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으로 돌아온 점순이와 새끼들
그날도 변함없이 후텁지근한 여름이었다.
장마가 채 끝나기도 전에 들이닥친 더위는 뒷산에 매미를 불러세웠고,
아내는 부엌에서 땀을 훔치며 밑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엄마, 아빠! 점순이가 왔어요!”
그 말 한마디에 아내는 부엌칼을 내려놓고, 맨발로 데크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곳에는 작년 봄, 우리 집 데크 밑에서 처음 세상을 마주하던 아기 고양이 점순이가,
이제는 제법 어미다운 눈빛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서 있었다.
등 뒤로는 점순이를 꼭 닮은 꼬맹이 두 마리가 어미 다리에 몸을 붙인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잊힐 뻔했던 점순이가
그 사이 아이를 낳고, 어미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반갑고 짠한지.
몸집은 예전보다 홀쭉해졌고, 털은 흐트러져 있었지만
눈동자만은 그대로였다.
세상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흰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믿음 같은 걸 담은 눈빛이었다.
츄르를 손끝에 짜서 내밀자
점순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핥기 시작했다.
옆에서 새끼들은 분주한 혓바닥으로 우유 그릇을 비웠다.
딸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다 컸다, 점순이”라며
어미가 된 친구를 바라보듯 눈을 반짝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아이는 단순히 길고양이가 아니었다.
이 집의 기억을 품고,
따뜻한 온기를 기억하며,
삶이 힘겨울 때 돌아올 곳으로 여기를 택한 존재였다.
점순이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묻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남편은 왜 함께 오지 않았는지,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말,
잘 돌아왔다. 우리는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점순이는 대답 대신 꼬리를 살랑이며
새끼들을 부드럽게 툭툭 밀어 젖을 물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평화롭고 따뜻한지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어쩌면 우리도 그러한 존재인지 모른다.
세상살이에 지쳐 돌아올 곳을 찾을 때
누군가 무심히 내민 따뜻한 말 한마디,
묵묵히 끓여둔 된장국 냄새 같은 걸 찾아
기어이 다시 돌아오곤 하니까.
삶이란 혼자 견디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 돌아와도 좋은 곳,
어미 품처럼 안심이 되는 사람,
그런 존재 하나만 있어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점순이는 오늘도 데크 밑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고양이 가족의 작은 쉼터를 만들어 주었고,
딸아이는 하루에 두 번씩 내려가 우유를 갈아 준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이 작은 생명을 돌보며 또 다른 사랑을 배우고 있다.
새끼들은 점점 활기를 띠고
점순이는 어느새 등을 쫙 펴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동안 눌려 있던 생명력이
이제야 살살 다시 피어나고 있는 듯하다.
가끔 생각해본다.
잘 산다는 건 뭘까.
부유한 삶이나 그럴싸한 성공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비 오는 날 우산이 되어주는 삶,
한 그릇 따뜻한 밥이 되어주는 삶,
그게 진짜 잘 사는 삶은 아닐까.
점순이와 새끼들이
햇살 아래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고르듯 숨 쉬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런 마음을 품는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언젠가 다시 떠나더라도
이 집, 이 마음,
기억해주기를.
그리고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고향 같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그 따스함을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