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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Jun 25. 2024

무언갈 하고 있는 나 vs 하지 않는 나

아프던 슬프던 모두 다 나인걸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거나 예상한 일이 벌어지면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같은 크기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진열된 상점의 선반은 편안함을 준다. 

늘 만나던 익숙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9 to 6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게 싫어 선택한 프리랜서의 삶.

같은 일상이 반복면 지루함을 느끼고, 늘 다니던 길보단 새로운 골목길을 선호하는 나.


정리된 공간을 좋아하지만, 어지르는 것을 더 잘한다. 

자유롭길 바라면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원한다. 

지루한 건 못참으면서, 새로운 것은 두렵다.


내 안에는 이런 상반된 모습이 살고 있다. 

이렇게 모순으로 가득찬 내 안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전쟁이 일어나곤 한다. 

무엇이든 하려는 나와 아무것도 하지않으려는 나는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 논리 속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때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을, 때론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좋은 결과에 만족하고, 나쁜 결과에 한숨지으며 과거의 나를 어리석다 탓하기도 한다. 




세상은 자꾸만 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자존감을 높이라고 한다. 

이른 새벽 일어나 운동을 하고 식단에 맞춰 식사를 하고 경제신문을 읽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AI를 공부하는 등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미디어에 넘쳐난다. 

마치 그렇게 살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그들의 영상을 보고 있는 나는 한심한 존재라는 듯 일침을 가하는 것만 같다. 


그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하고 나면 뿌듯하면서도 피곤하다. 

미라클 모닝을 하겠다고, 잠을 줄여보니 하루 종일 병든 닭마냥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 일어나 운동복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가면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이 쌓인다. 

그러다 새벽기차를 타야할 일정 때문에 아침 루틴을 지키지 못하면 하루 종일 찝찝하다. 


무언갈 하고 있을 때의 내 모습을 좋아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내 모습을 싫어한다. 

열정적으로 무언갈 하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가 내리던 잣대들이 유달리 내게 더 엄격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유독 나에게 짜게 굴었던 것 같다. 

슬프던, 아프던 모두 나이고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도 모두 나인데

서툴고 어리석은 혹은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을 모습은 거부하고 탓하게 된다. 

어쩌면 나를 억까고 있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모르겠다. 

스스로를 좀 더 믿고 싶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용기를 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어떤 모습이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고 한다. 

이론으로 아는 이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무너지곤 한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소스라치게 한심스럽고 바보같이 시간을 보내버린 자신을 탓하는 그 감정을 껴안고 생각으로만 '이런 나도 사랑하라고 했어'라는 것이 가치가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냐, 나를 사랑하는 건.










얼결에 키우게 되어 15년을 동거해 온 고양이가 있다. 

독립심이 강한 탓에 곁을 잘 내주지 않던 녀석은 지가 필요할 때만 골골거리며 곁을 내어준다. 

그것이 참 서운했다. 

요녀석이 물고 할퀴어 팔과 다리에 상처가 나면 참 아팠다. 

지딴에는 장난이라도 꽤나 쓰라리고 상처가 깊을 때도 있다.

사람이면 "서운하다, 그러지 마라" 말이라도 해 볼텐데, 그것도 쉽지 않아 꽤나 답답했다. 


언제부터일까

곁에 와 주는 것이 그저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세워 물다가도 슬쩍 턱에 힘을 빼는 녀석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탈스러운 입맛에 비위를 맞추느라 사온 간식들의 절반을 버리다가 하나라도 잘 먹는 걸 발견했을 때의 뿌듯함과 기쁨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좀 해 주지'

하는 마음이 사그라들면서 그냥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녀석 나름대로 루틴이 있었다.


오후 내내 제 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잠을 자거나 몸단장을 한다. 멍하니 늘어져 있기도 한다.

아무리 오라고 불러도 놀자고 낚시대를 흔들어봐도 꼼짝을 안한다.

간식으로 유혹하면 마지못해 일어나 간식만 먹고는 홀랑 제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하루를 마치고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나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이 되면 귀신같이 침대로 기어올라온다. 

그러고는 침대 정중앙에 네 발을 쭉 뻗고는 늘어져 있다.

'나를 만져라 닝겐! 이젠 내 시간이다!'

라고 그 시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 같다. 

그래놓고 막상 쓰다듬으면 승질을 낸다. 

'그게 아니라고!'

라는 것 같기도 하고,

'아, 겁나 좋네! 계속 해라!!!!!!!!'

고 소리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가 만족스러우면 가만히 있고 싫으면 요리조리 몸을 틀어 지가 원하는 곳이 쓰다듬어지도록 맞춘다. 

아무리 비싸고 좋아하던 간식이라도 지가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귀신같이 지가 원하는 것을 알고, 당당히 그것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어이없고 서운했던 그 모습들이 이제는 귀여워보인다. 

떡져서 뭉쳐진 털들이 청소기 먼지통을 두세번 비우며 청소해도 옷에 음식에 들어가 있어도 그 털이 반갑다. 

화장실 다녀와서 온 집안을 모래투성이로 만들어도, 비싼 캣타워 대신 내 요가매트에 발톱을 갈아 아작을 내 놓았어도, 온갖 박스와 비닐들을 잘근잘근 씹어 부스러기들로 어지럽혀져도 괜찮아졌다. 

언젠가는 이 시간들이 그리워지기도 하겠지. 


'너니까, 너라서 괜찮아. 어떤 모습이라도, 행동이라도 너니까 괜찮아. 다 예쁘고 귀여워'

이 녀석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마음들이 올라온다. 


아무래도 괜찮은 마음. 

그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 

이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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