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일에 빨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휴일에 빨래를 하면 되게 한가롭고 여유로운 휴일이 되는 것 같다. 일주일치 모아둔 옷이나, 이불을 빨기 위해 코인세탁소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 쉬는 날이 되었을 때 한동안 미루던 이불 빨래를 하러 코인세탁소를 찾았다. 휴일마다 내리던 장맛비에 계속 포기하고, 안 오는 날이면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갔는데, 드디어 갈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애당초 이번 휴일은 미뤄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은 날이었다.
오전에 집 청소를 먼저 하고 코인 세탁소로 향했다. 날이 너무 더워 탄산음료를 구입해 커다란 이케아 가방에 나의 이불을 구겨 넣고 들고 갔다.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났다. 도착해 지폐를 500원짜리로 바꾸는 일도 꽤 좋아한다. 경쾌한 소리가 나며 동전이 탕, 탕, 탕, 탕! 하고 떨어진다. 오락실의 추억 때문일까, 요즘엔 통 돈 바꿀 일이 없어서 그런지 꽤 반갑고 즐겁다.
신나게 동전을 바꾸는데 구겨진 오천 원짜리가 인식이 안되었다. 건조기까지 사용하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마트나 편의점은 조금 걸어가야 한다. 밖의 날씨에 조금은 절망을 하다가 어쩔 수 없으니 바꾼 돈으로 세탁기를 먼저 돌리고 돈을 바꾸러 세탁소를 나왔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로또 매장이었다. 10분을 다시 걸어가기보단 로또를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또 우연히 당첨이라는 결과가 있을 수도 있으니! 평소 자주 사진 않았기에 오랜만에 반가운 맘으로 매장에 들어섰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긁는 복권을 샀다. 주말에 어울리는 긁는 맛이다.
세탁소로 돌아와 받은 빳빳한 천 원짜리를 동전으로 바꾸었다 탕, 탕, 탕, 탕! 경쾌한 소리를 들으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나 혼자 평일을 낮에 빨래를 하러 이곳에 와 있다니,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맞으며 사온 탄산음료를 마시며 돌아가는 빨래를 보았다. 역시 큰 드럼 세탁기로 빨래를 하니 촥! 촥! 촥! 소리를 내며 이불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빨래를 보며 아, 물놀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장에 간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물을 맞고 싶다, 튜브에 몸을 싣고 떠다니고 싶다, 등등 마음은 잠시 수영장에 있었다.
2008년 고등학생 때, 여름 방학 때 일본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 달 동안 체류를 했기에 빨래도 직접 해야 했는데 그때 지냈던 숙소 아래층에 코인 세탁소가 있었다. 그때 한국엔 없었었는데, 그땐 왜 굳이 빨래를 여기서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엄마가 빨래는 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고딩이었다). 당연히 집엔 세탁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 자취를 해 본 적 없는 시절이니깐. 그러다가 서울에 코인 세탁소가 생겨나고 한동안 그곳을 카페처럼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요즘은 그런 공간은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그 당시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아니 결국에 한국에 생기다니! 하며. 당시에도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자취를 하고 빨래를 직접 하다 보니 나의 작은 세탁기로는 무엇이든 빨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작은 베란다에선 건조도 힘들 다는 것을 알았다. 커다란 이불과 털이 북슬북슬한 겨울 러그는 내가 아주 사랑하는 것임에도 애정으로 이겨낼 수 없는 힘듦이 있었다(겨울엔 이불이 마르지도 않는다). 그러다 코인 세탁소를 생각해 내고 뒤늦게 찾은 행복에 나의 빨래 행복 지수는 상승했다. 크고 무거운 이불도 거침없이 돌아가는 세탁기와 뽀송뽀송하게 다 말려주는 건조기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휴일에 코인 세탁소를 찾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건조기 속에서 나의 이불이 따뜻하게 말려가고 있다. 하얗고 커다란 나의 소중한 이불. 곧 이 무더위가 가면 저 이불에 몸을 싸매고 잠을 잘 생각을 하니 너무 행복하다. 방금 말린 이불은 갓 구워낸 군 고구마처럼 포근하고 부드럽다. 품에 꼭 껴 앉고 싶달까.. 혼자 아무도 없는 세탁소에서 돌아가는 빨래를 구경하며 멍 때리다가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이 정도면 코인 세탁소가 나만의 힐링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