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 6. 뜨겁게 내 일을 사랑하던 그때
MZ 사회초년생 이야기
선생님도 우리를 버릴 거예요?
Class 5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얘기를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한 가지 큰 착각을 한다. '그렇게 뜨겁게 좋았던 일이 싫어지면 어떡하죠..?' 내 답변은 "그럼 쿨하게 떠나면 된다."이다. "엥...?" 싶은가? 어떻게 발견한 천직인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떠난다고 하는 것 같은가? 지금은 유통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내가 정말 뜨겁게 사랑했던 직업군이 있다. 바로 교육계였다. 그리고 난 진짜 뜨겁게 내 일을 사랑하고 최고로 몰두했고, 끝내 그 일을 떠났다. 시간대를 잠깐 역행하여 그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당시 나는 국립기관의 청소년지도자로 일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봉사활동이었지만, 난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였다. 돈은 못 벌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배우는 순간들이 많았고, 국립기관 직원들이 일개 봉사활동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저소득층 청소년, 위기청소년, 다문화 청소년, 탈북 청소년, 진로캠프 참가 청소년 등 진짜 다양했다. 많은 친구들이 내 삶에 발자국을 남기고 지나쳐가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서 난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이 왔다.
당시 나는 할아버지가 위독하셨다. 중환자실에서 중중 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셨다. 할아버지와 많은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중한 가족인 것은 틀림없었다. 할아버지 병이 점점 나아지는 상황을 보고 나는 국립 기관에 일을 하러 들어갔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청소년들은 한부모가정 또는 보육시설에서 성장한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을 처음 봤을 때 질투가 많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잠시 동료 선생님의 부재로 인해 옆반 아이들을 잠깐 맡은 것만으로도 질투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 아이들은 나에게 몇 번을 물었다 "선생님도 우리를 버릴 거예요?" 겨우 2박 3일 동안 보는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해하다가 이내 "선생님이 너희를 왜 버려~ 여기 있는 동안은 같이 있는 거지" 하고 약속을 했다. 밖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 청소년이든, '여기서 있는 동안은 내가 보호자다.'라는 생각으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서 1통의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많이 위독하다는 이야기였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고민했다. 절친한 근무자에게 넌지시 현재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친구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어서 할아버지 곁을 지키러 가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낮에 아이들과 한 약속이 무겁게 느껴졌다.
고민하다 결국 난 "맡은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찾아뵙겠다"라는 뜻을 가족들에게 밝혔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아마 겉 멋 만 들은 어린아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위독해지기 전, 할아버지와 같이 병실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살아가면서 정말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꼭 지켜라"라는 유언을 들었었기 때문에 선택을 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다음날 오후 2시부터 상황이 호전되셨다.
그렇게 사랑했던 너인데
그 일이 차차 싫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문제에 맞닥 뜨렷다. 물론, 그 일을 한다고 해서 금전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업무 강도 대비 내가 받는 급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예전보다 뜨겁지 않은 이유를 '버는 만큼'에서 찾는 내 자신에게 정말 많이 실망했다. 결국 문제를 타파하지 못하고 업종을 떠났다. 물론 그때의 경험들은 내가 어려움을 봉착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표가 되어주었지만, 한동안은 후회를 했었다.
뜨겁게 사랑했던 인연을 떠올리는 일이나, 뜨겁게 내 일을 사랑했던 순간을 기억하는 일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후회하지 않는 척을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후회를 한다.
그 당시 모습이 그려지면 웃음이 난다.
다시금 그런 뜨거운 시간이 왔으면 하다가도,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뜨거운 시간이 오면 더 잘할 자신도 있지만, 놓쳤을 때의 그 공허함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 뛰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트랙을 뛰고 왔다. 타지 근무가 잦기 때문에 트랙을 뛰는 일은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세레머니다.
이 습관은 꽤 오래된 습관이다. 벌써 8년은 되었다. 처음 트랙을 뛴 이유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체력이 밀리지 않기 위해서 뛰었다.
군대에 있었을 때는 나 혼자만의 유일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서 뛰었다.
방황하던 시기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뛰었다.
지금의 나는 수많은 과거의 나들이 중첩된 과거를 바라보며 뛰고 있다. 그러면서 내 발걸음이 힘찬지, 늦은 지 확인하면서 뛰고 있다. 내 발걸음은 여전히 뜨겁게 찍히고 있다.
그리고 옛날처럼 간절히 뛰고 있다.
그럼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