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수저 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숟가락 선물을 받아본 게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예쁜 디자인에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포장지에는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은 친환경 제품이라고 하면서 사랑, 감동, 배려 같은 좋은 말들이 잔뜩 적혀 있었습니다.
새 숟가락을 들여다보니 제 얼굴이 흐릿하게 비칩니다. 숟가락에 비친 내 모습이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한 세월만큼이나 우리가 매일 드는 이 숟가락에도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담겨 있구나 싶었습니다.
수저라고 하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일컫는 단어입니다. 숟가락의 높임말을 수저라고 부르듯 통용되는 개념은 수저는 곧 숟가락입니다.
식사 도구로는 포크와 나이프, 젓가락이 있습니다.
포크는 찍기만 가능합니다. 간혹 힘 조절을 잘못하면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도구입니다.
나이프는 기능 자체는 단순한 데다 나이프만 가지고 식사하기는 애매합니다. 분위기가 좀 살벌하지 않을까요?
젓가락은 잘 쓰면 굉장히 유용하지만 국물이 있거나, 마지막 남은 음식까지 깨끗하게 먹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반해 숟가락은 원한다면 숟가락 하나만으로 식사가 가능합니다. 숟가락을 나이프처럼 음식물을 썰 수도 있고 포크처럼 찍어 먹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모습은 식사 예법에 어긋난다며 되도록 자제하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어린아이가 제일 먼저 스스로 습득하는 도구도 숟가락입니다. 젖병을 떼면서 자연스럽게 숟가락질부터 하니까요. 숟가락을 홀로 쥘 수 있는 순간부터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는 인생길에 들어섰다는 의미입니다.
밥 한 톨, 국물 한 숟갈 남기지 않으려고 쥐었던 숟가락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식사 도구를 넘어 다양한 용도로 변신하곤 합니다.
연배 높으신 분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선 이런 말이 떨어져야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자, 다들 숟가락 들지." 숟가락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병을 따야 할 때 숟가락으로 병을 따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빨리, 많이 딸수록 찬사로 이어집니다. 대신 단번에 따지 못하면 심한 야유를 받기도 합니다. 심심한 분위기를 띄우는데 숟가락이 한몫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지위가 가장 높은 부서장이 한 말씀하십니다. 이때 마이크를 흉내 내며 주목을 이끌 수 있는 도구 역시 숟가락뿐입니다. 포크나 젓가락이 절대 할 수 없는 숟가락만의 가치입니다.
간혹 시력 검사를 하려는데 눈가리개가 없으면 숟가락이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도 합니다.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먹는다는 건 곧 살아있음입니다. 그러기에 숟가락은 생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말에 "숟가락을 놓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는 자리가 아니라면 '죽는다'를 완곡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웃어른들이 식사 중에 숟가락을 상에 내려두지 말라고 하셨던 이유입니다. 식사가 끝나기 전에는 국그릇이나 밥그릇에 걸쳐두는 게 식사 예절입니다.
아주 오래전 총을 메고 나라를 지켰던 군대 시절, 고된 훈련으로 지쳤을 때 조교님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숟가락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알겠나!" 군대에서는 숟가락 맨 끝부분에 포크처럼 파인 이른바 숟가락 포크를 사용합니다. 숟가락만큼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외침, 숟가락은 총 못지않은 생명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4천 년 전부터 숟가락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숟가락이 보편화된 시기는 고려 후기, 이 무렵부터 숟가락은 생필품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나 돌이 되면 수저를 선물하곤 합니다. 또한 시집가는 여자는 반드시 남편의 수저를 마련해 갔고 집안 어른들께는 은 수저를 선물해 드리는 것이 큰 효도였습니다. 예로부터 숟가락은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시 세끼마다 빠지지 않는 도구인 숟가락,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식기이다 보니 숟가락과 관련된 속담도 많습니다.
남들이 애써 다해 놓은 일에 약간만 거드는 척하면서 슬쩍 묻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와주지 않고 있다가 막판에 끼어들어 무임승차하는 인간을 보면 얄밉기 짝이 없습니다. 그럴 때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라며 핀잔을 줍니다.
'숟가락만 얹는다'와 비슷한 글자이지만 뜻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밥상에 숟가락만 놓으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손님이 왔을 때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표현입니다.
큰일을 당하거나 누군가를 잃는 슬픔을 당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눈물이 그칠 날이 없을 만큼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힘든 고통을 이겨낼 거니까요. 이를 두고 "눈물은 내려오고 수저는 올라간다."라고 합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하듯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습니다. 실수는 하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처음 시작하고 힘들어하면 이런 말로 위로를 합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어떤 일이든 한두 번 만에 전부 이룰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간신히 먹고살 만큼 어려울 때는 '입에 풀칠한다'와 같은 뜻인 '밥숟가락이나 겨우 뜬다'라고 합니다.
속담들을 보면 밥을 떠먹는 숟가락을 우리의 고된 삶 그 자체와 결부시킨 말들입니다.
이런 숟가락이 요즘은 신분을 나누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수저의 색으로 신분을 구분하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나 집안이 좋은 조건을 타고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습니다. 이후 흙수저의 상위 수저인 동수저, 플라스틱 수저로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많은 이들에게 사회 출발부터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숟가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갑니다.
문득 “밥 한 그릇 시켜 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하루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로 시작되는 '오늘 하루'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숟가락을 들고 하얀 밥을 한 숟가락 뜨려는데 가끔씩 들었던 "밥값은 했냐?"라는 말도 들려오는 듯합니다.
숟가락을 지키기 위해 오늘 하루 내 모습은 어떠했는지, 밥값은 제대로 했는지. 숟가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숟가락에 담긴 삶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인생은 숟가락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숟가락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게 쉽게 살아지는 것만은 아니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 숟가락은 함부로 놓지 말고 꼭 들어야겠습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