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쉼터

살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지고 싶지 않아서

by 두부언니


path 03



Topˏˋ

orangeˏ lemonˏ rosemaryˏ tangerineˏ pepper

Midˋˏ geraniumˏ roseˏ pepperwood

Baseˏˋ oakmossˏ patchouliˏ sandalwoodˏ tonka beanˏ cedarwoodˏ vetiver





얇은 합판으로 덧댄 엉성한 나무상자가 길을 따라 줄지어 놓여 있다. 상자 안에는 참외며 수박이 하얀색 격자모양 완충재에 쌓여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조금 더 높은 단에는 체리와 자두가 네모진 스티로폼 용기에 담겨있다.


그는 점심을 먹고 차고지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청과물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8월을 향해 가는 여름의 한 복판이었다.


도시의 여름은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졌다. 지난주에 스치듯 지나간 장맛비가 사무칠 지경이었다. 뜨거운 태양을 못 이겨 매미들도 모습을 감춘 듯했다. 그는 30년도 더 된 해묵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오래전 그와 형제를 데리고 도시로 올라 온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지낼 적이었다. 형제는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해 공터에 어설프게 세워진 정자에 가로누워 귀가 찢어질 듯한 매미 소리를 듣곤 했다. 그렇게 여름 내내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를 식혀 줄 비를 기다리곤 했다.


1시가 되자 그는 차로 돌아왔다. 운전석의 문을 열어젖히니 그늘을 찾아들지 못해 달궈질 대로 달궈진 택시 안의 열기가 훅 하고 끼쳐왔다.


'도대체 어디가 [택시 쉼터]라는 거야.'


차를 몰고 빠져나가며 그는 생각했다. '쉼터'라고 명명하기엔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긴 여름 해가 더디게 저물고 나면 도시는 그제야 몸을 식히겠지. 그는 밤이 좋았다. 특히 여름의 밤이 좋았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난 뒤의 서늘함이 좋았다. 그런 낮과 밤 사이의 갭이 좋았다. 한낮의 뜨거움이 밤중의 서늘함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배가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그는 남산을 둘러 나선형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달렸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록수가 빼곡한 구간을 달릴 때면 물먹은 나무가 뿜어내는 단내가 끼쳐왔다. 그럴 때면 그는 서늘하게 식은 밤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얼마 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담배를 끊어냈다. 폐에 신선한 공기를 가득 욱여넣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지난 20년간의 죄책감이 덜어지는 듯 한 기분이었다.


한낮의 도로는 여전히 더웠다. 어서 밤이 왔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 지루하고도 뜨거운 낮이 한 시 바삐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에 끌려다니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스팔트 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지 말자고 종종 다짐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루의 팔 할을 도로 위에서 보낸다.

'햇살이 비추면, 그림자가 드리우는 줄 알고
해가 기울면, 그림자가 지는 방향을 알자'



연애시절 아내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도 길을 따라 청과시장이 줄지어 서 있다. 오늘의 귀갓길에는 자두를 한 봉지 사 들고 들어가야겠다. 자두가 달 계절이니까.





Noteˏ
비 맞은 나무 / 바람 / 가로수 / 청과

처음엔 패츌리의 물기 어린 향이 느껴지고, 중간 즈음에는 샌달우드가 잔잔하게 깔려있다가 마지막에 남는 건 달콤한 꽃향기 같아요. 패츌리의 향을 맡으면 무의식적으로 여름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름과 나무, 꽃향기의 조합이 참 좋다는 생각입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패츌리 아로마 오일에는 벌레를 쫓는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패츌리가 베이스로 사용된 향수가 아로마 오일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여름 애용해볼까 합니다.


*이 글은 paffem의 'path 03. 밤바다 드라이브'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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