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3.
은서는 랩에 둘러싸인 생닭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닭을 가지고 요리를 하기에 앞서 일단 생닭이라는 본질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이 급선무였다. 은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결심한 듯 왼손으로 랩을 벗겼다. 랩 속에 가려져 있던 생닭의 비릿한 기운이 은서의 얼굴로 올라왔다. 재빠르게 오른손으로 코를 막았다.
커피 몇 모금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은서는 랩이 벗겨진 생닭에 손을 대어 보았다. 은서에게 깔끔하게 손질된 생닭은 마치 축축한 모습의 이계의 혼령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생닭의 몸뚱이에 머리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눈이 감긴 닭의 머리라도 붙어 있었으면 요리는커녕 구토만 나왔을 것이다. 벗겨진 생닭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만치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닭이라는 동물은 양처럼 가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 눈이 참 무섭다. 양이나 염소는 공포영화에 종종 등장했으며 닭 역시 피를 뿌린다든가 닭의 그 매서운 눈은, 닭 앞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쪼는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날지 못한다지만 지붕에서 푸다 다닥 거리며 마당으로 날아서 내려올 때면 무섭고 공포가 들 정도였다.
비닐을 거둬낸 생닭을 한참 들고 있는 은서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소파에 앉아서 마냥 키득키득거리며 바라보았다. 은서는 그런 나를 한번 쏘아보고는 어떡해? 하며 양손을 들어 포즈를 취했다. 결국 그날 생닭과의 전쟁은 그대로 멈춘 해 각종 양념과 채소를 싱크대 위에 두고 나는 은서를 데리고 육개장 집에서 닭개장을 먹었다.
은서와 나는 닭개장 안에 들어있는 작은 인삼을 서로에게 던져주었다. 닭개장에도 인삼이 들어 있어서 은서와 나는 놀랐으며 더불어 재미있었다. 결국 은서가 두 개 다 받아서 밥그릇 뚜껑에 놓아두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행복이라고 진심으로 느꼈다.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순간도 이겨냈고 온통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 시기도 거쳤다. 언젠가는 생닭으로 요리를 하고 말겠어,라고 말하는 은서는 귀여웠고 아름다웠다. 영원히 닭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기만 해도 반짝이는 은서일 줄 알았다.
은서는 낙지전문점에서 연포탕 마지막에 살아있는 낙지가 탕 속에 들어가서 죽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이 싫었다. 당연하지만 그것을 먹지 못했다. 살아있었던, 꼼지락거리는 산 낙지가 몸을 비틀며 죽어가는 장면을 보고서는 연포탕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 모습마저 귀엽고 재미있어서 낙지를 건져내서 입으로 한 번 쭉 빨아서 자, 이건 괜찮아,라고 은서의 그릇에 놓기도 했다. 은서는 흥, 하며 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은서의 내면에서 삶이 죽음으로 바뀐 낙지를 밀어내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내면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다.
유산이 된 것은 은서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은서는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획일성 때문에 아기가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획일성은 무서운 것이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이 그 침대에 맞지 않으면 잘라 내거나 늘려서 처참히 죽여 버려야 했던 삶을 살아온 자신과 나를 원망했다. 아기가 유산되고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조금씩 보이지 않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생활은 서로의 잘못이 보이는데도 아무런 말을 서로에게 해주지 않았다. 무관심이라는 세계 속에 우리는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일을 마치면 동료들과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고급 창녀를 만났다. 고급 창녀는 학벌도 우수했고 미인에다가 가슴까지 예뻤다. 잠자리에서 감탄을 늘 해주었다. 설령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그 감탄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인간은 감탄과 칭찬 속에서 커가는 것이라고 어디에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은서와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게 시작된 어긋남은 우리 생활 전반에 서서히 기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책을 읽었지만 은서와 나 사이의 일그러짐은 좀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점점 더 일그러지기만 했다. 수십 미터의 물속에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공처럼.
은서는 식칼로 생닭을 톡톡 잘라서 지글지글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감자도 넣고 양념을 잘 섞어서 닭볶음탕은 맛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 닭볶음탕에 숟가락을 댈 수는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