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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곰 Jul 07. 2024

아이의 꼬꼬마 시절을 함께한 추피,

너와 헤어지는 날이 오다니.

아이가 커가며 기존에 즐겨 읽던 작은 책과 자연관찰책은 과학 그림책, 수학 그림책, 명작동화 같은 구체적인 목표의식을 가진 책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공부머리라는 게 책만 본다고 되는 건 아니어도 재미있게 경험한 지식은 어느 순간 짠하고 기지를 발휘할 거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재미있게 해 주려 다양한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하지만 잠들기 전 읽어달라는 책 두세 권 마저도 어느 날은 피곤해 쉰소리로 나오고 어떻게 하면 읽지 않고 넘어갈 것인가 고민할 때도 있는 엄마다.

최근에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과학 그림책도 지인에게 구해 책장 속에 넣어줘야겠다 싶어서 아이가 오래전부터 보기 시작했던 자연관찰책을 정리했다. 자연관찰책은 움직이지 않으며 자리를 지키는 식물, 자주 볼 수 없지만 호기심을 주는 동물, 신비로운 바닷속 생태까지 모든 것이 아이를 사로잡는다. 혹,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을 테지만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잘하고 있군! 하고 혼자 뿌듯해했다.

6살이 된 아이가 여전히 좋아하지만 한참 두었으니 이제 슬슬 다른 책에 자리를 넘겨줄 때다 싶어 아이의 동의를 구하고 자리를 뺐다.

구석에 쌓아두고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 식물을 오리고 붙이기도 해 볼까 잠시 생각하다 이거 아니어도 책도 많고 장난감도 많은데 괜한 욕심이다 싶어서 친구에게 나눔을 제안했고 그렇게 자연관찰책은 마무리되었다.

당분간은 책 바꾸지 않고 지내자 싶었는남편의 지인이 전집을 주셨다. 책장이 텅텅 빈 시절에는 너무 반가운 책이지만 어머니댁에도 못 가져온 책이 한가득이라 이걸 어찌할지 몰라 현관 앞에 놔두길 사나흘... 또 전집을 주신다는 걸 괜찮다 전해달라 했다. 이제 더는 아니다 싶어 조용히 꽂혀있던 추피책 전집에 눈길을 돌려본다.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 타고 다니면 가방이 무거우니 작은 사이즈의 장난감과 책을 선호하는데 미니한 사이즈라 두세 권 챙겨도 부담되지 않던 추피책이다. 휴가를 가고 숲으로 가고 동생이 태어나는 이야기 등... 일상 속 이야기가 아이에게 적용되는 면이 많아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는 책이다.  엄마들 사이에선 '추피지옥'이란 말이 나올 만큼 아이가 읽기에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이런 매력이 차고 넘치지만 받아둔 전집의 권수가 어마무시하니 한 권이라도 더 들어갈 곳을 찾아보고자 추피책 전집을 당근에 올리고 보니 필요했던 엄마들의 챗이 우수수 올라온다.

이제 내 것이 아니여선지 팔려고 보니 안 본 책도 왜 이리 재미있던지... 벌써 판다고 했는데 아쉬움 가득한 엄마라 책과의 추억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사진도 여러 장 찍어두고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들여다봤다. 책을 다시 세어보니 전집에 다른 출판사 추피가 한 권 섞여있는 것, 이거라도 남겨두자 싶어 전집은 전집대로 보내고 남겨진 추피 한 권을 액자에 넣어두듯 바라본다.

수영장에 간 추피, 잠자기 싫어하는 추피, 정원 가꾸는 추피야 잘 가라! 가서 아가 친구에게 사랑을 가득 받으렴, 이제 우리집엔 물건을 빌려주기 싫어하는 추피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아쉬운 내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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