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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Apr 10. 2023

요가와 요리는 여정

narrative_recipe: 별책부록


요가는 여정 Journey라는 말이 위안이 되었던 적이 있었어. 거꾸로 서고 몸을 뱀처럼 꼬는 그런 자세가 꿈이지만, 그보다는 두 다리를 쭉 찢을 수 있다면 얼마나 시원할까, 그런 궁금증 때문에 다리 찢기가 ‘목표’가 되어버린 나에게 누군가가 해 주었던 말이었어.


알록달록한 채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쫄깃한 버섯은 식감과 맛으로 능가할 수 있는 재료가 없다고 생각해. 버섯을 아주 맛있게 혹은 맛있어 보이게 볶으려면 10분 정도 꽤 오래 볶아야 해. 그러면 먹음직스러운 갈색이 되지. 미리 만들어 둔 채수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리조또를 만들 생각을 못했을 거야. 그리고 유독 딱딱하게 되어버린 현미밥이 냉동실에 있다면 생쌀을 볶아 만드는 것보다 가볍게 만들 수 있으므로 오늘은 이게 아니면 안 되는 날이 되었지. 리소토 쌀을 구해 올리브유에 볶는 한참의 시간을 기꺼이 넘겨버리는 지혜는 크고 높은 솥이 없어 스파게티를 반으로 뚝 잘라버리는 현명한 요리사에게서 배운 태도야.


좋은 올리브유, 녹색, 갈색, 흰색을 담은 채소 팔레트


마늘 볶던 무쇠솥에 딱딱한 현미밥과 채수를 반컵 넣고 수분이 증발되면 다시 채수를 반컵 넣어. 채수와 함께 와인도 조금씩 넣는데 누가 먼저인지 순서에 대한 강박이 있진 않아. 이렇게 반복을 하는 동안 그저 난 솥 곁에서 리조또로부터 와인을 조금씩 뺏어 마시는 여정이 즐거울 뿐이야.


예전에 벽을 바라보고 양파를 2kg 채 썰다가 울었던 때를 기억해.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채를 썰면서 한쪽엔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어서 양파를 씻으려면 설거지도 해야 하는 상황에 내 눈에 들어온 타일 벽은 막막함과 외로움이었어. 하지만 요리의 여정에서 몰래 입으로 들어가는 재료의 조각들을 (자투리를 먹기보다는 토마토 속 쥬스와 알갱이 같은 핵심을) 먹고, 와인도 훌쩍 마셔.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를 만드는 이유는 레드와인을 마시기 위해서야. 리조토를 만드는 이유 또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기 위함이야. 결과야 어떻게 되든 재료가 적당히 익고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짜지만 않다면 여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기쁨을 만끽하자고 세상에 모든 요리사들에게 이야기해.


The botanical Garnen, Sydney. 맨발로 정원을 걷는 자유로움으로 요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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