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투투는 아침에 나가 볼 일을 보았다. 비 오는 날이 아니면 하루 세 번 실외 배변을 하는 투투는 오줌 누는 자리와 똥 누는 자리가 다르다. 오줌은 집 주차장 끄트머리에 누고 큰 거는 집 아래 느티나무나 더 아래 도로변 밭 가장자리에 눈다. 자기가 눈 자리의 냄새를 맡고 그곳을 확인한다. 그리곤 다음에도 같은 자리에 눈다. 비가 오면 투투의 오줌 누는 자리가 조금 달라지는데 냄새가 비에 씻겨져서 그런 것 같다.
생후 1년이 된 투투. 사람으로 치면 15살쯤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전에 없던 행동을 한다. 볼 일을 본 후 뒷발질을 하는 것이다. "타다닥 타다닥" 하며 두어 번 흙을 뿌리고 성에 안 차는지 마지막으로 탁, 하고 한 번 더 차는데 그 행동이 아주 리드미컬하다. 그리곤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거나(그런 투투를 보면 개가 웃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몸 가볍게 방방 뛴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귀여워 웃음이 난다. 고슴도치 엄마는 과장된 폭풍 칭찬을 하고 녀석의 꼬리는 의기양양 더 명랑하게 흔들린다.
처음엔 감격했다. 아이고 기특한 놈. 깔끔한 놈. 도덕적 견성?을 갖춘 놈. 호들갑을 떨었다.우리 집 개들은 엄마를 닮아?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블랙탄 탱이도 제 볼일을 보고 뒷발질을 하는데 투투가 하는 모습을 보니 정확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개들의 뒷발질은 자신이 머문 곳의 흙을 뿌림으로써 저에 관한 정보를 퍼트리는 의도란다. '나 여기 왔었다' 하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를 바위나 벽에 새기지만 개들은 뒷발질로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거다. 이렇게 하는 개들은 비교적 자존감이 있는 개라고 한다. 꼭 볼일을 본 후가 아닌데도 뒷발질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의 배설물을 덮으려는 것보다 더 분명한 의도를 가진 행동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타자와의 경쟁 심리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자존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존감은 그 스스로가 주체다. 투투는 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보통의 개들이 그러하듯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은 거다. 타자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뒷발질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성장이다. 다른 개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흘림으로써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만큼 투투는 컸다.
투투의 뒷발질이 내게 인상적인 것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을까. 자신에 대한 '앎'이 제대로 된 것일까. 스스로 나를 안다고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이 되면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많다. 내가 가진 의지가 고집은 아닐까. 나의 의지가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할 땐 나 자신도 혼란스럽다. 투투의 뒷발질은 저와 다른 개들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자주 타자가 배제되는 나의 선택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겁을 내고 있는 것일까. 간혹 답을 알아도 그 답을 입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60년을 살았는데 나는 아직도 사는 일이 서툴고 자주 비겁하다. 투투의 뒷발질이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서 내 안엔 물음표가 자꾸 생기지만 찾으려는 답은 늘 가려져 있다. 가려진 곳에 그래도 길은 있다고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일 게다.
투투가 뒷발질을 하고 나면 나는숙련된 발로 흙과 낙엽을 끌어다 투투의 흔적을 덮고 투투와 마주 보며 웃는다.
"투투, 너는 뒷발로 흙을 뿌리고 나는 이렇게 흙을 덮어. 너는 다른 개들에게 너를 알리며 자존감을 키우고 엄마는 이렇게 흙을 덮으며 자존심을 지켰어. 사실은 이처럼 단순한 거야. 엄마는 때로 너무 복잡해. 쓸데없이. 그치? 하지만 엄마는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더 많이 하고 싶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에 투투는 꼬리를 치다가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안물 안궁. 그만 갑시다' 하는 얼굴로 홱 돌아선다. 뒷발질 하나에 뭔 말이 그리 많냐고, 들어주면 더 길어질 것을 아는구나. 똑똑한 놈!
도토리와 산밤이 여기저기 떨어져 발에 차인다. 올해는 유난히 많다. 다람쥐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손톱만 한 산밤 하나를 투투에게 발로 툭 쳐 주었는데 못 본 척한다. 예전 같으면 재미난 장난감이 되어 쫓아다니며 입에 물고 깨물었을 텐데 이제 투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줄었다. 구르는 밤을 쫓아가기보다 저보다 큰 진도와 맞짱을 뜨고 싶어 하는 투투는 유년기를 보내고 질풍노도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