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저는 사람의 삶을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했는데 이어서 말하자면 산 봉우리에 다가설 때쯤에는 오로지 저 봉우리에만 올라서면 만사가 해결될 것처럼 느꼈어도 그 봉우리가 다른 봉우리로 연결된 산등성이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또 다른 삶의 문제들, 그러니까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는 저 봉우리에만 다다르면이라는 간절한 소망에 가려져서 채 의식하진 못했지만 잠시 지나치는 바람결처럼 문득 또는 언뜻 의식을 잠깐 지나쳐간 느낌으로 아주 흐릿하게 느껴졌던 연속된 삶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잠시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한 뒤 마치 누가 "이제 다시 길에 나서야겠지?" 하면서 손을 내미는 듯한 느낌 때문에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또 저 멀리 보아는 다른 산봉우리를 향해 방향을 가늠하며 다시 걸음을 떼야할 텐데, 이제까지 걸어온 경험들을 되새기면서 비로소 걷기 가능해진 길에 다시 나서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중요한 점은 왜 우리가 때로는 험한 산길을 걸어야 하는지. 또는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인데 이를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해 본다면 삶이란 흐뭇하고 행복하기만 한 정지된 영화 속 장면과 같을 수 없어서 행복한 순간, 속상하고 불쾌한 순간, 아릿한 슬픔을 느끼는 등의 순간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순간순간들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겠지만 우선 힘겹고 달갑지도 않은 순간, 어쩌면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 힘겨운 순간들이 시간과 함께 지나가긴 하지만 앞으로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또 다른 힘겨운 순간들을 위한 내적인 힘이 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기억으로 남으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힘겨운 순간들을 견뎌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어릴 적 뛰놀았던 널따란 초등학교 운동장을 성인이 된 뒤 다시 보았을 때 "내가 놀았던 학교 운동장이 요것밖에 안 됐어?" 하면서 좀 놀라듯이 그간 걸어온 길을 문득 뒤돌아 보면 "내가 저런 문제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어?" 하면서 잠시 좀 어리둥절한 느낌마저 들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한발 한발 힘겹게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았을 때 "어느새 이만큼 왔구나" 하면서 까마득하던 산 봉우리가 조금은 가깝게 여겨지고 이제까지의 고단하기도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 줄 나무 냄새, 풀 냄새,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귀엽고 앙증맞은 벌레 그리고 거대한 폭포수 소리에 견주먼 작은 소리지만 제 존재를 입증하려는 듯이 울퉁불퉁한 작은 바위들 틈새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마치 "잠시 쉬었다 가세요" 하는 느낌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힘을 내어서 걸음을 떼야할 것입니다. 그런 발걸음을 이만큼 견뎌냈으니 그 힘을 바탕 삼아서 이왕이면 좀 더 잘 살아내고 싶다고 마음이 격려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과 견주어 본다면 왜 삶이라는 산속에서 걸음을 떼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걸음 속에서 왜 간간이 반드시 휴식이 필요한지 그리고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삶이라는 걸음을 멈출 수 없는지 아마도 느낌으로 이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절대적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나 이기주의에 적대하는 이타주의 모두 막연하게는 흐뭇하고 고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힘이 나기는커녕 정신적 심리적인 엄청난 부담감을 주어서 몸에서 힘이 쪽 빠지게 만들고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끔찍한 무기력감과 함께 "인생, 뭐 있어?" 하는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뿐이지만 자신의 삶, 즉 적절한 생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책임지면서 동시에 거창한 가치에 비교하면 설혹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나 자신의 문제이자 공유된 사회적 문제에 억지로 눈 감지 않고 그 관심에 이끌려서 고민을 한다면 삶의 생기를 쉽게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왜냐하면 삶의 생기란 아무런 문제도 갈등도 없는 완벽한(?)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또는 살아내는 과정 중에 생기는 문제들에서 억지로 눈을 떼려 하지 않을 때, 즉 생기고 변하는 리듬 같은 삶의 움직임에 몸과 정신을 맡기면서 동시에 그 파도 같은 삶의 물결을 느끼면서 몸을 가누며 타기도 할 때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항상 힘겨운 상태를 견뎌낸다는 것은 멋져 보일지 몰라도 인간인 이상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정신과 마음을 아우르는 우리의 몸은 당사자가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자 않는 이상 항상 고통스러운 상태를 지속시키자 않고 때로는 좀 아쉬울 정도라도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데 이는 정신을 집중해서 어떤 일에 몰두할 때 어떤 시점이 되면 피로감을 느끼면서 아무리 고집을 피워봤자 더 이상 집중을 할 수 없거나 독한 마음을 품고 어떤 작업을 하느라 밤을 지새우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시점이 되면 집중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잠이 쏟아지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지금 겪고 있는 문제나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당장 구할 수 없더라도, 아니 어쩌면 언젠가는 그에 대한 답, 다시 말해서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잠정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문제나 갈등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마음의 상태를 정직하게 인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다시 산길의 비유에 적용해 보자면 이 길이 맞는 것 같다는 짐작으로 인한 불안을 견디면서 아마도 맞을 것 같다는 희망과 함께 그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불안과 함께 여린 희망도 품으면서 중간중간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즐기고 깨끗한 계곡 물도 마시고 이름은 몰라도 눈길이 가는 야생화로 조금 눈 호강도 하다가 지친 마음과 육체가 피로감에서 벗어나면 그 달콤했던 휴식을 뒤로하고서 다시금 자각된 불안, 즉 이 길이 맞는 것 같은데 하는 희망을 품은 불안, 더 정확히 말해서 여린 희망 때문에 생긴 불안을 다시금 견디면서 조심스레 그리고 긴 호흡으로 발걸음을 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닥치는 문제를 산 봉우리라고 생각한다면 높은 산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이 삶의 모습이 아니라 그 봉우리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일부이고 반드시 산 봉우리에 올라서야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길목에 앉아서 아픈 다리를 쉬어가며 주변 풍경을 넌지시 바라보는 것, 다시 말해서 힘겹게 걷는 동안 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던, 사람 사는 세상으로 비유될 수 있는 산의 숲에서 전해오는 다양한 소리와 모습과 삶의 일상적인 냄새 등을 보고 듣고 맡으면서 그렇게 그 속에서 애써 살고 있는 나를 새삼스레 자각하는 것도 그 못지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시간 속에서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살아내야" 하는, 때로는 힘겹기도 하고 때로는 소소하게 행복하게 되기도 하는 과정이니까 말이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