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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과 질투 사이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에스터 페렐 - 다섯 번째 -

by 글짓는 목수

“부러움은 갖고 싶지만 지금 나에게 없는 것과 관련이 있는 반면, 질투는 갖고 있지만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과 관련 있다.”


-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그 혹은 그녀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대외적으로 법적으로 서로를 소유했다고 생각했다. 상대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갑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며 손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사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인간은 소유물이 아님에도 우리는 남녀의 관계를 소유의 개념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현대의 결혼제도는 배우자가 상대와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막을 법적 권리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 대한 합의된 규칙과 사회도덕적 기대에 근거해서 상대의 소유권을 가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제 적지 않은 남녀가 이런 기대에서 탈피하려 한다. 그런 행동이 상대의 질투를 유발한다. 가진 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가 분노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질투

“질투를 하려면 먼저 사랑해야 하지만 사랑하면 질투를 해서는 안 된다. (중략…) 질투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독서 모임을 통해서 접하게 된 이 책은 남녀 간의 관계에 관한 많은 철학적 통찰을 가져다준다. 놀랍고 흥미롭다. 최근에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깨달은 것이지만 신들의 세계의 그 모든 사건 사고들이 헤라의 제우스를 향한 질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인간의 모든 사건 사고들도 이 질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 중심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남녀의 관계를 시작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왜 신이 세상을 암수로 나누어 놓았는지 이해가 된다. 암수의 관계에서 모든 모순이 시작되며 피할 수 없는 암수의 끌림이 삶을 모순으로 만들어 간다.


소유와 상실


더 가지는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당신이 그랜저를 타다가 제네시스로 업그레이드되면 그 기쁨은 길어봐야 일주일을 가지 않는다. 소유권을 가진 제네시스를 타는 것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옆에 지나가는 벤츠 E 클래스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부러움이다. 부러움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도처에 부러움을 사는 것들로 넘쳐나기에 장님이 되거나 속세를 떠나지 않고서는 이 부러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정신적 수양이 된 자는 그 부러움이 크지 않아 남들보다 초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질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랜저를 타다가 아반떼로 내려가면 견딜 수 없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려 해도 눈에 전에 타던 그랜저가 계속 눈에 아른 거리면 나를 괴롭힌다. 비단 물질뿐만 아니라 권력도 같은 속성을 지닌다. 당신은 군인이다. 투스타의 사단장이었는데… 어느 날 별을 하나 떼어가 버리고 원스타 여단장으로 강등되었다. 그럼 당신은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다. 물질적으로 뭐 급여가 좀 줄긴 했겠지만 먹고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하지만 정신은 죽을 것 같이 괴롭다. 주식이 상승장일 때는 당연한 기쁨이지만 폭락장일 때는 손실의 공포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던져 버리지 않는가? 인간이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를 훨씬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인정할 수 없는 열정 (Zelos)


남녀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남녀 관계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남자가 여자의 풍만한 가슴을 가지지 않았다고 부러워하진 않는다. 질투는 같은 동성끼리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부러움보다 더 많이 불편한 감정이다. 사람이라면 부러움은 누구나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이 부러움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정과 욕망이 된다.

[질투] 1992

질투(Jealousy)의 어원은 그리스어 열정(Zelos)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종종 부러움이 욕망을 자극하고 (일에 대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러온다. 그렇게 우리는 열정을 불태우며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며 그것을 충족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고 발전시킨다. 하지만 질투는 뭔가 타오르기는 하는데 불쾌하며 찝찝하다. 자신이 초라해진다. 인정할 수 없는 열정이다.


“나는 거부당할까 봐 괴롭고, 상대를 공격할까 봐 괴롭고, 미칠까 봐 괴롭고, 평범해질까 봐 괴롭다”


-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저자는 질투가 4가지 괴로움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질투는 두려움과 상실에 대한 분노이다. 이 분노는 상대를 향하고 또 나를 향한다. 질투가 도가 지나치면 삶이 무너진다. 서로가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질투가 스며들 공간이 없다. 서로에게 집중과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놓아버리게 된다.


