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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하나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상에 명상 백 쉰 한 스푼

by 마인드풀

십몇 년 전 맨 처음 한의대에 입학하여 신입생으로 MT를 갔을 때였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들, 새내기들은 서로를 어색해했고 선배들은 서로 이야기하며 우리를 궁금해했다. 사람 사이의 공기와 흐름, 소리는 신입생과 선배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중에서 한 선배가 돋보였다. 호랑이 인상에 부리부리한 눈, 큰 코, 큰 입, 큰 목소리. 호탕한 웃음. 본능 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위험하다.'


어디 술자리에서든 이목을 끌었고, 술을 잘 마시고 술을 잘 주었다. 그리고 본과 4학년(6학년) 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엠티에 혼자 참석을 해서 자기 밑의 모든 선배들에게 술잔을 따라주고, 자기도 먹었다. 엠티의 마지막날에는 신입생을 도열한 뒤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이야기했다. '나는 000이다. 잘 지내보자.' 나는 그 아귀의 힘을 느끼며 한 번 더 생각했다.


'앞으로 내 학교생활에서 저 사람은 무조건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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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학교생활에서는 그 선배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선배 이름 세 글자가 있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어떤 핑계를 써서든 안 갔기 때문이었다. 그 선배도 졸업을 하고, 나도 졸업을 하며 선배 이름 세 글자는 차츰차츰 잊혀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그 선배가 병원장으로 있는 한방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이 선배와 같이 3년 넘게 갈이 일하고 있다. '재미있게, 만족하면서' 말이다. 전말은 이랬다. 무서운 선배(A)와 친한 다른 선배(B)가 있었는데, 나는 B 선배와 친했다. B선배가 내가 공중보건의를 마친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나에게 연락을 했다. A 선배 병원이 확장하게 되면서 부원장을 더 필요하게 되었으니, A가 병원장으로 있는 한방병원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겁이 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내 기억 속의 A선배는 술을 먹었을 때 상당히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마주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갈까 말까 고민을 한 참을 했다. 일단 만나보고 어떤지 결정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그 선배와 대화 한 마디 제대로 나눈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 약간의 긴장을 했지만, 허무하게 풀렸다. 선배는 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실제로도 계약 조건이나, 근무조건으로 세심하게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그 뒤로도 일을 하며 배려뿐만 아니라 내가 하려는 일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계신다. 그렇기 나는 지금 까지 이 병원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 이는 일부분의 사례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고등학생 때 경찰대에 가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 주야장천 애썼다. 한의대를 간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대에 떨어지게 되면서 문과에서 한의대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의사가 되게 되었다.


졸업을 하고 마칠 때 즘 나중에 한의원 일은 평생 볼 건데, 젊었을 때 한방병원 일도 배워보고자 싶어 한방병원에서 수련을 밟았다. 막상 인턴을 하다 보니 상당히 힘들어서 인턴 1년 과정만 수료를 하고 그만두었다. 한방병원 일은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웃기게도 한방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절대로 마주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과 일하고 있다.


내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경찰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계획이 어그러지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짜증이 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늘 좋은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을 바꾸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생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답은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나비효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과거의 하나의 일을 바꿈으로써 현재의 상황이 180도 바뀐다. (영화 나비효과에서는 주인공이 타임루프를 통해 과거의 선택 하나를 바꿈으로써 계속 좋지 않은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 더 좋았을지 더 좋지 않았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나도 경찰대에 합격을 했으면, 인턴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고민해서 선택을 내리되 후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택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한 선택을 믿고 충실하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멋진 선택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선택 이후에도 다른 선택들과 삶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던, 내가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못해 다른 길로 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 삶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 하루의 삶은 내일로, 미래로 어디선가 던져지고 그것이 얽혀 미래를 만들고 우리의 인생이 된다.


나는 인턴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공중보건의로 갔다. 거기 훈련소에서 동기가 추천해 준 책 한 권을 읽고 '명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명상에 관심이 생겨 꾸준하게 하게 되었다. 지금의 아내는 나를 소개받은 이유가 내가 '명상'을 하기 때문에 신기해서 만나보고 싶었다고 한다. 최소한 명상을 하니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인턴을 그만두고 공중보건의를 간 덕에 그 훈련소 동기를 만나게 되었고, 명상을 접하게 되었으며 그 덕에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그것으로 브런치 작가도 되었고 글도 쓴다. 그때 그 훈련소에서 동기를 만나지 못해 책을 읽지 못했으면 명상을 하지도 않았을거고.. 아내도 만나지 못했고.. 나는 어떤 생을 살고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다만 하루는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하고, 행복하게 재미있게 보내려 한다. 충실하게 보낸 하루가 미래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들이 또 자기들끼리 얽혀 멋진 나의 미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과거의 내가 충실하게 살아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처럼.


오늘도 진료하고 명상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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