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고도 소중한 시간
오늘 외출은 익숙한 사람을 위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저 먹은 열매에 대한 식후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정을 소화시키고 환기시키는 데에는 명료한 걸음일 것이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조금 요란하다. 쿵하는 소리는 오늘의 환기를 위한 신호탄과 같았다. 평소 꽤나 아끼던 셔츠를 입었다. 후줄근하게 나가는 것은 소박한 발걸음을 하는 나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혼자만을 위한 외출을 할 때는 멀끔하게 나가는 편이다. 걸쳐준 보답으로 셔츠는 잊었던 추억을 건넨다. 그때의 사람과 풍경, 그리고 향기가 스치는 듯하다. 괜히 눈과 코가 짹짹거린다. 부산스러운 지저귐에 이른 웃음을 짓는다.
하늘이 맑다, 속에 담긴 밤하늘과는 다르게. 반복되는 작은 여정에 맞닥뜨리는 날씨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설사 우중충하더라도, 밤하늘은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오늘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자주 가던 카페로 목적지를 정했다. 공부나 약속이 아니었기에, 가속 페달에 힘이 부쩍 실리는 느낌이다. 온전한 감정의 주유만을 위한 시간은 계속해서 나를 보챘다.
항상 같은 자리의 카페에 왔다. 수년간의 익숙한 풍경이라고 해도, 사라지지 않은 것에 안도를 느낀다. 너무나도 익은 시야라서 무감각할지도 모른다. 뒤이어 절실한 필요가 솟아났을 때 사라져 버린 풍경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급하게 상상에 불과한 허망함을 접었다. 많이 안타깝겠지. 비산하는 감정을 달래며 카페 문을 열었다.
일상을 나누던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멈췄다가, 재빠르게 정면으로 복귀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입장했다. 카운터에 선 두 눈이 슬그머니 메뉴판을 훑었다. 그리고 한 줄을 겨냥했다. 딸기 요거트를 시키고 싶었다. 디저트를 강력히 추천해 준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 맛있었는데. 물론, 이후에 혼자서도 종종 먹은 기억이 있다. 동일하게 흡족한 맛으로 말이다.
이번 주에 쌓아왔던 자기 관리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시작됐다. 저릿한 근육통에 깔끔한 식단이 줄곧 이어졌는가. 아쉽게도, 지금의 평가는 탈락인 듯하다. 결국 입맛을 다시며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아 얼음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차갑고 쌉쌀한 것이 향도 좋았다.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또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이번엔 내 시선도 따라갔다. 한 아이가 보호자와 함께 카페에 들어섰다. 집중되었던 대다수의 눈길이 다시 걷혔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흰 티에 청멜빵을 입은 아이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보호자에게 아이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듯했다. 아마 먹고 싶은 메뉴에 대한 것이겠지. 주문을 마친 후 자리로 간 아이의 발은 박자를 타는 듯했다. 일정하면서도 신나 보이는 스윙이 덩달아 내 감정에도 노를 저었다.
밤하늘의 구름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바깥의 풍경은 확실히 멀어진 듯했다.
잠시 뒤 아이의 눈앞에 기다리던 것이 도착했다. 뒤돌아 앉은 모습에 멀리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조금 시선을 돌리니 유리벽에 비친 딸기들이 보였다. 흐음, 뭘 좀 아는 친구였다. 괜스레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 동시에 눈 밑의 빨대가 스푼으로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흠칫, 원두물에 대한 흥미가 식었다. 반절이나 남아있던 컵을 한 번에 싹 하고 비웠다.
디저트를 맛보는 아이의 웃음이 카페 내부를 울렸다. 그리고 그 웃음이 나의 감정을 어르어 만졌다. 물론 아이의 눈은 나를 포착하지도,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일상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았다.
누군가의 당연한 기호로 이루어지는, 소박한 행동과 감정은 관찰하는 이로 하여금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휘발성이 강해서 아까의 셔츠처럼 입을 때나, 그곳을 직접 방문해야만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래도 아까의 출발선에서 지어진 웃음과 앞날을 꼼꼼하게 다짐하며 지금 퇴장하는 나의 뒷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다.
행동은 있으나 뚜렷한 목적이 없는 여정이었고, 그저 감정을 풀어놓기 위한 시간에서 밤하늘은 절반이 꺾인 초승달을 은은하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