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어요. 이런 상상을 하면 정말 끔찍해요. 우리 아버지처럼 집에서 탱자탱자 노는 꼴을 보면 엄마인 제가 눈이 뒤집어질지도 몰라요. 그런데 정말 전문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은 안 하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조카가 가까이에 살아요. 성인이 되어 부모님 집에 살며 먹을 거 입을 거 걱정 안 하고 누리며 살고 있어요. 암요. 알지요. 알다 마다요. 그렇게 놀고 있는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생각들이 올라오는지 이해해요. 순간순간 우울하고 상실감에 빠지기도 하고 무슨 일이든 꼬이는 그런 삶들이 다가오면 젊은 나이에 얼마나 살아가기 어렵겠어요. 부모로서 도움이 되지 못해서 바라다 보기만 하는 것도 쉽지 않을듯해요. 저는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재주와 발재주 때로는 말재주를 이용해서 어떤 직업이든 가졌으면 해요. 늘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요. 물론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학교생활도 큰 무리가 없어요. 하지만 공부머리로 가득 찬 반에서 1,2등 하는 아이를 따라가기에는 제 아이가 턱없이 부족해요. 그런다고 공부에 뜻을 가지지 않은 아이를 들들 볶을 수도 없어요. 당연히 공부 못하던 저를 봐도 내 아이를 가늠할 수 있지요. 그런 부분을 부모로서 인정하고 혹시 아이가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경험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이야기는 헤어 디자이너에 대해 설명드릴게요. 멋진 이야기 주머니가 술술 나오니 기대해 주세요.
헤어디자이너 토요일 아침에 집이 조용해요. 보통 아이가 일찍 일어나 저를 깨워서 밥 달라고 소리치는데 오늘은 정말 소리가 않나요. 오랜만에 꿀잠 자는 저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조심스럽게 살펴요. 일어나서 확인해 보니 8살 딸이 가위를 가지고 본인의 머리를 싹둑 자르고 있어요. 무슨 이유인지 물었지만 아마도 호기심이 들어서 인가 봐요. 당연히 아이의 작품은 머리가 삐뚤빼뚤 층이 지고 엉망이지요. 미용실에 가서 아이의 머리를 좋게 다듬어 주고 다이소에 가서 5000원씩 하는 두 개의 미용 가위를 샀어요. 하나는 머리를 자르고 다른 하나는 머리의 층을 내는 용도로 샀지요. 그리고 저의 긴 머리를 아이에게 자르게 했어요. 우선 커다란 김장 비늘의 위쪽 목부분을 싹둑 자르고 뒤집어쓰면 편리해요. 의자에 앉아 있으면 아이가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머리 자르기를 시작해요. 처음엔 두 시간 정도 걸려요. 서툰 솜씨로 하려니 아무리 빗질을 해도 머리가 미끄러지고 가위질이 쉽게 되지 않으며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자꾸 도망가요. 미용실의 대형거울 제 앞에 없으니 어떤 모양이 만들어지는지 답답하고 궁금해요. 아이에게 믿고 맞기는 저의 머리를 바라볼 수 없어서 속상 하지만 오랜 시간을 견디며 아이가 잘 해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요. 머리카락에 물을 하도 뿌려서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어 거울을 보면 아주 웃음거리일지 몰라요. 아이는 빗으로 빗기를 반복하며 열심히 빠져들어요. 긴 생머리가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요.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는 아이 모습이 기특해요. 잘 해내려는 마음을 가졌으니 제 머리를 맡겨도 안심해요. 처음에는 머리카락 길이가 난장판이었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 제법 전문가의 솜씨가 나와요. 절대 아이에게 머리를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 저렇게 잘라줘라. 뭐 이딴 식으로 머리를 잘랐느냐 탓하지 않아요. 잘한다. 잘한다. 다 자르고 나면 폭풍 칭찬으로 아이를 쓰다듬어 주고 깊게 안아 주어요. 저는 최근에 미용실에 간 적이 없어요. 이제는 갈 필요가 없어요. 첫째 딸이 머리를 잘라주더니 이제는 둘째 딸이 저의 머리를 잘라주어요. 머리 자르는 날을 정하면 순식간에 집이 미용실로 둔갑해요. 요새는 흰머리가 제법 나와 염색을 해야 해요. 염색약만 사두면 둘째 딸이 뚝딱 아름답게 만들어 줘요. 헤어 디자이너가 돼도 좋고 다른 무슨 직업을 가져도 상관없으니 여성으로써 당당하게 사회의 주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요. 헤어디자이너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면 '영국의 비달사순 아카데미'에 들어가도 좋은듯 싶어요. 직업에 애착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면서 아이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 조금씩 발전하며 나아가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예요. 쿨쿨 잠을 자는 아이를 보듬으며 한마디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