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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는 곳엔 눈이 내렸나요?

: 흰 눈

by 윌버와 샬롯

눈이 내리길 기다렸다.


금세 녹아버려 그냥 시늉만 하고 마는 눈 말하는 게 아니다. 펑펑 내려 나무에 쌓여 있는 눈도 흔들어 털 수 있고 눈밭에 누워 눈 천사도 만들어보고 눈싸움도 하고 큼지막한 눈사람도 만들고 오래도록 창고에 묵혀있던 눈썰매도 꺼낼 수 있는 그런 눈을 보고 싶었다.


어릴 때는 아침에 눈이 내린 걸 알고 온 세상이 하얘져 저절로 탄성이 나오고 어느 땅에나 발이 뽀드득 푹푹 들어가 함박웃음이 지워지지 않던 그런 날이 있었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눈이 내린 옥상을 혼자 차지해 행복해했다. 처마 밑에 기다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그런 아침이 요즘엔 그렇게나 그립다.


철없는 소리나 하고 있는 걸까. 눈이 많이 내린 다른 지역에서는 고생스러운 바깥 모습이 뉴스에 나오지만 죄송스럽게도 그래도 난 우리 동네에 좀 더 눈이 오기를 바랐다.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아무것도 못하는 무료함으로 바깥 풍경에 눈이 내리는 거라도 보고 싶었던 걸까. 세상이 하얘지면 뭔가 다른 세상이 바로 오는 게 아닐지 허망한 소망을 품기라도 한 걸까. 그저 저벅저벅 어릴 때처럼 푹 들어가는 눈길을 밟고 싶었던 것일까.


기대처럼 아직은 내 성에 차도록 동네에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지만 오늘 이 그림책을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쩌면 흰 눈은 앞으로 맞이하는 새 봄에 맘껏 볼 수 있을지 모를 거라는 작은 희망을 안게 했다.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미처 몰랐었다.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그냥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던 거다.


매화나무에도 벚나무에도 조팝나무에도 이팝나무에도 쥐똥나무에도 산딸나무에도 아까시나무에도 찔레나무에도, 꽃으로 못다 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왜 나는 몰랐을까. 이름도 몰랐던 이 어여쁜 꽃들이 미처 겨울에 다 내리지 못했던 그 눈이라는 것을. 평범한 눈을 가진 내가 몰라보니 세상은 그렇게 시를 보내셨나 보다.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끝이 아님을, 이제 돌아오는 새 봄에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시인이 내게 위로하는 듯하다.


봄이 오고 나무에 연둣빛 이파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난 다시금 깨어나곤 한다.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새 학년을 맞이하는 아이들처럼 나도 그때쯤이면 새 시작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그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어린잎을 내놓는 나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갑자기 나도 부지런을 떨기도 한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할머니는 원래 꽃을 좋아하실까. 할머니 옷에도 해가리개 일모자에도 방석에도 밥상에도 빨랫줄에 널어놓는 이불에도 꽃이 만발하다. '내 인생은 언제나 꽃이 피는 봄이야'하며 말하는 듯하다.


주름지고 머리칼은 하얗게 샜지만 할머니는 소녀처럼 미소 짓고 있다. 병아리와 닭을 키우고 장을 담그고 자신의 옷과 이불을 빨고 밭에서 나물을 캐고 그것으로 손수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고양이 한 마리도 돌본다.


간소한 식사를 마친 후 뒷짐 지고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할머니 뒷모습에서 당당한 어른이 보인다. 삶을 스스로 일구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숭고한 모습. 그 어떤 부끄럼도 거칠을 것도 없으니 할머니 미소가 온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할머니는 꽃나무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올봄에는 그 어여쁜 꽃들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난해 모든 힘듦을 잊을 수도 있을 텐데.


작년 가을에 이사를 했다. 이사 온 집 베란다 밖에는 제법 큰 목련 나무가 창에 삼분의 일 정도 드리워져 있다. 난 이 나무에 꽃이 필 날을 고대하고 있다. 내 눈에 펼쳐질 하얀 눈, 목련 꽃 잔치 그 날에 난 좋아하는 사람을 모두 초대하리라. 그리고 함께 함을 기뻐하리라.


작은 솜털 봉오리에서 흰 눈이 필 찬란할 그 날을 기다리며, 할머니 같은 어엿한 사람으로 부디 가까워지길 바라며 오늘 하루도 나는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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