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 Airbag
여느 때마다 몰아치는 괴로움의 격류가 극에 달할 때, 꼭 찾게 되는 노래. 마치 그 이름처럼 사고 직후의 충격을 덜어주는, 에어백이다.
실제 글을 적는 지금, 몸이 많이 좋지 않다. 며칠 전부터 앓았던 속앓이에 사흘은 밤잠을 설친 것 같다. 억지로 세웠던 계획을 이행하려고 하면, 뇌에서는 칼 같은 제동을 걸었다. 자야만 한다고. 그렇게 하루는 20시간을 잤던 것 같다. 하필 가장 바빠야 할 지금 시기에.
최소 5년은 소화계 문제로 건강이 흔들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소화 능력만큼은 자부했었던 나인데. 그런데 지금은 꽤나 위태롭다. 극적의 일탈이나 처참히 망가진 하루가 아니었음에도, 생활의 삐걱거림은 찾아왔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거친 흔들림은 한순간에 모든 의욕을 잡아먹고, 억지로 깨어나려고 해도 몸은 더더욱 회복을 원했다.
운동도, 글도, 계획했던 다른 생활도. 모두 미뤘다. 무엇보다 마음이 무척 시리다. 정말로 나는, 지금 당장 에어백이 필요하다. 메소드처럼 달려가는 검은 선의 억지스러운 완성은 아픔의 경감이 아닌, 전적인 치료를 위해서다. 그래야만 조금 편한 숨이 내셔질 것 같아서.
가사는 가기 싫은 집을 멀리하려고, 택시를 타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이를 보여준다. 마치 회색 도시에서 혼자서만 떠도는 외톨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흘러나오는 택시의 라디오 음성, 흥얼거리는 유행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나만 섬인가 봐. 한숨 섞인 가사가 마음 한 구석을 찢는다.
훅은 애절함의 끝을 달린다. 에어백을 갈구하면서도, 지금 겪는 카타르시스를 모두 털어내야만 회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곡의 감상에서 모두 비워내고, 잠잠히 회복하라는. 마치 절절함을 못 이겨 엎드린 나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다.
이후 택시 창밖을 보고 혼자만의 사유에 빠진다. 정리할 일도 많은데, 술자리를 피하진 않는다. 난 혼자이기 싫은 걸까, 아니면 눈에 띄게 혼자이고 싶은 걸까. 내게 외로움은 당연해, 과연 내 곁에 누군가 있다고 해서 나눠 가질 내가 있을까. 쓸쓸한 그림자가 머무르는 사회 일면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만치 쓸쓸하지 않은 이가 어디에 있을까.
갑자기 들리는 기사 아저씨의 투덜대는 목소리. 약속 잡힌 술모임이 취소 됐나 봐. 그렇게 시선은 옮겨서 미터기에 있는 가족사진에 닿고. 나의 방황은 집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갈 길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갈 곳은 많은데,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어느새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린다. 언제부터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한참이 된 듯이, 빗물이 길바닥에 고여있다. 그리고 그 위에 비친 교통사고 전광판이 보인다. 이때 갑자기 잘살고 있을 네가 기억이 나는지,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또 눈앞의 사망이란 단어 옆에 숫자 1이 어찌나. 외롭게 보이는지.
비가 오고 내 마음이 미끄러지고, 네가 무척 그리운 이 밤.
난 또다시 혼자가 된 것 같아.
자주 찾아선 안 되는 곡인데, 결국 찾아야만 하면 비틀대며 에어백을 부여잡는다. 찰나의 포근함이 다시 나를 수렁에서 꺼내주기를 간곡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