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사소한 킬러 23화
조안나는 이자영에게 설마, 경찰이냐고 물었습니다.
경찰, 언제 들어도 찜찜한 직종이자 단어였죠. 어감도 안 좋아요.
“경찰은 아니고 전직 검사.”
거의 다 이해됐습니다.
맨날 죄지은 인간들만 상대하다 보니 말투가 저 모양일 것이고, 직접 감옥에 처넣었다는 것으로 봐서 남편이란 사람도 범죄인이거나 범죄에 연루된 인간, 다만 한 가지, 검사출신 변호사라는 여자가 외모가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라는 것은….
'뭔가 기묘하게 안 어울리는데..'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뜯어보는 조안나의 눈초리를 의식했는지 이자영이 먼저 말했습니다.
“아, 이거? 좀 여성스럽게 입는 게 좋다고 해서 꾸며봤는데.. 맨날 앉아만 있었더니 엉덩이가 펑퍼짐해져서.. 운동이라도 좀 해야 하나? 맞다. 자기가 PT강사라고 했지? 잘됐다. 어디야? 이 근처면 좋은데.”
진도가 막 나가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박서우가 부러워했던 골반은 결국 많이 앉아 있어서 생긴 직업병이라는 건데, 이런 것도 부러워해야 하나요?
“PT 좋죠. 싸게는 못 해드려도 빡세게 굴려는 드리죠. 후후.”
알고 보니 이자영은 악명이 자자한 전직 서부지검의 공안검사였습니다.
그 지역의 그런 저런 조직 몇 개가 이 여자 때문에 공중분해되고, 이자영을 죽이려고 보낸 행동대장은 캘러한의 손에 반병신이 돼 중환자실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다는..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지는 중이라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무슨 죄로 처넣었는지… 혹시 남편도 조폭?”
조폭 잡는 검사라고 하니까 조안나는 본능적으로 주눅이 들었습니다. 현직 검사가 아닌데도. 폭력 하면 조안나 아니겠습니까? 말보다 폭력, 생각보다 빠른 폭력!
“조폭은 무슨, 그럴 감도 못 되는 인간인데. 지 마누라가 검사라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짜술 좀 마시고, 삥 좀 뜯는 것까지는 봐주겠는데, 술집애한테 손찌검을 했다는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잡것이! 딴 건 참아도 그런 건 절대 못 참지. 해서 특수폭행에 횡령 배임까지 걸어서 5년 푹 썩게 했지. 진작에 짤랐어야 했는데.”
짤라? 뭘? 거시기? 조안나는 그녀의 말에서 섬뜩함 마저 느꼈습니다.
게다가 아빠는 빵에 가고, 엄마라는 여자는 저 모양이니 애가 학폭위에 연루됐다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학폭위는 어쩌다가요?”
대충 짐작했지만 물었습니다. 뻔하지 않나요? 집단 따돌림의 대빵이거나, 그 하수인으로 저보다 더 약한 애 못살게 굴어서 빵셔틀 시키든가.. 부모가 저런 식이니 그 집 애가 학폭위 갔다는 게 딱히 이상하지 않았거든요.
“자기 제법 체계적으로 취조한다. 진짜 사설탐정 같아. 해결사라면서, 그러면 캘러한하고 동업자?”
“절대 아니에요.”
“절대 아니다? 강력하게 부정한다면 꼭 그렇지 않지도 않다는 뜻인데. 상관없고. 오케이, 감 잡았고. 우리 애가 왜 학폭위에 갔냐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에이 모르겠다. 다 사랑 때문이야. 망할 사랑.”
“넹? (어벙벙) 사랑 때문에 학폭위를 간다뇨?”
“그치? 이해 안 되지? 사랑이 죄냐고?”
이자영이 조안나와 캘러한을 번갈아 보며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랑이 죄는 아니지만 죄의 원인제공을 하는 경우는 꽤 있지 않아? 치정살인이라든지.”
내내 듣기만 하던 캘러한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시끄럽고. 범죄인 주제에 누굴 가르쳐? 우리 애가 막말로 누굴 줘 팼어? 아니면 욕을 했어? 그냥 사랑했다는 거 아니야! 그게 뭐가 문제야?”
이자영은 진실로 억울해 보입니다. 도대체 누굴 사랑했기에 학폭위에 가냐고요. 조안나도 궁금해 미칩니다. 가뜩이나 잘 못 참는데.
