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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냐, 자존심이냐, 언제나 이것이 문제!

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by 시sy

사소한 킬러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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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도 오랜만에 새 의뢰를 받았습니다.

무려 2개나..

그래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아, 미치겠네. 어느 걸로 하지?”

“말해봐. 너보다 백만 배 똑똑한 언니가 정리해 줄게.”


조안나의 고민을 대부분 무시하는 박서우가 웬일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거든요.

캘러한이 바람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네요. 그녀 스스로도 놀라고 있어요. 그런 일에 자신의 기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말이에요.


“하나는 돈이 되지만 존심이 상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돈은 안 되지만 보람은 있을 것 같아.”

“당연히 돈이지. 뭘 망설여? 거지 주제에.”

“거지 아니라며? 난 단순히 낭비를 많이 하는 거라 했잖아.” (투덜)

“취소야. 거지 맞아. 낭비벽까지 심한 거지!”


조안나는 발끈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박서우가 무시하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지금은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우씨, 화나지만 참는다.”

“좋은 자세야. 을(乙) 일 때는 무조건 참아야지! 그럼 돈 되는 의뢰부터 말해봐.”


“돈이 되는 건.. 말하기도 창피하긴 한데.. “

“뭘 망설여? 애인대행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거야 의뢰인이 잘 생겼을 때만 하는 거고. 남친 없을 때 심심풀이로... 아무튼, 돈 되는 의뢰는 학원에서 나눠주는 기말고사 예상 문제지를 받아오는 거야.”

“겨우 그런 게 의뢰야? 너 많이 타락했구나. 이제 심부름센터에서 하는 일도 해?”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요즘 저작권문제 때문에 학원에서 문제지 배포를 얼마나 엄격하게 하고 있는데. 원래는 학원에 등록한 학생 본인과 직계가족에게만 주는 거라고.”

“다른 학생 받은 거 구해서 복사하면 되지.”


“걔들은 어렵게 구한 예상 문제지를 빌려 주겠어? 엄마들이 알면 난리 날 껄? 억만금을 줘도 그건 안돼. 더구나 이 동네 문방구에서는 학원 문제지 절대 복사 안 해줘.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당하거든.”


박서우는 일단 구해만 오면 경찰서 복사기로 해주겠다는 말을 할 뻔했다가 참았습니다. 모냥 빠지게 그게 무슨 짓입니까? 명색이 경대 나온 경찰간부가.


“그럼 학생이 학원 갈 때 직접 받아오면 되잖아. 그걸 굳이 돈 줘가며 왜 너 같은 사람한테 시켜?”

“기말고사 기간에 학원에 어떻게 가? 독서실에서 공부하거나 집에서 족집게 과외를 받아야지.”


“헐, 가지도 않을 거면서 학원에 등록은 왜 했대?”

“그게 포인트야. 바로 학원에서 나눠주는 예상문제지를 받기 위해서지. 적중률 높은 학원은 시험기간에 문제지만 배포하면서 떼돈을 긁어모아. 나도 학원을 했어야 하는데.”


“그건 그렇지. 네가 무식한 것만 빼면.”

“아, 진짜. 그만 좀 갈궈! 사람 심각한데.”


“알았어. 그러면 넌 문제지를 어떻게 받을 건데?”

“고민해 봐야지. 안되면 학원에 야간침입을 해서라도.”


왠지 조안나라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원체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거는 스타일이라.

"근데 대치동 학원산업에 대해 언제 그렇게 조사를 많이 했어?"


박서우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조안나가 뻐겼습니다.

"조사 좀 했지. 원래 이 바닥에 학원 관련된 의뢰가 좀 많아. 그동안 내가 자존심 때문에 안 해서 그렇지. 그런데 알잖아. 내 재정상태가 워낙 바닥이다 보니 의뢰를 가릴 처지가 못 돼서."


여튼 멍청해 보여도 맡은 일은 제대로 하는 편입니다. 박서우가 내심 흐뭇합니다.

“그럼 돈 안 되는 일은 뭐야? 돈도 안 되는 의뢰라니.. 들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만.”

“위자료 대신 받아 주는 거.”

조안나가 눈을 반짝였습니다.

박서우는 느낌적으로 불안해졌습니다.

'저거 또 오지랖을... 좀 뜸하다 싶더니..'


그러나 조안나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뭐지? 그게 왜 돈이 안 되지? 전형적인 ‘떼인 돈’ 받아주는 일이잖아. 그건 못해도 40%는 수수료인데.”

