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오라리집은 아내가 즐겨 보는 Yummy라는 유튜버가 올린 유튜브 소개영상을 본 뒤 '이 집 굴칼국수 정말 맛있겠닷!' 하는 생각이 들어 충동적으로 방문한 맛집이다. 쫄깃해 보이는 면발에 얼큰한 느낌을 주는 국물, 그 위에 싱싱한 굴을 아낌없이 때려넣은 비주얼이 입맛을 확 땡겼던 거다.
노포 스타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저격하는 음식점 외관도 도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머나 먼 충청남도 서천까지 칼국수 한 그릇 먹자고 달려가게 만드는데 아주 매우 많이 크게 한몫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보고 자란 1960~70년대 어느 거리에서 타임머신에 냉큼 실어 날라온 듯한 올드한 모습이 향수를 자아내면서 '갬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 토요일 아침 일찍 충남 서천으로 달려가봤다. 내가 본 예의 Yummy 유튜브 소개영상 조회수가 근 3만여 회에 가까운 데다가 여행하기 좋은 계절 가을을 맞아 여행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걸 감안했을 때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자칫 먼길 달려가 헛걸음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족히 팔십은 넘어보이는 서천 오라리집 할머니 사장님 연세까지 생각하면 많은 손님을 한꺼번에 감당하긴 힘들 것같으니 일찍 먹고 튀자는 전략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아침 9시 좀 넘은 시간에 일찌감치 도착해 그날 첫 손님으로 입성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 수난 아닌 수난을 자초하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음식점 문은 열었으되 아직 장사할 채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불쑥 들이닥친 꼴이다 보니 할머니 사장님이 '아침 일찍부터 이것들은 도대체 뭣하는 베이비들이여?' 하는 듯한 마뜩찮은 눈빛으로 우리를 맞아주신 거다.
그 눈빛에 좀 머쓱해진 아내와 나는 급공손 모드를 갖춘채 "지금 식사 되나요?" 하고 여쭤봤고, 할머니 사장님은 '이 베이비들을 손님으로 받아 말앗?' 하며 잠시 망설이는 눈치시더니만 "지금은 칼국수 밖에 안 되는디..." 하고 답을 하셨다. 그 말에 아내와 나는 귀가 반짝해져서는 "바로 그거 먹으러 왔습니닷!" 하며 냉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버렸다. 마치 할머니 사장님에게 절대 두 말 하기 없기, 무르기도 없기 하고 확인도장이라도 찍듯이.
그러자 할머니 사장님은 아침 일찍부터 성가신 베이비들을 만났다는 듯한 몸짓으로 느릿느릿 굴칼국수 끓일 준비에 들어가셨다. 그 틈에 나는 가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50년도 더 된 영업신고증 사진을 찍으며 "가게 이름 오라리가 무슨 뜻이에욧?" 하고 물었는데, 그게 또 할머니 사장님 심기를 살짝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런거 사진은 왜 찍는댜?" 하며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시며 동문서답을 하셨으니 말이다.
까딱 잘못했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뻔 했던 상황인데, 이때 마침 어머니를 보러와 있던 따님께서 "우리 엄마가 귀가 좀 어두우셔서 그래요. 오라리는 바로 옆 동네 이름에서 따온 거구요!" 하고 옆에서 말을 거들어 주셨다. 오래된 음식점들 이름 중에는 사장님 고향 지명을 따 지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 아마도 할머니 사장님 고향이 그곳 아닌가 싶었다.
따님의 설명 덕분에 할머니 사장님의 퉁명스런 반응도 귀가 어두워서 그렇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뭘 묻거나 말을 걸어도 대꾸도 하지 않거나 마치 언짢은 듯 목소리 톤을 높이시는 이유도 그래서구나 싶었다. 원래 귀가 어두운 사람은 좀 오버스럽다 싶을 만큼 크게 얘기하지 않으면 알아듣질 못하고, 말할 때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크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중에 이 서천 오라리집을 찾는 분들이 있다면 할머니 사장님 반응이 다소 퉁명스럽더라도 절대 오해는 금지라는 얘기 되시겠다.
맛집 탐방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맛은 한 마디로 아주 매우 많이 만족스러웠다. 칼국수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면발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혔고, 호박과 당근, 쑥갓 등 평범한 재료들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마술을 부리신 건지 그 국물은 얼큰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거기다가 6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이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때려넣은 싱싱한 굴은 입 안에 바다향을 더해줌으로써 먹는 즐거움을 따따블로 올려줬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유튜브를 보며 입맛을 크게 다셨던 '대존맛'이 예상되는 굴부침은 맛볼 수 없었다는 거였다. 너무 일찍 찾아가는 바람에 장사 준비가 덜 돼 칼국수 외엔 안 된다고 선언하신 할머니 사장님 말씀 때문에 다소 주눅이 든 데다가, 원래 굴부침이란 음식이 메뉴판엔 써있지도 않은 까닭에 단골손님들만 알음알음 시켜먹는 거란 얘기까지 듣고 갔던 터라 차마 주문해 볼 엄두조차 내질 못했던 까닭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냥 눈 딱 감고 한 번 들이대 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마구마구 들 정도.
서천 오라리집은 칼국수나 노포 좋아하는 사람, 특히 얼큰칼칼한 국물맛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정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맛집이다. 다만 50년 이상 된 오래된 노포이다 보니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깔끔한 환경을 원하는 사람들은 질색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아쉽지만 비추천을 드린다.
영업시간은 거의 할머니 사장님 맘대로인 듯하다. 오전 8~9시 정도 문을 여신다고 했고, 오후 몇 시까지 장사하신다고는 했는데, 딱히 정해진 시간은 없다는 느낌이 든다. 만일 근처 지날 일이 있어 방문을 원한다면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