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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Dec 27. 2020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며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 끓일 남자들을 위해..

매년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인다. 벌서 20년이 다 되어 간다. 결혼 첫 해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해서 매해 빠지지 않는다. 물론 맛있게 먹어주며 칭찬까지 하는 아내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내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여주던 엄마의 모습과 그 맛이 몸속에 남아서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는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던 엄마의 마음을, 그리고 없는 살림에 소고기까지 한 가득 넣어 끓였던 그 정성스러운 미역국의 맛을 잘 몰랐다. 그냥 생일이니까 먹어야 하는 미역국 정도였다. 여자보다 무딘 남자의 감성이라고 하면, 음.. 안 될 것 같고, 그저 내가 무뎌서 그렇게 밖에 이해를 못했을 거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자식을 키워보니, 미역국을 끓이던 엄마의 마음과 그 정성스러운 맛을 알 것 같다.


세상 밖으로 나오느라 애썼다.


엄마의 마음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생일에 끓여주는 미역국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이런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아내이든, 자식이든, 그리고 부모이든.


내가 끓이는 미역국도 엄마가 끓였던 꼭 그때의 그 맛이 난다. 늘 엄마 옆에 붙어있는 것을 좋아했던 나였다. 당연히 곁눈질로 엄마가 미역국 끓이던 방법을 익히기도 했고, 또 내 몸의 감각이 그 맛을 기억하고 있어서 엄마가 끓였던 미역국과 비슷한 맛이 나는 게 아닐까.


내가 끓이는 미역국에는 소고기, 들기름, 마늘, 미역 그리고 물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부분 이 정도의 재료로 미역국을 끓이는 것 같긴 하다. 물론 요즘 여기저기 생긴 미역국 전문점에 가면 소고기 미역국뿐 아니라 전복, 조개, 가자미를 주재료로 해서 끓인 다양한 미역국 맛을 볼 수 있다. 이런 전문점의 미역국들은 가격도 꽤 비싸다. 집에서만 먹던 평범한 미역국을 서비스하는 전문점이 생긴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이라고 그 미역국을 표현했었다. 물론 그는 그 미역국 집에 생각만 나면 드나드는 단골이 되었다.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있으니 단골이 안될 수가 없다.


전문점만큼의 맛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랑은 더 많이 들어갔다고 자부하는 내 미역국은 이렇게 끓인다. 아주 쉽다.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볼 남자들이 따라하기에 딱 적당하다.


1. 큼직한 스테인리스 냄비를 1분 정도 달군다.

2. 잘 달구어지면 잠시 불을 끄고 식힌다. 이건 스테인리스 냄비이기 때문에 생기는 절차다.

(절차라고 하니, 왠지 회사인 듯하다. 그런데 다른 단어가 생각이 나질 않아서 ㅠㅠ.)

3. 적당히 식으면 들기름을 두른다. 그리고 소금을 뿌려둔 양지 국거리 소고기와 마늘 두 조각을 넣는다.

4. 소고기를 둘둘 둘둘 돌리고 뒤집으며 볶는다.

5. 소고기 색깔이 연한 갈색으로 바뀌면, (밤새) 잘 불려놓은 미역을 투하(?)한다.

6. 적당량의 물을 넣고 끓인다.

7. 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나면 국간장을 적당량 넣는다. 조금 적게 넣는 게 좋다. 뭐, 고혈압이며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조금 오래 끓이면 맛이 깊어지고 간도 적당해진다.


사실 특별한 레시피도 아니다. 적당이라는 말이 몇 번이나 들어간, 그냥 평범한 레시피다. 하지만 이 평범한 미역국이 그래도 꽤 맛있는 건, 사랑과 정성이 조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보글거리며 미역국이 끓는 소리가 난다. 고소한 들기름의 향이 난다. 오늘 아침에는 가족이 다 같이 미역국을 먹을 것이다. 따스하게 잘 끓여진 미역국을 같이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며 감사한 마음이 올라온다. 올 한 해, 코로나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안정적인 회사까지 그만둔 나 때문에 아내는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웃으며 잘 버텨준 아내에게 무척이나 고맙다.



※ 이미지 출처

  - 한국 산후조리원 협회


※ https://brunch.co.kr/@desunny/90


※ 나훈아의 테스형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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