파견 나온 교생선생님을 사랑했을까요? 아니면 동급생 여학생을?
“혹시 좋아하는 여학생을 스토킹 했어요?”
스토킹이라면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문제가 되죠. 학폭위도 열릴만하고요. 그러나 이자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우리 애가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돼. 애가 섬세하기만 하지. 너무 소심해서.”
남편을 빵에 처넣을 정도로 막 나가는 여장부의 아들이 섬세? 소심?
조안나의 가치관이 흔들립니다. 도대체 이 여자 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걸까요?
“굳이 잘못이 있다면..”
“있다면…?”
“사랑의 방향성이 조금 일반적이지 않다고나 할까?”
“네? 그게 뭔데요? 사랑의 방향성? 벡터? 수2 안 했는데.. 뭐가 일반적이지 않은데요?"
이자영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캘러한이 대신 대답했습니다. 아주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 집 꼬마, 남자 좋아한대. (이자영을 보면서) 뭘 그리 빙빙 돌려 말해? 가뜩이나 헷갈리는 애한테.”
불편한 침묵이 시작됩니다.
중학생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이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그렇기는 한데, 다 이해하는데, 남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한다?
-나, 왜 이런 기분이 들지? 그게 뭐 문제라고?
조안나가 눈만 끔뻑거리며 아무 말도 안 하자 이자영이 물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문제가 돼? 그래도 남자애가 남자애 좋아한다고 학폭위는 좀 아니지 않아? 내가 고슴도치 엄마라서 그래?”
조안나의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문제 될 거 없죠. 쌍방 간에 합의된 관계라면.”
말하고 보니 너무 이상합니다. 조안나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싶었어요.
-내가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합의? 그렇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합의가 중요하지. 캘러한, 이 아가씨 감 좋다. 도움이 제법 되겠어.
그래, 자기 말대로 그게 문제지. 다른 애들이 우리 애한테 좀 질색했나 봐. 그냥 고백 좀 한 것 가지고.
에이, 사랑이 뭔 죄라고. 하긴 사랑이 죄를 짓지는 않지. 죄는 인간이 짓는 거지.”
“그런데 검사님, 아니 변호사님은 알고 있었어요?”
“뭐? 아, 우리 애가 남자애 좋아하는 거? 몰랐지. 변호사 개업하기 전에 우리 애 만난 적도 많지 않은데. 난 그저 생모일 뿐. 말하고 보니 정말 나쁜 엄마네. 난.”
“나쁜 부인이기도 하지. 남편을 감옥에 보냈으니.” ⇐ 캘러한
“맞아. 나쁜 딸이기도 하고. 좋은 게 없어.”
이자영이 자괴감 속으로 추락합니다. 조안나의 눈에는 그게 보였어요. 저거 안 좋은데.
“이제부터 잘하면 되죠. 변호사 개업했으니 이제 시간도 많을 것이고, 좋은 엄마 하면 되잖아요! 늦지 않았어요. 그렇죠?”
“좋은 엄마? 좋은 엄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편들어 주세요. 자식이 무슨 짓을 해도 항상 우리 편. 내편. 무조건적인 지지.”
“그거면 될까?”
“그거면 충분하죠.”
이자영이 조안나에게 뜻밖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 내가 딴 건 못해도 편들어주는 건 잘하지. 직업도 변호사잖아! 내가 우리 아들 편 한다! 어린애가 남다른 성격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한 거지. 무슨 그런 일로 학폭위에 보내? 이 미친 것들을.. 그저 선생이란 것들이 전부 생각하는 게.”
조안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작지만 이자영에게 도움도 됐습니다.
그런데 자식은커녕 결혼 경험도 없는 캘러한이 학교에 따라간다는 부분은 영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에 이 인간이 도움 될까요? 가서 깽판 치지 않으면 다행인데.”
조안나의 질문에 이자영이 아무 문제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노리는 게 바로 그거야. 깽판!
마음 같아서는 내가 제대로 진상 한번치고 싶지만,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서 남편대행을 구한 거지.”
“그러다 일이 정말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일은 이미 잘못됐어. 그놈의 학교 학폭위라는 게 다 형식이고, 결론 정해놓고 치는 고스톱 같은 건데. 퇴학 아니면 강제전학이야. 더 잘못될 것도 없어. 우리 애가 남자애 좋아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