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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Apr 14. 2020

벚꽃 아래서 서운한 마음을 말렸다

당연하다 생각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감사'가 당연히 사라진다.

딸 너에게.


지난주 토요일. 

밖에 나간 김에 벚꽃이 너무 보고 싶더라. 

인천대공원에 가려했지. 

그곳 벚꽃이 참 예쁘거든.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벚꽃 축제가 취소되어 버렸어.

인천대공원도 잠정 폐쇄 결정이 내려져서

아예 들어가 볼 수도 없었지. 


봄이 되면 

벚꽃 흐드러지게 핀 것만큼은 꼭 보겠다며 

근처 어디든 가곤 했어. 

벚꽃을 못 보면 몸살이 날 것 같았거든.


최근에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들이 

자가격리 규정을 어기고 벚꽃 구경을 나갔다가 

강제 추방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봤어. 

추방 위험에도 불구하고 구경 갈 정도로, 

만개한 벚꽃은 아름다웠던 거지.


서울 살 때는 '남산 킬러'라 불리는 네 아빠를 

따라 매주 남산을 갔어. 

아빠는 남산을 참 사랑하지. 

고등학교 때부터 남산에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좋아하는 걸 보면 

취향이라는 건 평생 동안 

유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산 말고도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벚꽃 구경 코스는 

북악 스카이웨이. 삼청각. 부암동 등 여러 곳이지.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을 때면 

매년 이 정도 꽃잔치는 

당연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예쁘다. 좋다. 멋지다. 사진 찍자. 인생 샷 건졌네.'

'사진 잘 좀 찍어 줘. 다시 찍어 줘.'

벚꽃 나무 아래서 내가 한 말들은 이런 종류였던 것 같아.


코로나 19가 창궐하면서 알게 되었어. 

매년 자연이 공짜로 선물해서 당연하게 누리던 

그 꽃잔치가 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야.


송도 센트럴파크


며칠 전 일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었는데

오며 가며 아파트 단지 내의 벚꽃들과 

집 근처 공원의 벚꽃들로 

몸살 날 것 같은 마음을 살짝 달래 봤어. 


공원의 벚꽃 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 

벚꽃비 맞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말렸어. 

그러면서 다짐도 해보았지.


다음에 벚꽃비 맞을 때는 

먼저 '감사하다'라고 외치고 감상도 해야겠다고 말이야. 

소중한 것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는 

대상이 사라지거나 제한됐을 때 비로소 알게 되나 봐. 


우리가 어리석어서라기보다는 

'없어 본 적'이 없었기에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거지.  

돌아가신 부모님도. 폐쇄된 벚꽃 축제도. 

모두 눈앞에 보이지 않는 순간,

'아차!'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려면 

매 순간순간 일단 감사 먼저 하고 시작해야겠어.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감사합니다.

내 눈에 나타나 줘서 감사합니다.

나와 함께 해줘서 감사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감사'가

당연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창궐은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널리 퍼진다는 뜻이고

만발은 꽃이 활짝 핀다는 뜻이다


창궐해도

만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창궐하기에

만발 감상을 참아야 하는 것은

이 즈음

우리의 의무이다.


창궐이 종료될 때에도

그즈음의 꽃들이

앞다퉈 만발할 테니


올해의 벚꽃 축제는

다음으로 미루자. 

서운한 마음은 슬며시 말려보자. 


미루다 미루다

다시 보는

벚꽃이

얼마나 흐드러지게 필지

눈이 시리도록 지켜볼 테다.


감사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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