면 3년 전 그녀가 있을까?

는 여전히 파리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밤이 되면 더 깊이 그리움에 잠겼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은  마음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 자연스럽게 헤어지자는 그 말이 를 매일 괴롭혔다.


그녀와 헤어진 후, 는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에게 여행은 이제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통로에 불과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그 골목, 그 카페, 그리고 그 화장실.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그 기억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왜 그때 고백하지 않았을까? 왜 그녀의 연락처를 묻지 않았을까? 는 그녀에게 미친 듯이 끌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쿨하게 억누르며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말았다. 쿨이라고 포장한 두려움이었고 뭔가 그럭저럭 잘되지 않을까하고 미루는 이상한 게으름이었다. 이제는 그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매일 밤, 는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후회로 가득한 잠을 청했다.


3년 전, 카페 화장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코인을 쓰지 않고 무심코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코인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작은 금속 조각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을 간직한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 코인은  가슴속에 불씨처럼 남아, 방 한구석에서 꺼지지 않고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잊으려고 해 보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나 짧았음에도,  마음속에서 그녀는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코인을 손에 쥘 때마다,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헤어지자'라고 했던 그녀의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 퍼졌다.


는 자주 그녀와 함께했던 카페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후,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손을 씻으며 천천히 숫자를 셌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담긴 문자가 도착했다. 그녀가 찍은 그 자리가 그의 휴대폰 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를 잊지 못한 는, 그 코인을 다시 파리로 가져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파리의 그 카페에서, 혹시라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헛된 희망일지라도, 는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냥 추억팔이 여행이 되더라도...




파리의 겨울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날처럼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다시 올랐다. 그때와 다를 바 없는, 그러나 어쩐지 더 낯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때 묵었던 호스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옥탑방의 나무문도 여전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순간의 설렘은 이제 느낄 수 없었다. 무엇이 변했을까, 아니면 변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뿐일까.


방 안에 머무르지 못한 채 다시 길을 나섰다. 발길은 자연스레 그 카페로 향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그 자리. 비록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했다. 커피와 허브차의 향기가 여전히 공기 속에 맴돌았고,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파리의 골목도 변함없었다. 그러나 내 안에는 깊은 공허함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카페 한구석에 앉아 그녀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떠올렸다. '어쩌면 모든 것은 진짜 이제부터 시작일지 몰라요.' 그녀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내가 그 순간을 다시 찾아야만 하는 운명처럼.

주머니 속에서 코인을 꺼냈다.


갑자기 카페의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 코트를 입은 그녀는 한눈으로 봐도 카페 내부에 나 혼자 있는데도 구석구석 누군가를 찾는 듯 돌아보고는 아쉽고, 속상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그녀의 행동보다는 옷차림이었다. 검은 코트 안에 입은 옷은 여름옷이었다. 패션이야 각자의 취향이라지만 그녀의 옷은 계절을 뛰어넘은 멋이라기보다는 잘못된 느낌이 강했다. 여름옷을 입은 채로 갑자기 겨울인 곳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어울리지 않는 코트를 걸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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