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에게 맞는 직업은 뭘까?
나의 두 번째 여정의 꿈까지 모두 다 박살나버리자 난 또 내 안의 힘을 잃어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몸도 마음도 다 너덜너덜해져 버려서 이제는 이 코로나 상황이 끝난 후에라도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당분간은 아니 못해도 올해까지, 아마도 내년까지 한국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일단은 한국에서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린 나는
여행 후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나의 진로를 결정하기가 더 힘들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했던 수많은 고민들을 지금에 와서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여행 동안 알게 돼버린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모습과 원래 알고 있었던 모습에 대한 더 명확한 인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회사를 그만둘 즈음 생각했던 여러 가지 옵션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 돌아온 지금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나자 그전에 막연히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내가 과연 그것들을 하기 적합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예전이었다면 단순한 용기와 열정, 의지로 헤쳐 나갔을 것들이 이제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나도 나를 정확히는 잘 몰라 시도해보았을 것들도 이제는 내가 이것을 시도하였을 때 나와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좀 더 명확하게 보여서 전보다 더 섣불리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새로운 직업을 만나는 것은 지금의 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과 많이도 닮아있다.
20대에는 학교, 동아리, 대외활동 등 남자를 만날 기회가 많았고 외모, 성격 등 하나만 좋더라도, 좋아하는 감정 하나 만으로도 이것저것 따지는 것 없이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이별의 가능성에 대한 부담감 없이 현재의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었다.
또한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 나와 맞는지를 몰라 여러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려 했다면,
30대인 지금에는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고 외모, 성격뿐만 아니라 능력, 집안 등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아져 그저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여기에 더 이상의 이별은 하고 싶지 않아 그 시작에 대해 더 신중해져 버리기까지 하며 여태껏 만나본 사람들 중 나와는 맞지 않는 스타일의 사람이 나타날 경우 만남을 시작할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20대에는 나에게 주어진 직업군에 대한 기회가 더 많았고 괜찮은 네임밸류나 높은 연봉 등의 직장이라면 그냥 이력서를 넣고 보았고 이후 퇴사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취직'만을 생각하며 입사지원부터 하고 보았다.
또한 해당 직업군에 대한 진짜 현실에 대해서도 깊이 몰랐을뿐더러 내가 그 직업과 정말 맞을지에 대한 큰 고민도 없었기에 더 다양한 직업군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30대인 지금에는 '나이'라는 문턱 덕분에 예전보다는 내 앞에 놓인 기회가 줄어들었고 단순히 '취직'이라는 것만을 위해 섣불리 지원하지는 못하게 되어버렸고 혹시나 이걸 시작했다가 지금 이 나이에 또 실패할까 봐 더 신중해져버리기까지 한다.
여기에 이 한국사회의 현실과 해당 직업군의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알아버리게 되었고 나의 진짜 성격을 알아버려서 과연 이것이 나의 적성과 맞을지를 따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과거보다 훨씬 더 좁아진 직업군만이 나의 선택권 안에 남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또다시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이가 점점 더 들면서 지금은 실패하면 안 될 것만 같아 더 신중해지고 그로 인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는 더 꺼려하는 이 모습을 더 반복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2~3년 해보고 아니면 서른 후반에 다시 또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면 된다는 그 사실만을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겨야만 한다.
그게 바로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였으니깐.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