“선금이 없어. 의뢰인이 현재 돈이 없거든.”


“위자료 받아서 네 몫 떼면 되잖아. 하긴 못 받아내면 개고생만 할 수도 있겠다. 그럼 하지 마!”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단순한 애가 생각을 복잡하게 하니까 그렇지. 그냥 넌 생각하지 마. 내가 대신 잘 생각해서 판단해 줄게. 흐음. (생각하는 척한다) 역시.. 하지 마! 안 하는 게 낫겠다.”

박서우는 결론 내렸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안나는 박서우의 결정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아, 쫌! 나 심각하다고!”

“왜 포기 못하는데? 딱 보니 의뢰인이 여자 같은데, 그 여자가 네 취향은 아닐 테고.”


“그런 거 아니고. 그 여자 사정을 들어보니 전 남편 새끼가 너무 저질이라 그래.”

“새삼스럽지도 않다. 원래 이 사회에는 나쁜 놈이 훨 많거든?”


“알아. 아는데 그 자식은 진짜 질이 나빠. 이혼한 부인한테 위자료를 받고 싶으면 그때마다 성관계에 응하라니 그게 제정신이니?”

“위자료가 할부? 게다가 위자료 받을 때마다 섹스하자고? 그 새끼 완전 변태네. 그럴 거면 왜 이혼했대? 결혼한 상태였으면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되는데.”


“섹스를 원하는 만큼 안 해줬다는데.. “

“나름 일관성은 있네. 남편이 섹스 중독자? 아니면 여자가 무성욕자? 내가 알바 아니고. 어쨌든 그게 다는 아니지?”


“부인을 때렸지. 그것도 많이. 자주.”

“그럴 줄... 뻔한 스토리네. 뭐 하는 놈인데?”


“그게.. 고리대금업자 중간 수금책.”

“헐, 떼인 돈 받으러 다니는 인간에게 떼인 돈 받으러 가게 생겼네. 정말 하게?”


“그런 자식을 가만 둘 수는 없잖아. 몰랐으면 몰라도.”

“그렇지. 네 오지랖에 알면 못 넘어가지. 그래도 감당할 수 있어? 그런 쪽 인간이면 쉽지 않을 수도 있어.”


“마음만 먹으면 그깟 인간 고자 만드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지. 다시는 섹스하고 싶어도 못하게. 그런데 돈 받아내는 게 문제야.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뭣하면 캘러한한테 부탁해 봐. 돈문제는 귀신 아니니? 내가 잘 말해줄 수도 있어.”


“그건 안돼. 해결사로서 자존심 문제야.”

조안나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박서우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끄덕였습니다.

"할 수 없네. 그냥 문제지나 받으러 가. 모냥새는 안 나와도 쉽게 돈 버는 일 아니야. 복잡한 일에 얽힐 일도 없고."

"그래도.. 끙!"

사실상 조안나의 마음이 '떼인 돈'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박서우는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괴롭히는 중이었죠.

“어떡할래? 의뢰비도 불확실해, 돈 받아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해. 그런데도 섹스 안 해서 이혼당하고 위자료 못 받는 여자를 도와주고 싶어?"

“모르겠어.”

“둘 다 안 하는 옵션도 있어.”


멋집니다. 꼭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편견이죠. 박서우이니까 가능한 생각이긴 한데, 조안나에게는 불행히도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거든요. 아, 생각과 행동인가요?

“에이, 그냥 문제지나 받으러 갈까 봐.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네 말대로 이 세상 나쁜 놈들 내가 때려잡을 수도 없고.”


박서우가 조안나의 머리를 쓰담쓰담해줬습니다.

“우리 윤희(조안나 본명) 많이 똑똑해졌네. 그래도 네 논리에 문제 있는 건 알지?”

“뭔데?”

“네가 그 나쁜 놈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분위기 다운 됐습니다.

박서우가 지적하지 않아도 막연히 느끼고 있었거든요.

조안나는 스스로 옳다는 일을 하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 정작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 말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나쁜 년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내가 악당이라고 할 수 있고...”

“응. 그래서 캘러한이 막무가내로 행동하는지 몰라. 액수만 맞으면 한다는 자기만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스스로 가치판단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거지. 자기도 나쁜 놈이니까.”


“그건 아니라고 봐. 그 인간은 그냥 돈벌레야. 게다가 빌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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