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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Aug 15. 2023

1. SBG 프로덕션

<소설 > 애니메이션 회사

스물두 살, 가을.

은정이, 이모의 소개로 애니메이션 회사에 출근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연락이 왔다.

선화부에서 신인을 뽑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은정의 말에 의하면 SBG프로덕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계 애니메이션 감독이 만든 회사라고 했다.

인천에서 삼성역까지 두 시간 거리였지만 나도 아르바이트 말고 번듯한 직장생활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지하철의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삼, 사십 분 일찍 출근했던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빈 방의 정적을 깨우는 느낌, 세상에 먼저 말을 거는 느낌,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쌓여 있낯선 불온했던 촉감들……

그렇게 텅 빈 방을 차지하고 앉아, 밤새 머릿속에 감긴 상상을 풀어놓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나만의 크리에이티브한 리츄얼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습관이 남아있는 거 같았다.

예를 들면,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다락방에 올라가 혼자 몽상을 펼치는 습관 말이다.


출근한 지, 이삼일쯤 되었을 때, 회전의자에 앉아 지하철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빗고 거울을 보며 립글로스를 바를 때, 누군가 작업실의 문을 열고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권도현이었다.

립글로스를 바르다 들킨 것이 부끄러웠던 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일어나 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일찍’이라는 말을 건네다…… ‘왔네’라는 말을 맥없이 떨어뜨리고 문을 닫았다.


그 후, 권도현은 매일 그 시간에 찾아와 말없이 문을 열고, 얼굴을 “삐죽”내밀며 나를 확인하고 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단으로 달려와 꽃에 물을 주는 소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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