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만 해도 차에 붙어져 있는 랩핑을 보고 예약전화를 하려고 하시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직원 교육 좀 잘 시키세요!
우리가 들고 다니는 장비는 청소기가 3대, 그 외에 약품, 장비 통이 3개, 의자 여러 개를 뒤집어 그 안에 빗자루며 바닥 밀대 등을 여러 개 꼽아서 넣어 다닌다.
팀원이 3명 타고 짐이 가득 실린 카트가 실리면 엘리베이터에는 자리가 좁기 마련이다.
그 외에 사람들이 탄다 해도 2~3명 정도가 더 타면 엘리베이터가 꽉 차서 괜스레 입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코너로 바짝 붙어서 탄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청소를 마치고 고객님과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부터 옆에 서 있던 입주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우리는 지체할 시간 없이 빨리 짐 카트부터 최대한 안쪽으로 붙이고
그분이 탈 수 있는 공간을 넉넉하게 만들어드리기 위해 벽 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하고 그분은 먼저 내렸고, 우리는 나중에 내리고 차에 짐을 정리하고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보통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가 오면 대부분은 미흡한 부분이 있어 A/S 요청으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오늘 전체적인 청소상황이나 고객님과의 검수 부분에 있어서도 빠뜨린 부분은 없었기에 무슨 전화인가 하고 받았다.
오늘 나도 그 현장에서 같이 일했는데 이분은 사장은 현장에서 같이 일했는지 몰랐나 보다.
그런데 우리에게 청소 서비스를 받은 것도 아닌 사람이 대뜸 직원 교육을 잘 시키라니 좀 황당해서 물었다.
“아. 저희 고객님은 아니신 것 같은데, 저희 직원이랑 어떤 일이 있었기에 교육을 잘 시키라는 건지요?”
“아니! 여기 엘리베이터는 입주민 전용인데, 입주민이 뻔히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으면 다음번 엘리베이터를 타던지 해야지. 짐이랑 가득 실어놔서 엘리베이터 타기도 힘들었는데, 땀냄새도 너무 많이 나고 더러운 청소 밀대에 옷이 스쳤잖아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평소에 정말 다양한 여러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 이만하면 웬만한 사람 다 겪어봤다 하면서도 늘 새로운 인간상을 만날 때면 적잖이 당황스럽다.
‘아. 네~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때도 됐는데 이건 청소 자체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평소에 열심히 갈고닦았던 참을 '인'자가 또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옷이 스쳤는지는 기억에도 나지 않았고 만약 이렇게 따질 거였으면 현장에서 말하지 왜 이제와 전화하는지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그 현장에 없었으면 모르겠지만 나 또한 그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황당했다.
언제부터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입주민만을 위한 엘리베이터였던가!
냄새가 난다 느껴지고 청소장비가 그렇게 지저분하게 느껴졌으면 자기가 다음번 엘리베이터를 타는 선택을 했어도 됐을 텐데.
황당함이 밀려왔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 담담하게 얘기했다.
“아 그러셨군요~ 지금 7월이라 이런 더운 날씨에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땀 흘리는 건 당연지사인데, 그럼에도 저희 직원들의 땀냄새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죄송하네요.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입주민 전용이란 건 제가 청소 수년간 하면서 수십 개의 아파트를 다녀봤지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어쨌든 옷이 스쳐서 지저분해졌다니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각별히 주의하라고 전하겠습니다.”
이런 사람과 얘기할 땐 늘 같이 쓰레기통에서 뒹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괜히 말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지라, 할 말은 하되 ‘죄송하다’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을 끝냈다.
핸드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이제 자신이 우위에 있는 걸 확인한 여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직 입주기간이라 우리 아파트에서 청소 또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이런 식으로 일하시면 곤란해요. 우리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보다 입주자 카페도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고, 제가 사장님 업체 이런 식으로 한다고 글 올리면 사장님 우리 아파트에서는 이제 일 못해요. 앞으로 잘하세요!”
“아. 네 앞으로 주의할게요.”
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청소를 잘못해서 불만을 제기했으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당연히 A/S를 해드린다지만, 이건 뭐 입주민을 갑으로 모시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판이니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분이 참 착잡했다.
“한 인간의 인격을 시험해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아라” _ 에이브러햄 링컨
이라는 말이 있다.
나와 다른 곳에서 다른 상황으로 만났으면 절대로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사람들.
그들은 권력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자신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들이 판단했을 때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부끄러운 인격을 드러낸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강한 사람들.
청소 잘 마무리하고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으로 불쾌함까지 더해지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이 핑계로 '팀원들이랑 소주나 한잔하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집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히려 그 사람의 편협한 인격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처음엔 참 억울하고 이렇게까지 하며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 직업을 통해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을 아주 많이 경험하고 깨닫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나 또한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었던 다른 직업에 대한 편견들.
배우지 못하고, 할 게 없어서 이런 지저분하고 힘든 일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들.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오만한 편견들이었는지 이 일을 하면서 똑똑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또 나의 직업과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의 뿌리는 잔가지를 하나 더 내어 바닥에 비집고 들어가 단단하게 자리 잡아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