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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Oct 27. 2024

#3. 교차

이른 시간임에도 광장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실수나 후회되는 시간들을 되돌리려 애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현의 마음이 급해졌다. 발걸음이 점점 속도를 더해갔다. 그렇게 중앙대로를 가로질러 입구로 들어서는 찰나, 딩동!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곧바로 워치를 확인했다.


<슬립 : 허가. 슬립 예정시간 : 10시 40분.>


됐어! 수현은 그러쥔 주먹을 가볍게 허공으로 내질렀다. 시각은 10시 15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딱 맞춰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센터 정면으로 수현의 키의 두 배를 훌쩍 넘는 높이의 문 세 개가 간헐적으로 여닫히며 사람들을 맞고 있는 게 보였다. 문은 수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채 손을 대기 전에 부드럽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좌우로 길게 펼쳐진 데스크와 그 뒤쪽에서 미끄러지듯 오르내리는 투명한 엘리베이터들이 보였다. 각 데스크마다 하얀 유니폼을 단정히 차려입은 직원들은 허가가 떨어진 예약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입구의 접수 시스템에 워치를 인식시킨 수현은 대기번호를 받아 들고 근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련된 디자인의 소파는 보기와 달리 쿠션감이 전혀 없어 불편했지만 어차피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터였다.


좌우 벽면으로 있는 무인 데스크에도 예약을 확인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무인을 사용한다면 좀 더 빠른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수현은 직원을 통하는 게 편했다. 그 편이 왠지 모를 껄끄러움에 목구멍이 까슬해 오는 슬립 전의 미묘한 불안감을 조금 덜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수현의 차례가 왔다. 예약화면을 보여주자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친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그가 배정된 층을 알려주었다.


미소로 답한 수현은 승강기로 향했다. 승강기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고개를 들자 높다란 천장까지 이어진 투명한 통로 속을 수많은 엘리베이터가 오가는 게 보였다.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그 모습은 마치 끊임없이 대사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를 연상케 했다.


그때 경쾌한 차임과 함께 승강기문이 열렸다. 투명한 바닥 위로 발을 들이고 서자 엘리베이터는 소리도 없이 스르르 위로 올라갔다. 곧 눈앞에 창 하나 없이 천장부터 벽, 바닥까지 온통 새하얀 복도가 나타났다.


수현은 배정된 번호의 방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반투명한 달걀형의 캡슐들이 세 개의 원형 금속틀에 싸인 채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곳곳에서 기계들이 낮게 구동하는 소리가 들렸고, 점점 속도를 내며 엇갈려 돌아가는 금속틀 사이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타임슬립 후 스립을 한 이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단 5분. 


그가 슬립으로 도착한 과거의 시간대에서 5분 동안 어떤 선택을 바꾸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새로운 선택에 의해 변경된 현재의 시간대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그 결과가 대상자가 원하던 대로일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미 정부의 허가가 떨어진 슬립에는 안전성이 확인된 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슬립에 임하곤 했다. 


잠시 후의 더 나은 현재를 위해 건배!


하지만 수현은 이 시스템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왜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달걀모양의 캡슐을 보고 있자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돌리기 위해 태어나기 이전의 알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상황이라니.


쓴 입맛을 다시는데 근처에 있던 로봇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수현에게로 다가왔다. 로봇의 안내를 받으며 구동준비가 완료된 캡슐 앞으로 서자, 문이 열리고 서늘한 빛을 내뿜는 금속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의자에 마지막으로 앉은 게 언제였더라? 


그러고 보니 작년 사고 이후 처음인 듯싶었다. 그건 햇살이 유난히 쨍하던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대외업무부서 내 두 팀이 조인하여 여러 달을 공들인 계약을 마무리짓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근 시간이 자유로운 아내에게 아이의 등원을 맡기고 수현은 미팅장소로 향했다. 무사히 계약을 마친 뒤 뿌듯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가는 도중 수현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접촉사고가 있었고 아내와 아이가 많이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그 뒤 어떻게 병원까지 갔었는지 수현은 아직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부랴부랴 응급실로 향했다. 아내와 아이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수현은 곧바로 타임슬립을 신청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가족의 문제와 저울질할 수는 없었다. 출근 전의 아침으로 돌아간 수현은 같이 계약을 추진했던 박팀장에게 양해를 구하여 자기 대신 계약을 마무리해 주길 부탁했다. 아이를 직접 등원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질적으로 계약 성사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은 본인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덕분에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아내와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대신 수현은 큰 계약을 성사시킨 박팀장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계약성사와 더불어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던 승진 자리까지 그에게 양보하게 되었지만, 수현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가족이 무사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기회는 다시 올 것이고, 그때는 놓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수현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승진이 문제가 아니라, 다음 퇴사자 일 순위가 될 수도 있었다.


수현은 어금니를 악다물며 의자에 올라앉고는 비치된 고글을 착용했다. 시간은 단 5분. 그 안에 잘못된 것들을 바꾸어야 한다. 예상대로만 일이 돌아간다면 다시 돌아온 현재에서 그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이사진과 팀원들의 축하를 한껏 받고 있을 터였다.


이윽고 캡슐의 문이 닫히며 금속틀들이 서서히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캡슐의 반투명한 벽 뒤로 교차하는 틀들이 조금씩 속도를 더해가며 돌아가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속도를 가늠해 보다 이내 그만두었다. 어쩐지 시작도 전에 벌써부터 현기증이 이는 기분에 눈을 끔뻑이는데 눈앞으로 디지털 숫자가 떠올랐다.     


[ 이수현, 남, 76****. ]

[ 타입슬립시각 2050. 03.28. 10:40 -> 2050. 03.28. 7:30. ] 


수현은 영상 속 자신의 정보와 현재시각, 그리고 슬립예정시각을 차례로 확인한 뒤 버튼을 터치했다. 


“곧 슬립이 시작되니 가벼운 현기증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세요.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짧은 안내 멘트와 함께 슬립 중 이완을 위한 명상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단조로운 음이지만,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애써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0. 


허공에서 미세한 빛이 이는 것과 동시에 고글이 암전 되었다. 이어 눈꺼풀 뒤로 아련하게 어른대던 빛이 차츰 밝아지는가 싶더니 빛무리가 순식간에 눈앞을 덮쳐오며 전신에서 무언가 단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순간 곧장 절벽으로 내리 꽂히는 서늘한 감각이 이어졌다. 속이 메슥거렸다. 신경을 바짝 곤두서게 하는 그 느낌은 수현에게 매번 섬뜩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문득, 수현은 생각했다. 

뭔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어딘가 모르게 미묘한 이질감이 들고 있었다. 공간을 매끄럽게 쓱 통과하는 대신 밀도가 높은 막을 지나는 듯한 가벼운 압박감.


뭐지?


고개를 갸웃하던 수현은 이윽고 완전히 통과한 느낌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10시 30분. 

수현이 타임슬립을 시도하던 그 시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으로 분주한 가운데 하늘을 관찰하던 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양 흑점이 폭발하며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플레어가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빌딩 꼭대기의 대형 전광판 화면이 잠시 지지직거리기도 했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 몇이 무심히 올려다보다 이내 다시 바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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