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별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눈물을 흘리며 보건실에 찾는 학생들.이럴 때 울음을 뚝 그치게 하는 한마디가 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다. 이 말은 하루 동안 보건실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2학년 땡땡이는 담임선생님과 함께 울면서 보건실에 왔다. 입술에서 피가 났다. 입술은 많이 다치지 않아도 혈관이 많아 피가 많이 난다. 담임선생님이
- 선생님, 남자애가 장난하다가 발로 차버렸어요. 어떻게 해요? 이가 빠졌어요.
선생님께서 빠진 치아를 보여줬다. 아마도 담임선생님은 이 상황을 보호자가 걸고넘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딱 보니 유치다. 다행이다.
- 선생님 유치네요. 어차피 빠질 치아입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담임선생님은 안심하며 교실로 돌아가셨다.
나는 핸드타월로 땡땡이의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 땡땡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학생의 눈물이 조금 멈췄다. 학생을 데리고 세면대에 갔다. 입안을 물로 헹구게 했다. 이제 피는 멈췄다. 학생을 진찰용 의자에 앉히고 빠진 치아를 확인했다. 오른쪽 윗니 두 번째, 측절치다. 1, 2학년 때 빠지는 치아다. 진찰용 책상에 탁상용 거울을 올렸다. 땡땡이에게 유치가 빠지는 순서가 나와 있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땡땡이의 치아가 빠진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가 빠졌어요. 땡땡이 거울 볼래요. 여기 윗니가 빠져서 피가 난 거예요. 이곳을 측절치라고 하는데 지금 빠질시기여서 빠진 거야. 괜찮아. 걱정하지 말아요. 치아도 빠져야 할 때 빠지면 좋은 거야. 만약에 빠져야 할 시기에 빠지지 않으면 덧니 난다.
-네.
-여기 아랫입술 봐 볼까요? 조금 상처 났지요?
-네
-땡땡이 다리나 손에 상처 난 적 있어요?
-네
-그때 잘 나았죠?
- 네
- 이번에도 잘 나을 거예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상처가 낫는 동안 맵거나 뜨거운 음식 먹지 말아요. 혹시 지금 여기 말고 다른데 아픈 곳 있어요?
- 없어요. 아까는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 다행이다.
땡땡이의 유치를 작은 비닐 지퍼백에 넣어주었다. 비닐 위에 오늘 날짜와 빠진 치아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땡땡아, 너 발로 찬 친구가 사과했어요?
-아니요.
-그럼 사과할 수 있게 선생님이 담임선생님께 말해줄까요?
-네.
이젠 얼굴에 미소도 약간 번진다. 요 녀석이 사과받고 싶어서도 울었나 보다.
-땡땡이 잘 가요.
-네
6학년 땡땡이가 친구랑 왔다. 땡땡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친구는 머뭇거렸다. 이런 경우 뻔하다.
- 왜, 월경혈이 바지에 묻었어요?
- 네
- 그런데 왜 보건실에 온 거예요? 담임선생님께 말해서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오면 되잖아요.
- 담임선생님께서 보건실에 가라고 했어요.
참 희한하다. 월경혈이 바지에 묻었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 땡땡이 집하고 학교가 가까워요?
- 네
- 땡땡이 집에 보호자분 있어요?
- 네. 엄마 있어요.
- 땡땡이 엄마한테 옷 가져오라고 할까? 아니면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올 거야?
- 엄마한테 옷 가져오라고 하고 싶어요.
- 그래.
담임교사에게 땡땡이 보호자자가 보건실로 옷을 가져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따라온 친구를 교실로 보냈다.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땡땡이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 왜 울어요?
- 친구들이 바지에 생리피 묻었다고 놀릴까 봐서요.
- 그래. 월경혈이 바지에 샌 것이 네 잘못이야?
- 아니요
- 5학년 때 선생님이 보건수업시간에도 말했잖아. 너 선생님 보건수업 들었지?
- 네
- 월경은 한 달에 한 번씩 자궁내막이 자연스럽게 자라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거지?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야. 그런 걸로 친구를 놀린다면 놀리는 친구가 잘못일까? 월경혈이 바지에 샌 친구가 잘못일까?
- 놀리는 친구요.
- 그렇지. 선생님이 너희들 5학년 때 그런 일로 친구들 놀리지 말라고 말했지? 나에게는 장난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폭력이다고도 알려줘서 다른 친구들이 안 놀릴 거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래도 혹시 놀리는 친구가 있다면 누군지 알려줘. 참 교육 시키게. 알았지.
-네.
웃음과 함께 눈에 고여있던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나오고 학생은 눈물을 멈췄다.
옆에 보건 선생님께서 점심시간에
- 선생님, 땡땡이가 오늘 아침에 5일 지난 우유를 먹고 왔데요. 아침부터 계속 토할 것 같다며 벌써 두 번 왔었어요. 제가 이미 약 먹였거든요. 좀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제가 급식 먹고 오는 동안 좀 살펴봐주세요.
-네.
선생님이 급식실에 가시고 침상 쪽에서 4학년 땡땡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 4학년 땡땡이 이리 와봐요.
- 네
땡땡이에게 화장지를 건넨 후
- 울지 마. 괜찮아. 우유 유통기한 지난 것 먹어서 토할 것 같구나?
- 네
- 근데 저번에 6학년 오빠는 7일 지난 우유 먹었는데 괜찮았다. 선생님도 집에서 유통기한 지난 우유 실수로 먹었는데 아무 일 없었어. 혹시 냉장고 밖에 있는 우유 먹었니?
