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59 (개정판)
간밤에 짐을 챙기고 떠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버스에서 울려오는 엔진소리와 그 떨림이 마치 자장가처럼 느껴지며 스스륵 잠에 빠져든다. 눈을 떴을때 버스는 어느새 휘황찬란한 상해의 빌딩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중국의 돈과 사람이 모이는 경제의 중심지, 상해는 중국에서 가장 빠른 변화를 받아들이는 도시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곳은 양주에서의 한적함과 느슨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리에 즐비한 수많은 간판들은 경쟁하듯 사람들을 유혹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발걸음을 옮기는 빌딩 숲 속 행인들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나는 미리 예약해둔 시내의 작은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가서 짐을 풀었다. 짐이 꽤 무겁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이 무색하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건 저승길을 갈 때나 쓰는 말이다. 귀국길은 항상 무겁기 마련이다.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직장동료들에게 나눠줄 귀국 선물들로 가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자 춘옌과의 마지막 만남의 날이다. 나는 캐리어 안에서 이곳에 와서 거의 입지 않은 검은 수트를 꺼내어 다림질을 한다. 얼마 전 상해에서 동사회 때 한 번 입은 것이 전부이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 옷을 다시 입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왠지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수트를 받쳐입는다.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땅거미가 지고 호텔을 나선다. 상해의 밤은 화려한 조명사인들로 치장하며 또 다른 삶의 무대를 준비한다. 밤낮이 사라지는 2교대의 생활터전이다. 낮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하루를 정리하며 밤의 생활 속에서 휴식과 충전으로,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낮을 살던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며 상해는 쉬지 않고 24시간 계속 돌아간다.
저녁시간 예원에는 수 많은 인파들로 북적인다. 복잡한 대도시의 빌딩 숲 중심지에 고풍스러운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조명 속에 그 이색적인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哇!这是谁呀?真看不出来啊”(와 이게 누구야? 정말 못 알아볼 뻔 했네)
“哦!春艳!你穿得这。。。”(어! 춘옌 넌 이 복장이…)
그녀는 가슴 골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빨간 원피스에 진한 화장을 한 채 내 앞에 서 있다. 그 모습은 그녀가 이곳에서도 화류계의 일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我穿得不适合吧,本来我要换衣服过来的呢,可有一丑八蛋不让我走嘛,不过他是一个有钱的狗崽子,今天我为你的生日祝福我都请客”(좀 그렇지? 진상 고객 하나 때문에 여태껏 붙잡혀 있었지 뭐야, 그래도 돈 많은 집 개자식 하나 물었지, 하하 오늘은 내가 너의 생일을 위해 확실히 쏠 테니까 말만해!)
나는 수트의 재킷을 벗어 그녀의 드러난 어깨를 덮어준다. 춘옌은 아직 술이 덜깬 모습으로 신나게 말을 하다 나의 행동에 하던 말을 잊고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수트와 나를 번갈아 쳐다 본다.
“这家伙!够意思噢,还是我穿得有点儿冷, 谢谢你哟”(짜식! 센스 있는데 안 그래도 좀 추웠는데… 고마워)
“我们去那边的自助餐吧”(저기 푸드코트 가서 먹자)
“只有那个嘛?”(고작 저거야?)
“哎呀!那儿也有很多可好吃的呀”(야! 저기도 먹을 엄청 많아)
그녀는 예원 근처의 뷔폐식 푸드코트로 향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온다.
"哇~人山人海啊!"(와~ 정말 사람 많다.
"就是嘛!好像来看人的呀“(그러네 사람 구경 온 거 같다.)
그녀와 나는 복잡한 인파 속 길 옆에 있는 쯔쥬찬(自助餐 :뷔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골라 계산하고 가져다 먹는 식당)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상해에 왔으면 상해 음식을 맛보아야 한다. 과거 상해에서 잠시 유학하던 시절, 즐겨먹었던 상해 음식들은 한국인에게 거부감 없는 친숙한 맛이었다. 상해 음식은 대체적으로 단맛이 강한편이다. 그래서 크게 거부감이 없다. 우리는 상해의 샤오롱 빠오(小笼包: 달콤 구수한 국물이 들어간 만두)와 유학시절 즐겨먹던 마라롱샤(麻辣龙虾: 매운 가재요리)와 맥주를 시켜서 맛있게 나눠먹는다.
"哎!烫啊"(앗 뜨거!)
"哈哈哈"(하하하)
"曼点儿吃吧,没有人追你来呀"(천천히 먹어라 누가 안 잡아먹는다)
샤오롱 빠오 속 뜨거운 국물이 입안에 퍼진다. 뜨겁지만 달콤짭잘한 맛이 일품이다. 통증 뒤에 찾아오는 달콤함은 인생과도 닮아있는 맛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그녀와 나는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찬은 화려함 속에 소박함이 묻어난다. 잡아두고 싶은 아쉬운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배를 채우고 난 후 우리는 상해의 상징이 동방명주가 보이는 와이탄(外滩)거리로 나왔다.
