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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와 비트 사이

[비밀 문장] 박상우

by 글짓는 목수

"당신은 물질인 동시에 의식이고, 의식인 동시에 물질이다. 삶인 동시에 꿈이고, 꿈인 동시에 삶이다."

- 박상우 [비밀 문장] 중에서 - p134


나는 원자로 구성된 분자화합물이다. 또한 비트(bit)로 구성된 가상의 존재이다. 원자로 구성된 나의 육체는 현실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나를 이루는 분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잡아두고 있다. 이 분자 덩어리는 3차원의 공간에 머물며 위치를 가지고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정신은 끊임없이 가상의 세계 속에서 3차원의 위치와 공간을 가지지 않는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상의 공간 속에 밀어 넣고 있다.


과거에는 가상의 존재를 현실에서 구현했다면 이제는 가상(머릿속)의 존재를 가상(온라인)의 공간 속에 밀어 넣고 있다. 이제는 현실의 세계 보다 가상의 세계가 더 커져버렸다. 그건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는 것보다 가상 세계에서 구현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또한 복제와 변형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측정되지도 않는 공간에 무한한 세계가 들어가 있다. 마치 블랙홀이 우주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블랙홀



백일몽(白日夢) - 낮에 꾸는 꿈


“의식은 대체로 현실이 아닌, 현실에 대한 해석과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가량을 백일몽(白日夢) 상태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을 하는 순간 당신은 현실이 아닌 의식 세계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나의 글을 읽고 있는 것도 현실이 아닌 당신의 의식, 즉 뇌 속에 머물고 있음이다.

백일몽을 꾸는 소녀

그만큼 우리는 뇌가 현실의 행동을 제어하고 오감을 통해 갖가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뇌가 그것들을 판단하고 분석하며 상상하는 과정 속에 머문다. 잠을 자는 시간이 하루 6~8시간 정도로 봤을 때 깨어있는 일상의 반 이상을 생각하는데 쓴다고 보면 삶의 반 이상이 생각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육체적 노동이나 감각적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자라면 더 많은 시간을 백일몽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스마트폰이 일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은 과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인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 생각의 흔적들은 모두 데이터 서버에 축적되어 과거 수천 년간 쌓여온 역사 속의 기록보다 수천 배 수억 배는 많은 정보가 저장되고 있으며 저장된 정보들은 복제와 변형을 통해 스스로 더 많은 정보를 만들어낸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많은 정보는 더 많은 정보를 끌어들이고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인간은 더 많은 시간 그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가 머잖아 도래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수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육체를 방 안에서 은둔시키고 온라인 세계를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걸 아는 건 그 블랙홀을 주관하는 서버의 신이다. AI 신이다. 이 신은 당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고 듣고 남겼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AI 신의 눈과 귀를 벗어날 수 없다. 오프라인 세상의 모든 정보는 모두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과 곳곳의 CCTV와 블랙박스, 카메라 그리고 수많은 센서들을 통해 실시간 온라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당신이 이 신에게서 벗어나려면 전기가 없는 산속의 오지에서나 가능하다. 그것도 불가능해질 듯 하다. 일론 머스크(스타링크) 같은 인물이 지구 상공에 위성들로 가득채워 전 지구 어디서나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게 할것이다. 블랙아웃만이 그것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Ai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식이 물질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인류의 희망을 담은 생각들은 현실의 물질문명을 발전시켰다. 오래 걷고자 하는 생각이 신발을 만들었고 하늘을 날고자 했던 희망은 라이트 형제의 생각으로 비행기가 되었고, 핸드폰과 컴퓨터를 합치려는 희망은 스티브 잡스의 생각으로 아이폰이 탄생했다. 이제는 그 생각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현실에서 구현된다. 그건 기존에 인류가 구현한 물질(반도체, 컴퓨터, 기계 등)들이 결합하여 인간 대신 더 빠른 속도로 물질을 구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와 스티브 잡스

