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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간 Sep 10. 2019

운명을 찾기 위한 여정

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Ep.13







“제주에는 내가 찾는 공간이 없는 것 같아. 창업을 미뤄야 할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낮추더라도 내가 가진 예산으로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다. 그렇다. 눈이 높은 게 아니라 가진 게 없었다. 세상의 벽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원하는 공간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벌 수 없는 수준이었고, 내 손안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법적인 문제가 있거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야 했다. 꼭 찾아야만 했다, 내 공간을!






아침 6시면 일어나 부동산 정보를 찾고, 새로 나타난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달려갔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한라산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넘었다. 그렇게 공간을 찾은 지 두 달이 지났다. 자전거로, 걸어서, 차로, 제주도를 몇 바퀴를 돈 것 같다.


공간을 찾는 일이 한 달이 지나가니까 주변에서도 정보를 많이 알려줬다. 하지만 대부분 이미 다녀온 곳이거나 거래가 끝난 곳이었다. 가끔 새로운 곳도 있어서 가보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있었다. 공간을 찾는 일은 부동산을 공부하는 일이기도 했다.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예산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었다. 갑자기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는 없을 테니까.


습관처럼 가져오는 지역 정보지의 부동산 광고는 다 외울 지경이다.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식당 창업,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마음이 조급해져 올수록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는 듯하다. 지치면 안 되는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괜찮냐”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을 보면 표정도 꽤 굳었나 보다.


어느새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부동산 광고를 뒤적거리다 눈에 띄는 곳을 향했다. 설마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가는 길이 즐거울 리 없었다. 사실 공간을 보러 가기보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드라이브에 가까웠다.


이 공간이 정말 문제가 있는 건지 내가 문제를 찾아내는 건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비가 와서, 피곤해서, 친구가 놀러 와서, 부동산을 찾는 일을 쉬기도 했다. 핑계가 점점 늘었다. 어느새 부동산 광과 페이지가 아닌 구인구직 페이지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흠짓 놀라기도 했다. 내 식당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친해진 동기이자 형, 정현 형이 보다 못해 공간을 찾는 길에 동행해주기로 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큰 공간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단독 건물이면서 옥상이나 마당이 있어서 손님들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길 바랬다. 제주도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형, 나 창업 포기할까?”라고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가 카페 마감 시간에 쫓겨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정현 형은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


가지가 천국에 닿으려면 뿌리는 지옥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 입구의 문턱도 도달하기 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해보자. 이 과정을 거쳐 공간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가는 나에게도 귀한 공간이 생길 것이다.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공기 안에 눅눅함이 가득해서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던 2019년 6월 29일 아침.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떠보니 정현형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여기 가 보지 않을래?” 링크를 열어보니 세화 지역에 위치한 가게 임대 글이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노력해준 정현 형에게 미안해서 약속을 잡았다. 큰 기대 없이 광고 속 임차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오늘 시간이 된다고 했다.


세화로 향했다. 역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마당이 있는 고즈넉한 공간이 매력적인 건물이었다. 응? 마당이 있었다. 별채도 있었다. 나무의 느낌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작은 공간이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면서도 제주의 느낌이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아름다운 세화 바다가 있었고, 게다가 심지어 내 예산 안에서 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뜻밖의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 공간이 구해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들이 그랬다. 공간은 노력한다고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운명처럼 다가온다고. 그때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던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운명일까?





“나 여기 계약할래” 라는 말에 정현형이 더 놀란 표정이다.


“이렇게 갑자기? 좀 더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유동인구도 너무 적고....”

 정현 형은 잠시 우려했지만 “하긴 완벽한 곳이 어디 있겠어."

 어쨌든 선택했으면 잘 이끌어봐”라며 응원해주었다.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감사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나에게 공간이 와버렸다. 지금껏 그랬던 것 같다. 작은 일은 오랫동안 주저했지만 큰일은 빠르게 결정을 내려왔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도시를 이동할 때도.


세화리야! 앞으로 잘 부탁해.








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프롤로그

그동안 내 인생에 이렇게 열정적인 순간이 있었던가?

1부 목차

ep. 1화 서울! 서울! 서울?

ep. 2화 캐나다는 인생을 도전이라고 했다

 ep. 3화 길이 하나라면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ep. 4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시작하면 되니까

ep. 5화 길을 떠나면 길이 된다

2부 목차

ep.1화 시작하려면 시작하라

ep. 2화 성공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ep. 3화 시도를 공부하는 즐거움

ep. 4화 일단 해보자

ep. 5화 꿈을 이루는 꿈을 꾸는 꿈을 그리다

3부 목차

ep. 1화 이상을 찾아 일상을 떠나다

ep. 2화 공간일지: 20190423-20190630

ep. 3화 세화가 선택한 운명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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