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물
어느 날
작은 틈에서 생겨난 그것이
하얀 너의 눈망울을
복숭아빛으로 물들이고
마침내
달랑 눈 끝에 맺힌 그것이
고운 너의 뺨을 지나
나의 손끝에 닿았을 때
내 심장에 닿은 것 마냥
내 가슴이 뭉클해지고
내 눈에 닿은 것 마냥
내 눈가도 촉촉해지고
잠시 차가웠던 내 마음도 사르르
작지만 강한 너의 그 한 방울의 힘
내 눈 속의 네가 울면
네 눈 속의 나도 젖는다
아이가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우렁차게 울기부터 시작한 아이는, 말을 하기 전 까진 우는 것으로 불편한 기분을 나타내거나 뭔가 필요함을 알린다. 다양한 단어를 비롯한 말을 배워가면서부터는 그것들을 말로 표현을 하게 되면서 우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래도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날 때는 종종 눈물을 보이며 끝이 나곤 한다. 그러나 이것도 나이가 들수록(?) 횟수가 줄고 강도도 달라진다. 어릴 땐 바닥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펑펑 울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에서 끝이 나거나,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쓱 닦는 것으로 끝이 나더라. 우리 아들의 경우, 어린이집 시절 이후 그의 눈물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럼 아이들이 클수록 왜 눈물도 줄어든 것일까? 속상하거나 슬픈 일이 줄어들어서 그런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학교를 가고 더 다양해진 인간관계를 겪게 되고, 해야 할 일도 더 늘어난 상황에서 울고 싶은 일들이 더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상황을 겪었을 때, 울어서 나쁜 기분을 표출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리고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 앞에서 우는 건 아기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좀 컸다는 언니 오빠로서의 생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들은 본인 입으로도 이렇게 말한다. 감수성이 메마른 것 같다고.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반면 오빠보다는 감정표현을 잘하는 딸은 한 번씩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잘못을 해서 나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을 때가 그렇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의 눈은 점점 붉어지다가 눈 밑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게 되고, 듬뿍 차오르면 결국엔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린다. 훈육을 하는 동안, 나는 아이에게 제법 화난 얼굴과 단호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데, 동시에 앞서 말한 대로 아이의 눈물이 나는 과정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나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이의 잘못 때문에 속상함의 진한 감정을 조금은 연해지게 된다. 본인도 잘못을 뉘우치고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마음이, 아이의 눈물방울로 나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 엄마에게 혼나기만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래서 더 잘 이해하는지 모른다. 평소엔 더없이 다정한 엄마이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미안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왜 또 그랬지 하는 자책과 함께 말이다. 앞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다른 종류의 눈물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열심히 노력한 무언가의 성과가 이루어졌을 때 벅차오름으로 흐른 기쁨의 눈물, 그것을 느껴보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