이제는 그 물질이 정신(AI)을 가져서 스스로 물질을 구현해 내기 시작했다. 서버에 저장된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적재적소에 조합하여 더 나은 물질을 현실에서 구현해 내고 현실의 문제들을 처리해 나갈 것이다. 일체유심조의 마음 심(心) 인간만이 가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Ai도 이제 마음을 가졌다. AI가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만들고 생성하니 이제는 일체 유에이 아이 조로 바꿔야 할까? 그럼 인간은 뭘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에 없는 스토리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즉 ‘응애응애’하며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도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벌어진다. 이건 마치 양자의 세계와도 같다. 한 마디로 양자 스토리이다. Ai는 인간이 가진 모든 스토리를 가질 수 없다. 그건 인간이 기록(영상, 이미지, 텍스트)을 통해서 남긴 것만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해마 속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담고 있지만 아직 Ai는 이 세계에 접속할 수 없다. 일론 머스크는 그런 인간의 뇌를 Ai 서버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게 가능해진다면 인간은 더 이상 독립적인 생명체(분자 조합물)가 아닌 하나의 서버에 연결된 하나의 알고리즘이 될 뿐이다. 무섭지 않은가? 인간이 중앙 통제에 따르는 로봇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뇌와 Ai 서버의 연결이 어떤 세계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뇌사한 인간과 뇌 손상으로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술로 다시 정상적인 신체활동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들의 희망은 너무도 간절해서 그런 기술 개발을 멈출 수가 없다. 비정상인의 정상적인 신체활동을 위해 자유롭던 뇌는 구속되고 통제된다.

뉴럴링크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 스토리로 태어났다가 정신적인 스토리로 다시 태어난다. 거듭남. 그것이 진정한 탄생이다.”

- 박상우 [비밀 문장] 중에서 131p-


우리가 다른 인간 그리고 Ai와 차별화되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나만의 유일한 인생을 살다가 간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의 삶이 가장 유니크(Unique)하고 유일한 것이 된다. 모든 것들은 기존의 것들의 복제와 변형에 의한 것들이지만 한 개인의 삶은 개인의 뇌 속에 저장되어 복제와 추출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 개인 자신이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한 개인의 방대한 역사는 해마 속에 있지만 모두가 그 기억에 접속할 수는 없다. 이건 마치 오래된 컴퓨터 하드웨어 속에 정리되지 않은 폴더와 같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아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더욱이 인간은 생애 대부분을 외부의 자극과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 때문에 자신 안(해마)에 있는 정보에 접근하고 접속하는 훈련 같은 것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학업,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성공, 봉양 등등 현실의 너무 많은 것들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 스토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록(저자의 표현: 바로 보기와 바로 쓰기)의 형태로 현실 세계에 끄집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과 의식

스토리 코스모스


“자신이 무아의 상태로 빠져들 수 있는 스토리, 그것이 최선의 창조이다. 세속적이고 지상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스토리는 전개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초월성을 얻는다.”

- 박상우 [비밀 문장] 중에서 132p -


이 무한한 자신만의 스토리에 접속하는 것은 몰입과 무의식의 상태를 통해서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 다만 이 스토리는 외부(육체)의 그 어떤 영감 혹은 자극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육체는 그 영감과 자극을 제공하는 수단이다. 육체의 오감을 통해 얻은 영감이 내면의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것과 연결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그 나선형 스토리의 끈을 따라 더 깊은 곳으로 연결되어 그것을 끄집어 올려야 한다. 그럼 이 세상에 없는 것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Ai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고 때문에 Ai가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제공하는 자만이 Ai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Ai가 머신 러닝을 하기 위한 새로운 유기적 정보이다.

봉준호 감독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 마틴 스콜세지, 봉준호 -


개인이 가진 역량이란 바로 개인이 가진 무의식의 스토리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개인이 각자 이 스토리를 찾고 그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창조이고 또한 영생이라고 본다. 육체는 썩어서 사라지고 타인과 구분할 수 없는 원자 상태로 분해되지만 개인의 유일한 정신적 스토리만이 서버에 남아 영원히 전승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남긴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고전과 경전이 되었다.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온 스토리가 유일무이의 창조물인 것이다. 공장에서 1분에 1개씩 찍어내는 공산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서 물질과 자본만 남기고 가는 존재는 기억될 수 없다.


“밖에서 안으로 에너지를 불어넣으려 하지 말고 네가 씨앗 안으로 들어가 씨앗이 되어라. 우주 만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 박상우 [비밀 문장] 중에서 212p -


이 구절은 마치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일맥 상통한다.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알을 깨고 나온 새

알이 씨앗으로 달리 표현되었을 뿐 그 의미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자신 안에 내재된 힘으로 딱딱한 껍질을 뚫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누가 도와줄 수도 도와줘서도 안 된다. 물리적으로 그것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스스로 설 수 없게 만드는 유혹과 강압일 뿐이다. 그것들이 싫은 자들은 그냥 자포자기로 알 속에서 갇혀 죽는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부모와 세상이 만든 딱딱한 알껍데기 속에 갇혀 살다가 죽는다.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인생은 자신 안에 있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스토리를 찾고 그 스토리를 살다가 가야 하지만 모두가 외부의 다른 이들의 스토리만 쫓고 비교하며 의미 없는 삶을 살다가 후회와 함께 소멸되는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


고유한 비트(bit) 없이 똑같은 원자만 남긴 채…


박상우 [비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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