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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속삭임 29화

용서

by 문성희



가끔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얼굴들

이제는 아프지 않은 먼 과거의 흔적

살짝 아릴 뿐, 아직도 선명할 뿐

그들의 두 눈, 얼굴과 몸짓, 말투, 날카롭던 입꼬리

그들도 알지 못했던 이유 없는 일방적인 칼날

그저 견뎌야 했던 씁쓸한 그 어린 날들

이해할 수 없었던 외로움과 고독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될 성인의 문턱에 선 날

새로운 인생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날들의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 무기 삼아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지키며

나의 곁 누구의 곁도 되지 않고

즐거이 살자며 즐거이 살자며


하지만 늘어만 가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들

결국 과거와 과거의 나와 대면하는 순간

내 안의 어딘가 숨겨져 있던 그날들의 기억과 감정들

천천히 내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빨개지는 서로의 얼굴과 눈

아픔이란 슬픔이란 고통이란

그제야 우린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펼쳐 놓은 과거의 조각들을 보면서

어느덧 서로의 가슴에 손을 얹은 우리

이젠 괜찮다고 오히려 그 시간들로 인해

조금은 강해진 우리라고

그저 감사한, 아픔을 견딜 수 있었던 시간들

과거의 아이가 나의 손을 잡으며

침묵의 속삭임으로


“과거의 그들 또는 나 자신을 용서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건

상처받은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고 사랑해 준 너야

그거면 된 거야.”


그렇게 난 나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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