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기왕이면 맛있는 밥 한 그릇을 챙겨먹으면 그 여행이 더 한층 즐겁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갈 지역 맛집을 미리 한 번씩 찾아보곤 하는데, 이때 가장 내 마음을 잡아끄는 마법의 단어가 하나 있다. '현지인 추천맛집', '찐단골 솔직후기' 류의 충성스런 내돈내산 해시태그를 머금은 소개글들이 바로 그것이다.
허영만이나 백종원쯤 되는 미식가들이 다녀갔다는 맛집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해당 지역에 살면서 그 맛에 반해 오랜 세월 동안 드나들었다는 찐단골의 후기 만큼 정확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싶어서다. 어쩌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명인의 입맛, 혹은 그들을 배려 혹은 의식한 일반적이지 않은 한 끼보다야 훨씬 정확할 거니까.
물론 개중에는 솔직을 가장한 솔직하지 못한 후기들도 더러 섞여 있긴 하지만, 나 정도(?) 행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구분해 낼 수 있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 단, 실패 시 '개 맛없는' 밥 한 끼를 꾸역꾸역 먹어줘야 하는 데다가, 같이 간 마눌님 눈치밥까지 덤으로 배 터지게 쳐먹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안동원조매생이칼국수는 그런 현지인 추천맛집, 찐단골 솔직후기 해시태그를 기반으로 찾아낸 지역 맛집이다. 얼마 전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거의 5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북 울진까지 여행가는 계획을 세우던 중 중간기착지 겸 점심 먹을 맛집을 찾다가 발견했는데, 찐단골의 아주 매우 많이 진심 어린 이용후기가 마음을 확 잡아끌었더랬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 위치한 안동원조매생이칼국수 이용후기가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찐단골이 아니고선 보여주기 힘든 찐득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지인이 놀러오면 일순위로 데리고 가는 집이 여기", "0월 0일 부로 가게가 확장이전을 하는데 이사갈 곳 주소는 풍산읍 000이다" 하는 식으로 마치 내 식구 챙기 듯 챙기는 모습이 '도대체 얼마나 맛이가 있으면...'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특히나 우리 가족 모두 매생이도 좋아하고 칼국수도 좋아하는 터라 딱 취향저격 제대로였다. 그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여행 첫날 첫 끼이자 중간기착지로 이곳을 찜해버렸고,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찾아가봤다.
이미 충분히 사설이 길긴 했지만, 그래도 성질 급한 분들을 위해 이쯤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안동원조매생이칼국수 음식맛은 기대 이상으로 아주 매우 많이 좋았다. 기왕이면 골고루 맛을 보고 싶어 네 식구가 두 패로 나눠 각각 매생이칼국수와 매생이굴전골을 주문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름 칼국수나 전골 류 음식을 먹을 만큼 먹어본 내 기준으로 두 메뉴 모두 기대치를 크게 웃돌 만큼 '존맛', 아니 '대존맛'이었다.
먼저 칼국수의 경우 매생이를 주재료로 삼은 음식답게 한 입 먹는 순간 깊은 바다의 맛 위로 칼국수 특유의 감칠맛, 여기 더해 이 식당 비법이 가미된 기분좋게 매운맛이 어우러져 뱃 속으로 흘러드는 느낌이었고, 굴전골의 경우 매생이 맛 더하기 굴의 깊은 풍미까지 더해져 더 한층 진한 바다의 맛과 향기가 우러나는 느낌이었다. 녹색녹색한 음식 비주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건강해지는 느낌과 찰진 조연 역할을 120% 소화해내는 김치 등 밑반찬류 역시 먹는 즐거움을 더더 더해줬다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겠다.
안동원조매생이칼국수를 먹던 중 나는 문득 맛집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 읽어보거나 이름쯤은 접해봤을 허영만 작품 <식객>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매생이의 계절' 편에서 콧대 높은 운암정 숙수 오봉주가 만들어 내놓은 매생이국을 주인공 성찬이 한 입 맛만 본 뒤 더 이상 손도 대지 않는 장면이 그것이다.
자신의 요리를 무시하는 듯해 화가 난 오봉주는 분노를 터뜨리며 "대한한국 최고의 매생이국인데 네가 어떻게 감히 그대로 남기느냐?"고 따져묻는데, 성찬은 아주 매우 많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매생이국은 그렇게 먹는 게 아니다"며 일주일 뒤 자신이 더 맛있는 매생이국을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약속한 일주일 후, 잔뜩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 성찬은 어처구니 없게도 빈 그릇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매생이는 제철 음식이라 제철에 나온 걸로 요리를 해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운암정 숙수 오봉주가 그런 기본기를 저버린 채 냉동 매생이를 이용해 한국 최고의 매생이국이라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걸 지적해주고 싶었던 것.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엔 '맞앗, 매생이는 겨울 제 철에 먹어야 맛있는 거!'라는 생각을 가진 이가 많을 건데, 내 미각이 식객 성찬이보단 많이 부족해서 그런 지는 몰라도 안동원조매생이칼국수에서 칼국수와 굴전골을 먹어본 결과 7~8월에 먹는 냉동 매생이도 충분히 맛이 있었다는 얘기를 덧붙이고 싶었다.
안동원조매생이칼국수는 매일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7시(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 문을 연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이며, 일요일은 정기휴무. 전용주차장은 따로 없으므로 인근 골목길이나 바로 옆 풍산시장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