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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Nov 14. 2024

내 인생 두번째 누룽지밥 맛집, 전주 반야돌솥밥

우리나라 최초 돌솥밥 선보인 전주시 선정 맛집 오브 맛집




우리나라 최초로 돌솥밥을 개발했다는 간판을 크게 내걸고 장사 중인 전주 '음식명인' 운영 '음식명소' 반야돌솥밥은 오십 몇 년 내 인생에 두 번째로 맛있는 누룽지밥을 선물한 맛집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삼십 몇 년 전, 전주로 출장을 왔던 길에 이 동네 사는 거래처 직원이 이색 맛집이라며 데려가 준 덕분이다.


참고로 여기서 음식명인과 음식명소라는 건 자타공인 맛의 도시 전주시가 운영하는 일종의 공인 제도로, 특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맛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는 장인과 음식점을 각각 음식명인과 음식명소로 선정해 포상하는 제도다. 2024년 현재 각각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사람과 음식점만이 음식명인과 음식명소로 선정돼 있는 걸로 아는데, 선정됐을 때 언론에 기사까지 날 정도로 나름 가문의 영광이라 해도 좋은 명예로운 제도.


각설하고, 당시 반야돌솥밥은 구 전북도청 앞인 중앙동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는 도청 같은 큰 관청 주변엔 사람들 왕래가 많아서 그랬는지 유난히 맛집들이 많았는데, 반야돌솥밥은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손꼽히는 맛집이었다.


그때 돌솥밥이라는 걸 처음으로 접해본 나는 맛도 맛이지만 '재밌닷!'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펄펄 끓는 1인용 돌솥에 밥을 해서 손님 밥상에 올리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재밌었지만, 그보다는 덜어먹을 그릇을 따로 주며 밥은 덜어놓은 뒤 따뜻한 물을 부어 누룽지탕을 만들어 먹게 만드는 게 아주 매우 많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별로 기대치도 않았던 곳에서 기억에 남는 맛있고 재밌는 밥 한 끼를 먹는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이야 돌솥밥이라는 게 동네 어귀 분식점에만 가도 먹을 수 있는 흔해빠진 음식이 돼버렸지만, 삼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건 반야돌솥밥 같은 특별한 맛집에나 가야 겨우 맛볼 수 있는 희소성 있는 음식이었으니까.


이쯤 얘기하다 보면 독자들 중에는 분명 '이 베이비가 처음 시작할 때 반야돌솥밥이 인생 두 번째로 맛있게 누룽지밥을 먹었던 곳이라 했는데, 그럼 첫 번째 맛집 썰은 도대체 언제 풀려고 이렇게 서론이 긴 거얏?' 하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궁금한 거 참으면 건강에도 안 좋으니까 일단 그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내가 첫 번째로 누룽지밥을 맛있게 먹었던 곳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교실에서였다. 스팀 난방 시설은 기본이요, 밥은 학교 식당에서 먹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요즘 학생들에겐 잘 상상도 안 되는 일일 테지만, 40여 년 전인 1980년대 초반 '라떼'는 겨울이면 추위를 막기 위해 교실에 난로를 피웠더랬고, 학생들은 도시락이라는 걸 싸들고 다녔더랬다. 저녁 야자(야간자율학습)가 있는 경우 그것도 두 개씩이나 싸들고 다니곤 했다.


그런데 이 도시락이라는 게 열에 여덟아홉 명의 학생들은 집안 형편상 보온도시락을 장만할 여력이 안 돼 네모난 싸구려 양철도시락을 들고 다녔는데, 점심 때 그걸 먹으려면 거의 아이스크림 느낌이 들 정도로 밥이 차갑게 얼어있곤 했다. 그래서 그 당시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난로 위에 도시락 탑을 쌓아 뎁혀먹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문제는 성격 까칠한 선생이 기분이가 안 좋은 상태로 수업에 들어오는 경우였다. 내가 인생 첫 번째로 맛있는 누룽지 밥을 먹었다는 그날도 딱 그런 케이스였다. 뭐가 못 마땅했던지 선생은 맨 아래 도시락이 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비록 수업 중이라도 도시락 탑 위 아래 위치를 바꿔주는 행위 정도는 허용해주던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그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안에는 밥 타는 냄새, 함께 담은 김치반찬이 보글보글 끓어 김치찌개가 돼가는 냄새 등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그날 따라 손이 빨랐던 내 도시락이 하필이면 맨 아래 깔려 있었다는 거였다. 2층, 혹은 3층에만 있었어도 그 정도까진 안 됐을 텐데, 그렇게 한 시간 수업을 끝내고 보니 내 도시락은 누룽지가 눌다 못해 아무리 설거지를 해도 탄 자국이 남겠다 싶을 만큼 심하게 타들어가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십중팔구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할 각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고등학생 따위가 그렇게 먼 미래를 내다보며 살진 않는 법. 그 잘 눌다 못해 시커멓게 탄 부위까지 있는 도시락을 보는 순간 반 친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나도 한 입만 먹어보잣!" 하며 사방에서 숟가락 공세를 펼쳤고, 거의 김치찌개가 되다시피 한 다른 친구 도시락 반찬을 곁들여 그렇게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누룽지밥을 맛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돌도 씹어먹는다는 먹성을 가진 고등학생들이었으니 그 누룽지가 얼마나 맛이 있었을 것이며, 그 배경을 장식한 김치찌개 냄새며 각종 다른 반찬들이 뜨거운 열을 받아 뿜어내는 냄새의 향연들은 또 얼마나 황홀했을 것인가 싶다. 지금 생각해도 침샘이 폭발하는 걸 보면 확실히 세상에서, 최소한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누룽지밥이었지 싶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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