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시
맨발을 하고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가 흠뻑 적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기를 끼얹고서는 부스에서 나왔다
다 젖은 발을 하고는 물기 없는 욕실 바닥을 딛으며
나는 왜인지 뒤꿈치를 든 채로 엉성하게 서 있었다
너를 이토록 흠뻑 알기 전에는
나는 샤워 부스 안을 밟듯 용기 있는 발걸음이었다
맨발로 무엇을 밟든 무엇이 묻어나든 상관이 없었다
이제 너라는 사람에 완전히 젖은 나는 버릇처럼 엉성하다
사랑스럽던 네가 무섭고
두렵지 않던 내가 그립다
욕실 바닥은 티 없이 깔끔한데
내가 사랑하는 너는 그대로인데
나는 오늘도 엉성하게 서 있다가
자꾸만 뒤로 달아난다
이러다 너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