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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영 Aug 11. 2024

일제 강점기 수탈 거점지 '목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의 흑역사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절, 목포에는 식량자원 수탈을 위한 주요 거점 창구 역할을 했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는『일본의 법률에 의하여 1908년 조선에 설립된 농업척식을 주로 하는 식민통치를 위한 국책회사이다』라고 하였다.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하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창립 당시 한일 양국의 이중국적의 회사로 출발하였으나 1910년 국권 상실과 더불어 일본 국적의 회사가 되었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산업자본이 성장하면서 농민의 대량 이동과 도시 노동자의 급증이란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일본의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져 일시적인 식량 수급이 악화되었다. 1918년 대규모의 쌀 소동이 일어나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 처했고 급기야 1920년대부터 대불황이 닥쳐왔다. 이에 일본은 조선에서 식량 증산을 강행하여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도록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주로 항구가 있는 부산, 인천, 목포에 설립되었다. 특히 목포지점의 경우, 전남 각지에 소재하고 있던 17곳의 농장을 관리하였는데 동척 지점 가운데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두던 제1위의 지점이었다. 또한 부동산(특히 농지) 담보대출을 통해 조선 농민을 수탈하는 금융기관으로 악명이 높았던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의 가장 상징적인 곳이다. 일본은 조선을 식량자원의 공급지로 삼아 강압과 수탈로서 우리 민족을 고통에 빠트렸다. 착취된 잉여 생산물 상당 부분, 종주국으로 유출되어 일본 자본주의 외연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 그 시절 우리 기층민(서민)들의 식생활은 어땠을까? 조선인 전체의 식생활은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기본적인 식재료인 쌀이 부족해지면서 곡물(보리, 감자, 옥수수 등) 같은 대체 식품을 주식으로 사용되었지만 이마저도 일본인들이 수탈했기 때문에 조선 내에서의 공급은 원활하지 않았다.     


주식물의 분류를 크게 4개의 분류로 나누어 설명해 보면, 제1류는 쌀만을 주식물로 하고 보리 등 기타의 잡곡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제2류는 쌀 및 보리의 2종류를 주식물로 하거나 혹은 쌀과 보리와 함께 여러 가지 잡곡을 주식물로 하였다. 제3류는 쌀을 전혀 섞지 않고 쌀 이외의 곡물(보리, 조, 콩, 감자, 기타)을 주식물로 하였다. 제4류는 쌀도 보리도 사용하지 않고 조 및 기타의 잡곡을 주식물로 하였다.     

전남 기층민의 주식물에 대한 분류 섭취 비율은 제1류는 15.41%, 제2류는 60.96%, 제3류는 22.39%, 제4류는 1.24%를 섭취하였다. 아침과 점심에는 감자나 풀뿌리 또는 나무열매 에다 약간의 옥수수나 귀리, 콩, 팥을 섞어 지은 밥이나 국을 먹고 저녁에는 조와 옥수수 조각을 섞은 죽이나 귀리가루, 메밀가루를 국물에 풀어서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백미를 먹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그들의 생산물인 감자, 조, 귀리 등이 주식물이었다.


부식물은 김치를 먹고 육식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는 밭이나 들에서 채집한 채소와 나물, 김치, 장아찌나 젓갈,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나 김, 미역 등의 해조류를 통해 영양을 보충하였다. 겨울철에는 점심을 먹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목포 항구를 통해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아서 일본 음식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이 되어 기존 한국 전통음식에 일본식 조리법이 혼합된 식문화가 확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부 일본인과 특권계층(친일본 자본가, 지주 등)만이 이러한 혜택을 누렸고 일반 기층민(서민)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간신히 식생활을 유지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대다수의 서민의 식생활은 극에 달한 참담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목포에 잔재 일부가 남아있어 근대역사문화 속에 민중이 겪었던 고통의 흔적은 어렴풋이 기억되고 있다.


1) 목포문화원(2012). 목포의 향토문화연구.

2)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산미증식계획

3) 김성미, & 이성우. (1989). 일제하 한국인의 식품 섭취 및 생활 계층별로 본 영양소 섭취량에 관한 연구. 한국식 생활문화학회지, 4(1), 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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