"这个东方明珠好像从外星过来的火箭似的,是吧?"(저 동방명주는 정말 무슨 외계 행성에서 온 로켓 같다. 그치?)
"是啊~我们坐这个回我们行星去吧 哈哈哈"(그러네 저거 타고 우리 행성으로 돌아가자 하하하)
저녁을 먹고 빌딩 숲을 걸어서 상해의 화려한 야경이 보이는 외탄으로 왔다. 그녀의 유치한 농담에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하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우리는 잠시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다 사라질 존재일지 모른다. 그녀와 다음 행성에서 또 다시 만날지도...
그녀는 황푸강 난간에 두 팔을 올려 동방명주를 바라보며 자신이 돌아갈 행성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그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바람에 그녀의 머릿결이 나부낀다. 그녀 앞에 보이는 상해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녀의 뒷모습은 쓸쓸함이 묻어난다.
도시는 갈수록 화려해지지만 인간은 갈수록 쓸쓸해진다. 그녀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는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그녀의 손도 차갑게 식어있다. 그녀의 손을 잡아 나의 점퍼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야경만 바라본다. 그녀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와 그녀의 화려하지만 쓸쓸한 상해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다.
“祝你生日快乐”(생일축하해)
우리는 작은 생일 케익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춘옌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케익에 꽂힌 촛불을 입으로 불어서 끈다. 그녀는 주먹을 쥔 손을 내 앞에 내민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뒤집어 펼친다. 손바닥 위에는 십자가 모양의 은색 목걸이가 놓여있다.
“这是我的礼物”(선물이야)
“这是什么?”(이게 뭐야?)
어린 시절 그녀의 남자친구는 남몰래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녀가 살던 사천성의 시골 도시에 어느 날 낯선 선교사가 나타나 작은 지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 선교사는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갖은 선행을 베풀며 마을 사람들에게 성경 속 말씀들을 알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낯선 외지인의 등장에 경계하던 사람들도 그의 계속되는 선행과 밝은 모습에 점점 그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호주에서 온 동양계 사람으로 중국어를 곧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치며 목회자이자 선생님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남자친구는 몸이 아픈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 둘과 함께 살았는데 그 선교사는 매일 같이 그의 집을 찾아가 그의 가족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가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선교사의 도움이 컸다. 항상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만 일삼고 다니던 그는 성경 속 말씀과 기도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남자친구의 집 뒷산이 무너지는 대형 산사태가 일어났고, 집에 머물던 어머니와 동생들이 진흙더미 속에 매몰되었다. 그때 그는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그의 집은 진흙에 매몰되어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맨손으로 진흙을 퍼내며 비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울부짖었다. 며칠간의 피해 복구와 시신 수습 작업 끝에 발견된 가족은 한곳에 모여 서로를 끌어 안은채 주검으로 발견 되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는 불법포교 활동으로 공안들에게 잡혀가고 교회까지 폐쇄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선교사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지할 곳 없는 그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고 가난에서 벗어나려 춘옌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는 신이 아니라 돈만이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这是他离开我的时候留给我的,那时候他对我说过再也不信神”(이거 그가 떠날 때 나한테 남겨주고 간거야, 다신 신 따위는 믿지 않겠다면서…)
“可你为什么给我这个”(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我不能扔它”(버릴 수가 없어서)
“你拿着吧要么扔掉吧”(네가 가지던지 아님 버려줘)
“…”
춘옌은 십자가 목걸이를 나에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나에게 키스한다. 그녀의 마지막 키스는 다시 나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서로의 온기가 뒤섞이며 미세한 체온의 차이는 이내 하나가 된다. 그녀의 얕은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온몸을 뒤덮은 붉은 상처를 차마 바라볼 수 없어 이불을 덮은 채 그녀의 얼굴만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놓지 않은 채 하나가 되어간다. 서로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환희와 쾌락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你可以射精在里边~"(안에다 해도 돼~)
순간 모든 것을 밖으로 쏟아낸다. 그녀의 눈가에 물방울이 옆으로 흘러내린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의 시선을 피한다. 서로는 한동안 말없이 천장만 바라본다.
"我不能生孩子"(나 아이를 가질 수 없어)
"什么意思?"(무슨 말이야?)
"我打胎了多次了,不能再怀孕了"(아이를 여러 번 지웠어, 이젠 더 이상 가질 수 없데)
"..."
천장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돈과 바꾼 몸은 더 이상 생명을 주지 않는다. 그녀의 아픔은 어디까지 일까?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은 위로할 수도 없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는 천장만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는 책 속에서나 보던 글귀가 나의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