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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Oct 17. 2022

어떤 저울질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게 슬퍼져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사랑해왔던 모든 사람들이 깨끗하게 잊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건 사랑했었던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자 내가 느꼈던 사랑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고 현재의 사랑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 가끔은 서서히 지워지는 것 같다가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어떤 자국들은 그저 내 것인 양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흔적들은 이제는 정말 나 자신이 되었다. 내가 어떤 향을 좋아하는 것도, 어떤 행동들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도, 어떤 말들을 믿지 못하는 것도, 어디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어떤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것도 다 지나온 사람들이 만든 나의 모습들이다. 그들은 곧 나의 일부로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시시껄렁한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을 느끼는 과정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숱하게 지루한 질문들이 오고 가야만 한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들을 흡수한 나는 또 그의 어떤 부분을 나 자신에게 새기곤 한다. 가끔 잊히지 않는 어떤 부분들이 건드려지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들을 잊고 옛사랑에게로 달려가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시간이 지나면 헤어졌던 이유와 잦은 싸움들은 잊히고 좋았던 순간들만이 희미하게 남는다. 헤어졌던 무수한 이유들을 제쳐두고 그래도 참 사랑했었지 싶은 거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다시 붙잡고 현실로 발을 붙여보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모르는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보다 이미 어떤 사랑일지 알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는 비교도 안 되는 에너지가 소모된다. 사랑에 빠졌다고 그저 달려갔던 나는 이제 저울질을 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맞는 사람, 나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사람, 함께할 때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은 노력이다. 소중한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노력, 다른 부분들을 이해해가려는 노력, 내가 아닌 누군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손잡고 걷기 위한 노력. 그래서 가끔은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곧 너무 노력했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욱더 가치가 있는 노력을 하고 싶다. 똑똑하게 사랑하고 싶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희미한 아지랑이와 어지럼증만을 남기고 사라지니. 하루가 다 지나고 걷기 좋은 날씨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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