허전해진 공간을 다른이의 관심과 집중으로 채우려 하면서 질투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남편과 아내가 과거 연애를 할 때처럼 스스로를 꾸미고 생기발랄해지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나 때문은 아니다. 그럼 의심을 품은 질투가 뿌리내린다. 이런 현상은 오랜 부부와 연인 간에도 생기지만 남녀가 서로의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은 썸 단계에서도 발생한다.


썸 단계의 남녀는 기대와 두려움, 즉 가질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도박을 할 때 느끼는 그런 긴장감을 느끼게 되며 상대가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상황에 알 수 없는 질투를 느끼게 된다. 이건 전자나 후자 모두 소유권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결국 상대에 대한 소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생기는 감정이다. 이 감정을 잘 활용하게 되면 서로는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투라는 녀석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은 것이다.”


-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사랑하지 않는다면 혹은 사랑하지 않았다면 질투의 감정은 생겨나지 않는다.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질의 개념이 아님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상대를 소유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건 우리가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소유권에 익숙해진 탓이다. 세상 모든 것에 소유권이 있다. 소유권의 시작이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그래서 남녀의 사랑도 결혼이란 제도로 서로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오랜 전통적 가치관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어쨌든 당신이 만약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면 정상이라는 말이다. 사랑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투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고 가질 수 없는 가치를 놓고 경쟁하고 비교하는 취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지배권이 소유를 늘린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물건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누군가 내 것을 탐하면 소유권이 내 것을 지켜주고 탐한 자는 벌을 받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법치국가의 전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물질과 자본에 관한 것이지 인간과 인간이 가진 추상적인 가치관과 관념(사랑, 믿음, 소망, 우정 등)에 대해서 주장할 수는 없다. 법은 이런 것을 다룰 수 있다. 법으로만 인간 세상을 통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를 소유하고 누군가의 생각과 가치관을 지배하려 한다. 왜냐 그것이 더 많은 소유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라. 내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럼 그들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이용해서 나의 소유를 늘릴 수도 있다. 믿음과 인기를 돈과 물질로 전환할 수 있다. 그것으로 먹고사는 것이 종교계와 연예계 아니던가 정치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 그래서 가장 지저분하다.

소유욕

“소유욕이라는 난제에 빠진 사람이 있다. 상대를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굶주린 사랑의 본질인 동시에 왜곡된 사랑이기도 하다.”


-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우리가 사는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산업자본주의와 연결된다. 개개인의 자유가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할 때 그것은 인기가 된다. 인기가 모이는 곳, 즉 사람이 모이는 곳은 자본이 모이게 된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원칙 아니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믿음 소망 같은 것들이 자본과 물질과 명예(지위) 같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는 과정과도 같다. 생각을 물질로 바꾸는 과정이 물질문명의 발전이다. 이제 그 물질이 넘쳐나는 세상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들이 생겨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에 보이는 물질들에 더 현혹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시각에 70~80%를 의존해서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된다.


헤어질 결심


소유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유가 당연하다 여기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소유가 권리가 되는 순간 그것이 당연해지고 소유한 것에 대해 소홀해지며 그것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200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물질과 같이 누군가를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간직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헤어질 결심]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항상 헤어질 각오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별을 생각하고 산다면 우리는 상대를 좀 더 아끼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누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곁에 함께 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한 것임을 계속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랑의 믿음이 깨지지 않고 질투가 스며들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질투 - 유승범 -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


웃고 있을거라 생각하지마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그저 사랑의 눈빛이 필요할 뿐야

나의 마음 전하려 해도

너의 눈동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잖아


서로를 잘 안다고 느꼈었지

그래서 사랑이라 생각했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줘

언젠가 너는 내게 말할거야

사랑한다고...


[The state of affairs] Esther Pe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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