- 아니요. 냉장고에 있는 우윤데 엄마가 줘서 마셨어요. 근데 다 마시고 난 후에 엄마가 5일 지났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속이 안 좋아요.
- 아. 그렇구나. 선생님이 학교에서 보니까 냉장고에 있는 우유는 유통기한이 좀 지나도 괜찮더라. 잘못되는 일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네
간단히 활력징후를 측정했다. 정상이다. 안색도 괜찮다.
- 혈압, 맥박, 체온도 다 정상이네. 다행이다. 곧 좋아질 거야.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 네
눈물이 멈췄다.
-좀 힘들면 조금만 더 쉬어봐. 근데 금방 괜찮아질 거야.
라고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5분 후 침대에 누워있던 땡땡이가 진찰용 책상 앞으로 오더니
- 선생님 이제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 그래 잘 됐다. 가서 공부해 봐요. 땡땡이가 운이 좋아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 먹어도 별 탈 없는 것 같아. 그래도 다음부터는 유통기한 지난 음식은 가능한 먹지 말아라. 음식을 먹기 전에는 꼭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특히 엄마는 많이 바쁘잖아. 출근도 해아 되고. 네가 마실 거면 앞으로는 네가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4학년 정도면 할 수 있어. 특히 너는 선생님이 오늘 너랑 이야기해 보니까 다른 4학년보다는 똑똑해서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야.
- 네.
2학년 땡땡이,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 어디 아파요?
- 손목뼈가 튀어나왔어요.
- 어디 봐요?
손목을 내민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 그냥 손목이다.
- 괜찮은데 정상 모양이야. 반대편 손목 봐봐.
반대편 손목을 뚫어지게 본다.
- 어때요. 왼쪽이랑 똑같지. 근데 왜 갑자기 손목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 공부시간에 그냥 한 번 봐봤는데 이상한 것 같았어요.
- 아! 그래서 겁났구나. 병인 줄 알고.
- 네.
-선생님 손목도 너처럼 튀어나왔잖아. 그래도 안 죽고 오십 년 가까이 잘 살고 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아.
-네
부끄러운지 웃는다.
- 땡땡아, 몸에 관심 갖는 것 참 좋은 거야. 앞으로는 공부시간 말고 쉬는 시간에 자세히 살펴봐. 너처럼 갑자기 뼈가 이상하다고 오늘도 3명이나 왔다.
- 정말요? 3명이나 왔어요?
- 응
땡땡이가 웃으면서 보건실 밖으로 나갔다. 가끔 공부시간에 신체를 살피고 이상하다고 오는 학생들이 있기는 있다. 심지어 6학년도 있다. 오늘 3명 온 것은 아니다. 땡땡이가 민망해하는 것 같아 그냥 3명이라고 말해줬다.
5학년 땡땡이
- 어디 아파요?
- 머리하고 배가 아파요.
- 언제부터 아팠어요?
- 토요일부터요.
- 집에서는 어떻게 치료했어요?
- 그냥 누워있었어요.
-학교에서 아프면 보호자분께서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
- 참고 공부하라고 했어요.
이때부터 학생이 울기 시작했다. 화장지를 건넸다.
- 많이 아프구나. 그런데 엄마가 참고 공부하라고 해서 속상했구나. 그렇지.
- 네.
- 괜찮아.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안 아프게 해 줄게.
- 네.
훌쩍거린다. 신체사정하고 문진하고 통증척도로 아픔의 정도를 물었더니 9라고 했다. 일단 서러워서 더 아프다고 느낄 수도 있다. 체온도 정상이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었다고 해서 일단 보건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백초시럽 6.5ml를 먹였다.
- 인자. 괜찮을 거야. 이 약 먹으면 학생들 다 괜찮아지더라. 걱정하지 마. 너도 곧 괜찮아질 거야.
- 네.
눈물이 멈췄다. 학생을 침상에 눕히고 배에 핫팩을 대주면서
- 땡땡아, 20분이 마법의 시간이야. 몰랐지? 20분 후면 괜찮아진다. 한 번 믿어봐.
- 네.
알람으로 20분을 맞췄다. 담임교사에게 학생의 상태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20분 후 누워있는 땡땡이에게 가서
- 땡땡이 좀 어떤가요?
- 괜찮아졌어요.
- 선생님 말이 맞지. 괜찮아진다고 했잖아. 잘됐다. 통증은 어느 정도야?
- 3요.
- 공부할 수 있겠어요?
- 네.
-다음에도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괜찮으니까 또 보건실 와요. 오늘은 차가운 음식 먹지말아요, 너무 많이 먹지도 않습니다. 라면이나 햄버거, 치킨 같은 인스턴트 음식도 먹지 않아요. 알았죠?
-네
우는 아이 달래느라 너무나 힘들었던 어느 날 큰 아이에게
- 왜 학생들은 아프면 울까?
- 엄마, 불안해서 그래. 아파서 잘못될까 봐 그럴 거야. 나도 초등학교 때 조금만 아파도 죽을까 봐 걱정했었어. 무섭기도 했고. 그런 애들 보면 나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줘. 그럼 학생들이 금방 괜찮아질 거야. 나도 그랬거든.
학생들이 불안해서 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딸이 아플 때마다 죽을까 봐 걱정되어 울었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았다. 조금 불안해서 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을까 봐 울었다니 큰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는 학생들은 모두 우리 큰 아이다. 그날 이후 울면서 보건실을 오는 학생들이 짜증 나거나 귀찮다기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졌다. 큰 아이가 나라고 생각하면서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큰 아이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내가 큰 아이에게 진정성 있게 많이 하지 못했던 말을 수십 번씩 했다.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들이 평온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하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는지 세심히 살펴봐야겠다. 그들에게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