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늦가을,
첫아이가 태어났다.
마치 천사처럼
예쁘고 귀엽고,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딸아이.
자식 낳아본 사람은 모두 똑같겠지만
당시 내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듯
오직 나만 행복한 것 같았다.
매일매일 구름을 밟고 다니는 기분.
누구나 겪듯이,
아기 시절엔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게 된다.
예방접종도 자주 해야 하고 잔병치레도 많다.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깜짝 놀라던
초보 부모 시절.
집에서 5분 거리에 소아과 한군데가 있었다.
신 소아과 의원.
새로이 튼 거래처였는데
바로 딸의 주치의 선생님으로 삼았다.
연배가 나보다 대여섯 많아서
나도 형님처럼 여겼고
원장님도 역시
동생 같이 생각하셨는지
유독 살갑게 대해 주셨다.
환자가 많아 딸아이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면
일과 후에 다시 오라고 해서
추가로 이야기해 주시기도 한
다정다감한 선생님이셨다.
주문해야 할 약이 생기면
전화대신 퇴근길에 집 앞에서
나나 집 사람을 불러내기도 했다.
“야, 나는 네 딸의 항문도 그릴 수 있어!”
이렇게 농담을 하기도 하셨다.
집 앞에서 “빵~~”하고 자동차 경적이 울려 내려다보면
원장님이 웃고 계시곤 했다.
“여기에 사냐? 돈 많이 벌어 좋은 데로 이사 가라.”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무척 애도 쓰셨다.
회사에서 전근 발령이 나서
서울로 이사 간다고 이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진심으로 섭섭해 하셨던 원장님.
이제 일흔쯤 되셨을 것이고
딸아이도 삼십대 중반이 되었다.
문득 뵙고 싶어진다.
어떻게 지내실까.
과연 나를 기억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