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를 멈추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다.

by sallala

8월 11일 아이와 나는 동시에 개학을 했다.

그리고 곧이어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봐야 했다.

아이는 2과목을 시험 본다고 했다.

사전에 시험 문제가 출제될 프린트를 받았고, 전날에 한번 훑어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도 개학하자마자 3학년 2학기 세계사 중간고사 시험문제를 냈다. 마음 같아선 수행평가만으로 평가를 하고 싶지만, 3학년의 사회탐구 과목은 모두 등급이 나오는 관계로 어쩔 수 없는 2번의 지필평가를 모두 봐야 했다.

세계사 선택 학생 25명 중에 실제 수능 응시 과목으로 선택한 학생은 아무도 없다.

사실상 3학년 기말고사가 치러지는 9월 말이 지나면 3학년의 거의 모든 수업은 자습 체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학날 등교하는 아이에게 '이제부터는 자습을 많이 할 거야, 학교에서의 자습 시간을 잘 이용하도록 해'라고 말했다. 일주일 뒤 아이는 학교에서 이외로 자습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짜증을 냈다. 등급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취도를 산출하기 위한 수행평가도 지필평가도 필요하고, 수행평가나 지필평가를 보기 위해서는 어쨌든 진도를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아이의 말에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도 선생님들의 입장도 십분 이해되었다.


점심시간에 마주친 우리 학교 3학년 부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학교에서 자습을 많이 주지 않는다, 수능 최저를 맞춰야 하는 학생들,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아이의 학교는 남학교라 정시파가 많다)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3학년 부장 선생님도 고민이라고, 2학기를 수능 준비를 위한 자습 위주로 운영했다가는 이에 대해 반발하는 학부모도 많고, 특히나 오래전부터 3학년 2학기 파행 운영 등으로 매스컴에서도 눈길이 곱지 않은데, 학교에서 대놓고 자습 위주 운영을 할 순 없다고 했다. 그렇지.. 그렇지... 공립학교에서 제일로 무서워하는 건 학부모의 민원과 매스컴이니까.....


공립학교에서 수능 준비를 위한 자습 체제 운영도, 2학기 수업의 정상적인 운영도 불가능한 것은,

공립학교 학생 구성원들의 특성이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목고나 자사고와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사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살펴보면 진지하게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얼마 없다. 수능 최저가 필요한 인서울 대학에 원서를 쓰는 학생들(이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몇 명이나 되겠는가? 많이 잡아야 15명 정도이다), 과 정시파!(말만 하는 정시파가 아니라 진짜 진지하게 수능을 준비하는 정시파를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본 적이 없다. 다만, 우리 학교는 일반고 내에서도 살짝 성적이 떨어지는 학교라는 것을 감안해 주시기 바란다) 뿐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수능 최저가 필요 없거나, 수능 최저가 있더라도 기준이 헐렁한 인근의 지역 대학에 지원한다. 그러니 수능을 위한 자습체제로 2학기를 운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학생들이 2학기 수업에 열중하는가? 학생들은 모두 9월 초 수시 원서를 제출하고 나면 대학생처럼 굴고 싶어 한다.


그래서 3학년 담임을 오래 한 선생님들 중에 자신의 아이를 자사고에 보내는 선생님들이 많다. 2학기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질서 없이 무너지는 분위기 속에 자신의 아이를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자사고에 아이를 보낸 선생님들 중 후회를 하지 않는 분도 아직 못 봤다. 1, 2학년, 치열한 내신 경쟁에서 아이가 힘들어할 때, 그보다 덜한 시험 난이도와 경쟁 난이도 안에서 1등급을 턱턱 받아내는 일반고 학생들을 보면서 가슴을 쓰라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나는 고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고입이 대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글을 써보겠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교무실을 들락날락거리면서 담임과 수시 원서 상담을 한다.

아이는 학교장 추천 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학교는 정했지만, 학과는 결정하지 못했다.

담임에게 추천서를 보내면서 포스트잍으로 추천서에 적은 학과를 마지막 지원 시에 바꿀 경우 어찌 되는지에 대해 문의해 두었다.

그래서 마음이 깔끔하지 못하다.


집에 돌아와 유명 입시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갑자기 대학의 전형을 바꾸어야 하지 않나 불안해진다. 대치동 입시 컨설턴트에게 2번의 짧은 메일을 보냈다. 00 대학의 종합 전형을 추천형에서 서류형으로 바꿀까요? 00 대학을 빼고, 00 대학을 2개 쓸까요? 답도 뭐...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등으로 매우 교과서적이다.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벌써 8월 말인데, 그토록 돈과 시간을 써대며 노력했건만, 아직도 확실한 것이 없다니. 슬프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의 공부와 생활에 대한 잔소리를 멈췄다.

아이가 학원에서 미친 듯이 나눠주는 자료들을 빠짐없이 공부하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우선은 일을 하고, 학원의 라이딩을 하고, 먹을 것을 챙기고, 수시 원서 작성 고민까지 하면서 아이의 공부량을 체크할 여력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잔소리를 하려고 하다가도

아~ 진짜 수능이 코앞인데, 공부 가지고 잔소리해봤자, 뭔 소용 있겠어?라는 자포자기 심정과 그래도 본인이 양심이 있다면 공부는 하고 있겠지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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