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데 글이 쉽게 써지질 않습니다. 머릿속에는 뭔가 톡 튀어나올 것도 같은데, 가슴은 꿈틀거려 막 써질 것 같은데 막상 글을 쓰면 도무지 몇 줄을 못 넘깁니다. 쓰다가 막히고 억지로 쓰다 지우고요. 시간은 꽤 흘렀는데 여전히 하얀 바탕에 마우스 커서만 깜빡깜빡거립니다.
남들은 술술 잘만 쓰는 것 같은데, 자다 일어나면 글 한 편이 뚝딱 나오는 것 같던데 내 머리는 아무리 쥐어짜도 뭘 써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일상이, 살아가는 생활 모두가 글감이라고 합니다. 계절을 보며 시 한 편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여행기는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뤄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막힘없는 소설이 줄줄 이어지고, 난해한 주제를 명쾌하게 기막히게 설명하는 작가들이 이리 많은데, 이들은 무슨 용한 제주가 있을까요? 나만 글 쓰는 게 이리 막막한지 한 줄 넘기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시인분이 내 마음을 아셨는지 이런 시를 쓰셨네요.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요.
젊은이가 아픕니다. 아파도 오랫동안 참았다가 처음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늙은 의사는 이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고 합니다. 오히려 병이 없다고 하네요.
나 같으면 이런 '돌 82 의사 같으니'하며 화를 내었을 텐데 젊은이는 답답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라고요.
시가 쉽게 씌여져 부끄럽다고 한 시인이 누군지, 아파도 병을 모른다고 해도 성내서는 안 된다고 한 젊은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쓰기만 해도 좋은 거고 게다가 쉽게 쓰면 금상첨화 아닌가요.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를 받고 모른다고 하면 더 큰 병원 가서 무슨 병인지 알아야 할 것을 도리어 부끄러워하고 성내지 말라니.
누구나 아는 시인은 1917년에 태어나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에 타계하신, 다름 아닌 민족 시인 윤동주입니다.
인생은 살기 어려운데 시가 쉽게 씌여진다면 부끄럽다고 한 구절은 ’쉽게 쓰여진 시’의 일부분이고요. 아파도 성내지 마라고 한 구절은 ‘병원’의 일부분입니다.
조선 땅에 태어나 일본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운명, 식민지 삶에 고통받는 백성을 보며 힘없는 젊은이의 고뇌를 토로합니다.
조선말이 있어도 쓰면 안 되고 언제 징용에 끌려갈지, 전쟁에 휘말릴지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던 암흑의 시대이자 먹고사는 고통은 물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때였죠.
아파도 병이 없는, 병이 없어도 아픈데 성을 내어서는 안 되는 현실. 병원은 아픈 백성들이 있는 곳, 조선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이 땅 한반도입니다.
지금 이렇게라도 살고 있는 처지와 나라 잃은 설움에 배고픔에 굶주리며 사는 그때와 어찌 비교하겠습니까마는 내 나라도 없이 식민지로 억압받는 백성을 생각하면 시를 쉽게 쓰는 것도 부끄럽다고 한 시인의 아픔이 가슴을 찌릅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개 시민이 감히 민족시인의 남다른 고뇌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너무 쉽게 살려고 한 건 아닌지. 너무 쉽게 성내며 산 건 아닌지 말입니다.
식민지 시대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버티며 살아가는데,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나는 뭐든 쉽게 얻으려고 욕심내고 뜻대로 안 되면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고뇌하기보다 요령껏 눈치껏 살려고 했고
땀 흘려 얻기보다 노력은 조금이라도 덜해서 많이 가지기를 바랬고요.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본 적이 없는지라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흥청망청, 아무 생각 없이 허비하며 살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합니다.
시인은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고 했다고 해요.
암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지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환자. 늙은 의사는 그 병을 모른다고 해도 그저 치료를 기다리는 처지이지만 그럼에도 기댈 곳은 병원뿐이죠.
아픈 사람만 있고 하루 지나면 죽어나가고 언제 죽을지 모를 불안하고 무서운 곳이 병원이지만, 병원은 희망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리 아프고 힘들지만 치료받고 나을 수 있는 곳도 병원이니까요.
시인은 죽는 마지막까지 시련에 성내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시인의 글을 읽고 마음을 다시금 가다듬습니다.
글이란 쉽게 쓰지는 게 아니라고 해도 글을 쓰려고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삼 고맙게 여겨집니다.
다른 이들의 피나는 노력은 알려고 하지 않고 결과만 부러워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부터 인생 결심을 하나 더 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튀어나올 때마다 흥청망청 생각 없이 시간을 허비할 때마다 시인의 시를 꺼내 읽기로요.
이런 시와 시인의 이런 태도를 마주하면 자세를 가다듬게 될 거니까요.
쉽게 성내지 말고 쉽게 살려고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